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시 데이 "자연의 신비는 나를 신앙으로, 포스터를 무신론으로 데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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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시 데이 "자연의 신비는 나를 신앙으로, 포스터를 무신론으로 데려갔다"
  • 로버트 콜스
  • 승인 2021.04.03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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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콜스 [Dorothy Day, a Radical Devotion] -11

도로시 데이는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점심을 나누기 전에 내가 더 물어볼 것이 있느냐고 말했다. 나는 없다고, 지금 당장은 없다고 말했지만, 그녀의 자서전 <긴 외로움>의 어떤 구절에 대해 묻고 싶었다는 생각이 났다. 그리고 내가 그 구절을 읽어도 좋겠느냐고 물었다. 물론, 좋다고 그가 말했다. 나는 다음의 구절들을 읽었다:

"말이 없는 포스터는 오직 분노만 늘어갔다. 그리고 그의 분노는 내가 자연적인 것보다 초자연적인 것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에 몰두하기 때문에 일어났다고 했다. 그는 언제나 가족이라는 기관과 사랑이라는 독재자에 반항하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볼 때에 나는 우리가 왜 함께 살고 있는지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그는 마치 혼자 살고 있는 것처럼 나와 살고 있었고 이것은 결혼이라기 보다 동료관계라는 사실을 내가 절대로 잊지 않도록 했다."

그녀는 의자에서 자세를 바꾸며 가래침을 뱉었다. 나는 당황스러웠고 심지어 예의가 없는 행동으로 여겨졌다. 주제를 바꿀 생각으로, 나는 약속을 변경하면 어떨까 말하면서 그 이유도 설명하였다. 그는 마음을 다해서 친절하게 내 말을 들었으나 갑자기 포스터 얘기로 돌아갔다.

“나는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행복하지 않았던 순간들도 물론 있었습니다. 우리는 둘 다 고집스러운 개인들이었지요. 포스터는 종교에 전혀 관심이 없었고 말도 안되는 얘기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종교에 강한 관심이 있었지요. 나는 그의 생각을 알았고 그도 나의 생각을 알고 있었습니다. 만일 우리 둘 중의 어떤 사람이 하느님이라는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되면 무슨 일이 생길지 알지 못했습니다. 나는 만일 내가 그의 관점에 양보했다면 그가 나를 존중했을지 알지 못합니다. 그는 사람이 자기 신념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의무에 너무나 많은 무게를 두었습니다. 그가 하느님을 이 세상에서 작용하고 이끄는 어떤 정신으로 보는 내 세계관에 동의했다면 나는 지금과 전혀 다른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당신은 여기에 지금 앉아 있지도 않을 것이고 지금 ‘여기’라는 것은 없었을 것입니다. 내 말의 의미를 아신다면 말입니다.”

나는 처음으로 내가 자주 질문했던 <긴 외로움>의 또 다른 문장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 문장은 다음과 같았다: “나는 포스터와 관습적인 관계를 맺기 훨씬 전부터 그를 알아왔고, 그와 함께 했던 삶이 나에게 자연적인 행복을 가져다 주었으며, 이어 하느님께로 데려주었다고 늘 느꼈다.”

그는 이 글에서 어떤 점차적인 상승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첫 번째는 그를 목적 없고 떠도는 삶으로부터 들어올려 준 또다른 사람과 나눈 사랑과 결단이었다; 그리고 나서 영적인 지식과 열정이 점차 강해졌고 마침내 그는 상식적인 의미의 결혼과 그가 추구했고 발견한 적극적이고 진한 종교생활이라는 두개의 닻을 가지게 된다; 세 번째 단계는 종교를 자신의 삶에 중심적인 관심으로 두는 전환이었다.

하지만 <긴 외로움>의 “아기를 가지면서”라는 제목 아래 그는 이러한 상승이 편안하게 진행되지 않았다고 분명히 말한다. 세속적인 삶에서 종교적인 삶으로 옮겨갈 때에 그는 포스터와 자기 자신에게 엄청나게 어려운 시간을 겪었다. 포스터와 사랑을 나누면서 많은 행복을 느꼈다고 독자들에게 말한 후 그는 이상하게도 우울한 어조로 다음 장을 연다: “나는 매일 기도하기 시작한 내 자신을 보고 놀랐다. 무릎을 꿇을 수는 없었으나 걷고있는 동안에 나는 기도할 수 있었다. 무릎을 꿇는다고 진짜로 내가 믿는 것인가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나는 누구한테 기도하고 있는가? 극심한 회의가 나를 덮쳐왔고 수치감도 있었다. 그리고 외롭기 때문에, 행복하지 않기 때문에 기도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의심도 들었다.”

이런 말들은 결혼한 지 얼마 안되어 자연스러운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다음 이어지는 문장에서 그는 우편물을 가지러 마을에 갈 때도 기도했고 뉴올리언즈에서 친구가 준 묵주를 주머니에 넣고 있었으며 묵주의 기도를 하기도 했었다고 말한다. 또한 때때로 이런 자신에게 반항하며 갖고 있는 종교적 관심과 신념을 비웃고, 그의 무신론자 급진파 친구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너무나 익숙하게 사용했던 조소적인 슬로건들, 특히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다”라는 말들을 자신에게 되뇌이곤 했다고 우리에게 말해준다.

 

이 시기에 그는 자신이 “무감각의 마비상태”에 있었다고 적는다. 그리고 처음에는 기도가 그를 그런 상태에 묶어두거나, 그런 상태로 끌고 간 것 같았다. 그러나 흔들리고 불안한 이시기에 대한 그의 묘사를 따라가 보면 진짜로 무감각하거나 멍해진 상황에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는 외로웠고 무기력에 빠져서 자기를 비하시키고 있었으며 변덕스러워지기 쉬운 상태에 있었던 것이다.

“포스터는 주간 내내 도시에 있었고 주말에 나왔다. 나는 쓰고 있던 글을 끝마쳤고 무엇을 해야 할 지 모르는 막막함을 느끼면서 도시에서 즐겁게 지낼 친구들을, 많은 친구들이 모여서 그들의 일에 대해 떠들고 있을 모습을 그려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향락을 좋아하는 은둔자라고까지 불렀으나, 스테이튼섬에서 할 일이 많았고 또 자신이 높히 평가하는 친구들이 그곳에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한다. 또한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맨해튼 생활로 다시 돌아갈 것이라는 기대로 자신을 우롱하지도 않는다.

과거의 생활과 현재 진행중인 생활 사이의 실갱이가 그에게 혼합적인 감정들을 불러일으켰다: 도시인가 시골인가; 세계적인 문화인가 단순한 작은 마을의 문화인가; 혼자 있을 것인가 함께 있을 것인가; 정치적인 참여인가 보다 개인적인 삶에 몰두할 것인가 등등. 그러나 이러한 뚜렷한 양극점들은 아마도 이 시기가 훨씬 지난 후 회상하면서 쓴 그의 글 밑에서 느껴지는 고뇌보다 덜 중요한 것 같다.

그가 계속 말하듯이 이 시기에 느꼈던 행복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시 되돌아보면서 그 시기에 대해 향수를 갖고 있지 않았다. 그는 점차 그의 종교적 감수성이 커지면서 포스터와의 관계에 일어나게 된 문제에 대해 솔직했다. “그에게 종교나 신앙에 대해 말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벽이 즉시 우리들사이를 갈라놓았다. 자연에 대한 사랑이, 그리고 자연의 신비에 대한 연구가 나를 신앙으로 데려갔고 포스터를 종교로부터 단절시켰다.”

그러는 동안 분명하게 두 사람은 함께 사는 삶에 갈등을 느꼈고 그 결과를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포스터와 함께 한 삶은 도로시 데이를 하느님과 가톨릭 교회로 데려갔으나 바로 그 신앙이 그들의 관계를 끝내게 만들었다.

[원출처] <Dorothy Day, a Radical Devotion>, Robert Coles, 1987
[번역문 출처] <도로시 데이, 뿌리로부터 온전히 살다>(<참사람되어>2002, 7월호)

 

 

로버트 콜스(Robert Coles)

하버드 의과대학의 정신의학과 및 사회윤리학과 명예교수. 청소년 문제 상담 전문가로 활동해 왔으며, 50여 권이 넘는 책을 집필한 작가. 1973년 미국의 다양한 계층과 인종의 아이들을 직접 취재하고 분석한 <위기의 아이들>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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