채현국과 자캐오, 살기 위해 가난으로 도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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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현국과 자캐오, 살기 위해 가난으로 도피하다
  • 최태선
  • 승인 2021.04.03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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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뉴스타파
사진출처=뉴스타파

“돈이 자꾸 생기니까 미쳐가더라. 살려고 도망간 거다”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의 별세 기사에서 본 내용이다. 보는 순간 내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수많은 생각들이 정말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그리고 내게 든 생각은 희망이다. 이런 사람이 있다. 유대인 랍비 아브라함 조슈아 헤셸이 생각난다. 그의 책 제목이 <누가 사람인가>이다. 나는 채현국님이 바로 그 사람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방송국 PD로 있던 채현국님이 군사정권의 방송 제작 지시에 반발해 방송국을 그만두고 부친의 광산업 운영에 뛰어든 것은 1961년이었다. 성공하여 개인소득 2위에 올랐지만 유신정권이 들어선 후 사업을 접고 재산을 주변에 나누어주었다. 민주화운동을 하며 도피 생활을 하는 이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하고, 셋방살이하는 해직 기자들에게는 집을 사 주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해 CBS라디오와 인터뷰에서 그때 그 일을 한 이유를 밝힌 내용이 바로 위에 인용한 내용이다. 그는 돈이 자꾸 생겨 미쳐가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것을 발견하기만 해도 대단한 사람이다. 그것을 발견하고 살려고 도망간 것이 재산을 처분한 것이었다.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을 만난 자캐오가 한 일을 이해할 수 있다. 자캐오가 자기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토색질 한 것의 네 배를 보상한 일의 의미를 알 수 있다. 그는 살려고 도망을 간 것이다.

사실 자캐오가 한 일이나 채현국님이 한 일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해야 할 일이다. 재산이 많으면 미쳐가지만 재산이 없다고 미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바울은 이렇게 설명한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 돈을 좇다가, 믿음에서 떠나 헤매기도 하고, 많은 고통을 겪기도 한 사람이 더러 있습니다.”

나는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더러’라는 말에서 격세지감을 느낀다. 바울의 주변에는 신실한 그리스도인 자매와 형제들이 많았다. 그래서 그는 돈을 좇다가 믿음에서 떠나 헤매거나 많은 고통을 받은 사람이 더러 있다고 하였다. 그런 그가 만일 우리 시대에 같은 말을 했다면 ‘더러’가 아니라 ‘거의 모두(almost)’라는 표현을 사용해야 했을 것이다.

우리는 살기 위해 도망을 가야 한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땅과 집을 팔아 그 판값을 사도들의 발아래 가져다 두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참으로 현명했다. 만일 그들이 그 판값을 사도들의 발아래 가져다 두지 않고 각자 나누어 주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자캐오와 채현국님과 같이 괜찮은 사람도 있었겠지만 아마도 그 중에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자기가 한 일에 감격하고 도취되어 ‘자기 의’라는 바리사이인들에게 감염되었던 치명적인 영적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는 사도들이 했던 그런 역할을 할 수 없다. 교회에 돈이 들어오면 그것은 쌈지돈이 된다. 비자금이 되고 꼭 비자금이 아니더라도 하느님의 일을 빙자한 목사의 광고비내지는 목사 개인의 욕망 충족을 위한 눈먼 돈이 된다. 사도들이 존경스러운 것은 그렇다 쳐도 일반 성도였던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모두 그랬다는 것은 정말 믿을 수 없을 만큼 부럽고 존경스러운 일이다.

나는 채현국님의 종교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그분이 교황의 한국에서의 일정에 불만을 밝힌 기사를 보았다. 아마도 ‘꽃동네’와 같은 곳을 방문한 것이 못마땅했을 것이다. 어쨌든 교황이 가난한 사람들을 찾아가지 않은 것에 대해 그분은 실망을 표했다. 채현국님이 사람들에게 추천한 책이 해방신학을 공부한 김근수가 쓴 <교황과 나>이다. 채현국님은 소위 말하는 냉담신자였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신실한 개신교 신자들이 더 이상 오늘날 교회 안에 머물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한 마디로 채현국님은 깨어 있는 신자라고 할 수 있다. 사실 그리스도인이라면 모두 채현국님과 같은 사고를 가져야 한다. 그런데 그런 채현국님을 존경의 대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오늘날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사람들 중에 채현국님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을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찾을 수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채헌국님의 발언과 행위는 그분의 가치관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그런 그분의 가치관이 바로 세계관이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과 세계관이다. 교황이 교황이라면 교황은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찾아가야 한다. 그러나 조직은 어쩔 수가 없다. 그래서 정진석이나 염수정과 같은 추기경들을 만나야 하고 그들의 안내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 결과가 ‘꽃동네’와 같은 곳이다.

어쨌든 나는 우리 시대의 살아 있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채현국님을 통해 확인했다. 정말 감격스러운 일이다. 대부분의 개신교 그리스도인들은 채헌국님이 어쨌든 가톨릭과 더 가까운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순간 마음을 닫을 것이다. 그런 마음이야말로 미친 생각으로 가득 찬 마음이다. 그리스도 안에 어찌 나뉨이 있을 수 있는가. 성령 안에서 어떻게 분열을 획책할 수 있는가.

마침 사순절(고난주간)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후 제자들에게 침묵의 시간이 주어졌다. 그들은 복기하고 또 복기했을 것이다. 예수님의 하신 말씀들의 의미를 생각하고 또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이 이해 못한 것들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또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다시 제자들을 찾아 하신 말씀이 무엇인가.

“예수께서 고난을 받으신 뒤에, 자기가 살아 계심을 여러 가지 증거로 드러내셨습니다. 그는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여러 차례 나타나시고, 하느님 나라에 관한 일들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제자들에게 하느님 나라에 관한 일들을 말씀하셨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제자들이 이해하지 못했던 것, 제자들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근본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던 이유를 발견한다. 그들이 이해하지 못한 것은 하느님 나라였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들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자신들이 꿈꾸던 것이 결국 제국이었다는 것을 그들은 알지 못했고 그래서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예수님의 그 어떤 가르침보다 더 귀한 시간이 바로 그 죽음과 부활 사이의 침묵이 아닌가.

나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이 침묵의 시간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최근 코로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침묵의 시간을 제공하였다. 아무리 화상예배나 줌예배를 드린다고 해도 현장에서 드리는 예배와는 다를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열심히 드렸던 그동안의 예배가 결국 그리스도인의 사고를 마비시키는 종교행위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모처럼 주어진 침묵의 시간도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할 것이다.

채현국님은 체제의 불의함을 보고 복음에 담겨 있는 하느님 나라를 생생하게 마음에 느끼고 간직하게 되었을 것이다. 사실 그래야 복음이 보이고 하느님 나라가 보인다. 자기의 재산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그것을 살기 위한 도망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어지는 것이 바로 신앙이다. 나는 채현국님에게서 바로 그런 신앙을 본다.

정말 우리 시대의 귀감이 되는 분이다. 나는 개인을 영웅으로 만드는 일을 가급적 피한다. 그것은 하느님 나라의 평등을 허무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채현국님이 한 일은 영웅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분을 영웅으로 만드는 것은 돈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하는 일이다. 그분은 큰 자가 아니라 작은 자가 된 것이다. 그분은 커지는 자신의 모습을 미쳐가는 것으로 제대로 파악했다. 거기에서 나아가 재산을 처분하기까지 했다.

나는 이런 채현국님이 진짜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한다. 이분의 모범은 물론 귀하다. 그러나 이분 한 분만으로는 부족하다. 의인 열 명이 필요하다. 나머지 아홉이 필요하지 않은가. 우리가 그 나머지 아홉 가운데 하나가 되어야 한다. 온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희망은 아직 남아 있다!!

 

최태선
하느님 나라의 시선으로 살아가는 
55년생 개신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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