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스, 밤하늘의 별을 보며 살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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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스, 밤하늘의 별을 보며 살아가다
  • 유대칠
  • 승인 2021.03.16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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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칠의 뜻으로 보는 철학사-1
탈레스
탈레스

“왜 철학을 할까?” 이 질문을 받으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바로 고대 헬라 철학자 탈레스(Thales, 기원전 625?-기원전 547?)다. 예수가 태어나기 500년보다 더 오랜 과거의 사람인 그가 21세기를 살아가는 나에게 무엇이기에 그가 생각나는 것일까? 어쩌면 그 이야기가 “왜 철학을 할까?”에 대한 내 고민의 답이 될지 모르겠다.

탈레스는 밤하늘의 별을 보며 걷다가 바로 앞 우물을 보지 못해 그 우물에 빠져 버린 사람이다. 그렇게만 보면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다. 바로 앞의 일도 모르면서 도대체 무엇을 보겠다고 밤하늘의 별을 보고 걸었던 것일까?

지금도 그렇듯이 그때도 많은 이들이 우물에 빠진 탈레스를 비웃었다. 바로 앞에 일어날 일도 모르면서 시간을 넘어선 영원한 진리와 존재하는 모든 것의 원리를 궁리하겠다는 것, 어쩌면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시간 밖 그것을 궁리하다 시간 속 자신에게 찾아오는 고난을 피하지 못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마치 밤하늘의 원리를 궁리하느라 바로 앞의 우물을 보지 못한 탈레스와 같이 말이다.

사실 철학은 지금도 바로 그러한 이유로 조롱을 받고 있다. 많은 이들에게 철학의 궁리함은 밤하늘을 바라보는 탈레스와 같이 쓸데없는 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 공부를 할 시간에 당장 자신의 앞날을 위해 취업 준비를 하거나 이런저런 자본주의 사회가 요구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더 현명한 일이라 생각한다.

 

사진출처=pixabay.com
사진출처=pixabay.com

철학의 원래 말은 Philosophia(필로소피아)다. 그 뜻은 ‘지혜를 사랑함’이다. 현명함을 사랑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탈레스의 시대에도 탈레스의 그 철학함은 우물에 빠진 이라는 비웃음의 대상이 되곤 했다. 그리고 지금 그 비웃음은 더욱더 커져 이젠 아예 쓸데없다며 대학에선 철학과를 폐과시켜버리곤 한다. 철학은 현명함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 우둔함을 사랑하는 것이며, 이 시대의 진정한 현명함은 자본주의 사회가 요구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라 생각하며 말이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바로 앞에 일어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밤하늘을 보는 것도 존재하는 모든 것의 원리를 따지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정말이다. 우주의 질서를 본다는 것, 정말 너무나 중요한 일이다.

우주 가운데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항상 자신에게 주어진 나름의 일들을 한다. 그 일은 자신의 존재를 생존하게 함과 동시에 자기 아닌 존재의 생명마저 생존하게 한다. 심지어 자신의 존재를 내어 주면서 말이다. 잡초는 치열하게 자란다. 아무리 밟아도 죽지 않고 자란다. 그래서 수많은 벌레들과 짐승들을 매일 먹어도 그것들은 죽지 않고 자란다. 그 치열함은 자기 생존의 치열함이며 동시에 모두를 향한 ‘자기 내어줌’이다.

잡초는 그렇게 내어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짐승과 벌레는 잡초를 돕는다. 그들의 똥은 잡초의 거름이 되고 죽어서는 아예 자기 몸을 거름으로 내어준다. 잡초는 치열하게 생존하여 그들에게 먹이를 주고, 벌레와 짐승들 역시 자기를 내어준다. 조화 속에서 말이다. 그렇게 우주는 조화 속에 있다. 그러니 우주의 이름이 코스모스(Kosmos), 즉 ‘조화’이고 ‘균형’이며 ‘질서’인 것이다. 우주는 사실 그렇게 공생하고 있다. ‘더불어’ 살고 있다. 가까이서 더불어 살고 있거나 조금 멀리서 더불어 살고 있는 정도의 차이일 뿐, 사실 모든 것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기 내어줌으로 더불어 있다. 신기하지 않은가 말이다.

우주가 조화이고 질서라면 그 조화와 질서의 원리를 무엇일까? 그 법칙은 무엇일까? 어떤 하나의 합리적 틀로 그 조화와 질서를 알 수 없을까? 탈레스가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생각한 것은 바로 이러한 것이다. 21세기 지금 우리에겐 이상한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그가 생각한 답은 ‘물’이다.

 

사진출처=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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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법칙은 바로 ‘물’이다. 지금의 눈이 아니라, 2000년도 더 전 그때의 시선으로 생각해보자. 사람을 태어나게 하는 정액도 그에게 물이다. 물이 없으면 그 무엇도 존재할 수 없다. 궁금하다면 당장 지금부터 물을 마시지 말고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실험해 보자. 물은 당장 나의 생명에 매우 중요한 요소다. 없으면 나는 죽는다. 딱딱한 돌도 사실은 물과 같은 원리다. 화산의 용암이란 액체가 응고된 돌이다. 녹는 온도가 물과 얼음에 비하여 높을 뿐, 물과 얼음의 관계와 그 원리는 같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물이고 물이 다양한 모습으로 드러난 것일 뿐이다. 그 실체적 본질은 하나같이 모두 물이다. 사람도 물이고 나무도 물이며 이 세상 모든 것이 물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물이다. 물의 이치에 따라 존재하고 있다. 다르게 생각하면 사람이나 돌이나 나무나 저기 저 돌이나 결국 그 존재의 고향은 물이다. 물에선 나온 존재들이다. 밤하늘을 보며, 우주 모두의 원리를 궁리한 탈레스가 알게 된 것은 바로 그것이다.

저기 저 꽃도, 저기 저 고양이도, 저기 저 돌도, 저기 저 잡초도, 저기 저 똥도 모두다 사실은 ‘물’이다. 물이란 사실에서 본다면,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한 가족이나 다름없다. 결국 물에서 나와 물로 돌아가는 것이 삶이다. 물을 먹고 자란 나무도 딱딱해 보이지만 사실 물이다. 불에 태우면, 물인 수증기가 되어 사라진다. 물에서 나온 것이니 그렇게 물로 돌아가는 것이다. 나무만의 일일까? 아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물에서 나온 존재이니 결국 물로 돌아갈 존재, 그렇게 생각하니 사람이란 것도 참... 별 것 없다. 나무든 사람이든 결국 물이다.

어쩌면 ‘잘’ 살아가는 방법은 간단하다. 물 흘러가듯이 흘러가면 그만이다. 자신을 이루는 물이 흐르는 곳으로 흘러가면 된다. 결국 어떠한 삶을 살든 그 마지막은 물이다. 물에서 나왔으니 물로 돌아가는 여정, 그 여정의 다양함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결국 물에서 나온 존재이니 결국 물로 돌아갈 될 뿐이다. 나도 너도 그리고 존재하는 모든 것이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나란 존재는 우주의 원리를 머금은 대단한 존재이지만 동시에 이 세상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물에서 나와 물로 돌아가는 평범한 존재다. 그것이 나란 존재다. 그 나란 존재를 알기는 쉽지 않다. 내가 저 풀과 같다고 생각하긴 싫다. 왠지 더 고상하고 더 대단한 존재일 듯하다. 그렇게 착각한다. 항상 자신이 더 탁월하고 더 신성하다 믿고 싶어 한다. 자신의 생각만이 더 답이라 생각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다 덧없는 일이다.

탈레스는 스스로를 아는 것이 가장 힘들고 남을 비난하는 것은 가장 쉬운 일이라 했다. 밤하늘을 궁리하던 그가 깨우친 이 깨달음은 지금 당장 일어나는 무엇인가에 대한 지혜가 아니라, 삶 전체를 두고 생각하고 고민해 봐야하는 지혜, 시간을 넘어선 영원한 지혜다. 나 역시 내가 비난하는 누군가와 마찬가지의 삶을 살아가는 평범한 그 무엇이다. 쉽게 그를 조롱하고 비난하며 자신의 대단함을 드러내고 싶지만 결국 그도 나도 물에서 나와 물로 돌아가는 우주 만물의 원리 속 평범한 존재일 뿐이다.

자기 내어줌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우주 속에서 교만으로 자기 것만을 생각하고 자기 아집 속에서 살아가기 가장 쉬운 존재가 바로 나란 존재다. 그 아집에서 벗어나 나의 무엇임을 돌아보고 그 나의 무엇임에 순응하며 애쓰며 고민하며 살아가는 삶, 지금 당장 내 앞에 일어나는 일에만 집중하다 그만 포기하고 산 그 영원한 지혜를 궁리하는 삶, 어떤가, 좋지 않은가?

철학이란 바로 이러한 것이다. 지금 내 앞의 일보다 시간을 넘어서는 지혜를 궁리하는 것, 그러다 종종 우물에 빠지지만 그럼에도 더 많은 이들에게 시간을 넘어서는 지혜, 그 영원한 지혜를 전하려 노력하는 것, 어떤가 쓸모 있지 않은가?

오늘도 나는 밤하늘의 별을 바라본다. 그 앞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

유대칠 암브로시오
중세철학과 초기 근대철학을 공부한다.
대구 오캄연구소에서 고전 세미나와 연구, 번역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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