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을 거부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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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을 거부해야 할까요?
  • 돔 헬더 카마라 대주교
  • 승인 2021.03.11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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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마라 대주교와의 대화-7
사진출처=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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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교님은 자본주의를 비난하시면서 이윤추구가 결국은 불합리함과 무질서를 초래하여 아무도 그것을 통제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과 가난한 국가들이 그 댓가를 지불하고 있다고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산업화된 사회에서 이윤과 성장은 같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장을 거부하는 것은 발전을 거부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발전을 거부해야만 할까요? 옛날 농업과 수공업의 시대로 돌아가야 할까요? 그리고 제3세계의 어떤 사람들이 주장하듯이 좀더 다룰 수 있고 인간적인 경제, 자급자족의 경제체제로 되돌아가야 합니까?

카마라 대주교: 하느님과 가난한 이들의 이름으로 말한다면, 나는 발전에 반대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능력이 개발하고 제조한 많은 것들이 인류를 추위와 굶주림, 질병, 고통, 무지, 고립 등에서 해방시킨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아직도 어마어마한 굶주림과 고통, 질병,무지와 고독이 이 세상에는 존재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창조사업에 동참하는 인간은 창조를 완성시키기 위하여 아직도 할 일이 많습니다. 인간은 항상 그래왔듯이 꿈을 꾸어야 합니다. 그리고 만물의 생명에 도움이 되고 마침내는 온 우주 완성의 대미사에 참여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모든 자원을 드러내기 위하여 일해야 합니다. 우주의 모든 창조물은 하느님께 봉헌되고 거양되며 일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인류는 우주의 온갖 풍요를 드러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별들의 에너지는 생각만 해도 감격스럽습니다. 이 일은 물론 다음 세대가 할 일이겠죠. 그렇습니다. 친구들이여! 발전이 제기하는 도전으로부터 결코 물러서지 맙시다. 레이저나 전기, 스팀, 인쇄술, 수레바퀴나 불이 발견되기 이전의 지구가 보다 아름답고 정의로우며 평화와 자유가 더 많았으리라 상상하지 맙시다. 인간문제에 대한 진정한 인간적 해결은 발전의 길을 함께 따라가며 발견되리라고 다짐합시다.

그러나 나는 당신의 질문을 이해합니다. 그 질문들은 내가 사는 나라의 수 많은 젊은이들, 발전의 혜택을 보지 못하고 오히려 그 희생자가 되고 있는 수 많은 이들의 질문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씀드립니다. 용기있고 대담하게 발전의 길로 나아갑시다. 그러나 그길에서 어느 누가 다치거나 뒤에 처지는 이가 없는가 조심합시다. 우리가 먼저 이룩해야 할 발전은 초현대식 연구소나 공장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발전은 먼저 우리들의 가슴과 마음 속에서 이룩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즉 발전에 대한 우리의 의지와 목표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누구를 위한 발전이며 어떤 종류의 성장을 원하는가? 누구의 이익을 위해서인가 등등입니다. 사회적 의식과 사회적 양심의 발전없이 참으로 인간다운 발전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직면하고 있는 불균형은 농업을 희생하고 급속한 산업화를 추진했기 때문에 생겨난 현상이 아닙니까? 

카마라 대주교: 농업은 아시다시피 우리나라에서조차 산업화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산업화가 제대로 관리되지 않으면 엄청난 문제들을 유발시키는 것이 사실입니다. 사람들과 가족들을 죽일 수 있습니다. 예를들면 농업의 산업화가 농민들을 땅으로부터 내쫓으며 그들에 대한 존경없이 일어난다면, 또한 빚으로 산업화를 추진한다면, 결국 부유한 국가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들을 생산하고 자기나라 국민들의 생존에 필요한 것은 생산하지 않게 되지요. 그래서 농업국가들은 지금 굶어죽어갑니다. 산업화가 나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발전시키는 사람들의 방법이 잘못된 것이지요.

- 연구의 진보나 로보트 산업의 발전등이 예를 든다면, 가난한 국가와 부유한 국가 사이의 차이를 더욱 벌어지게 하지 않겠습니까?

카마라 대주교: 일본을 방문했을때 나는 세계적인 로보트 기술자를 만났습니다. 그가 발명할 수 없는 것은 하나도 없을 것 같았어요. 이런 창조의 동업자가 있다는 사실은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릴 것입니다. 그러나 내 고향에 있는 사람들이 생각났어요. 그들은 어떻게 일해야 할지도 모르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한 일도 충분히 얻을 수가 없지요. 그래서 나는 이 일본인 로보트 기술자가 내 고향 사람들을 만나면 그가 그리고 있는 위대한 발전의 힌트를 얻고 가난한 이들이 가난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일에 봉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그 사람을 고향으로 초대했지요.

- 주교님은 항상 다국적 기업을 고발하셨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가난한 이들을 더 가난하게 만드는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카마라 대주교: 다국적 기업은 인간이 무엇을 이룩할 때에만 비로서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자본주의 공장처럼, 다국적 기업의 법은 최고의 이익에 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 이 법은 사회적 책임이라는 브레이크나 평형추가 없는 법입니다. 한 나라에서 이익이 없어져가면, 문을 닫고 다른 곳으로 갑니다. 정책결정은 공장의 실제상황을 전혀 고려치 않으며 차가운 보고서, 도표, 숫자에 의해 좌우됩니다. 나는 다국적 기업 산하의 공장주들을 자주 만납니다. 그들은 공장의 실제 주인이 아니기 때문에 올바르고 인간적인 결정을 할 수 있는 아무런 장치나 권한도 없다고 말합니다. 사용주는 알려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누구이며 어디에 살고 있는지 조차 모릅니다.

다국적 기업에게 최고의 이윤을 제공하는 곳은 원자재와 임금이 가장 싼 나라입니다. 그러니 대부분 가난한 나라들이지요. 그러나 다국적 기업이 취득하는 이윤은 물품이 생산되는 나라의 이윤과 전혀 상관없습니다. 즉 생산되는 나라에서 그 물품이 쓰여지지 않는다면, 다른 나라에서 그 물품이 팔린다면(그 나라는 소비주의 국가 이지요) 다국적 기업에는 더 많은 이득이 돌아옵니다. 그리고 재투자 조건이 원래 생산국보다 더 좋은 나라가 없다면 다시 일은 시작되지요. 가난한 국가들은 이 쳇바퀴에서 이익보다 손해를 더 많이 보게됩니다.

 

[출처] <까마라 할아버지와의 대화: 고통 한 가운데에서 희망을>, 참사람되어 1993년 3월호

돔 헬더 카마라(Dom Helder Camara)

"내가 가난한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면 사람들은 나를 성인(聖人)이라 부르고, 내가 가난한 이들에게 왜 먹을 것이 없는지 물으면 사람들은 나를 사회주의자라고 부른다"는 말로 유명한 브라질교회의 대주교. 라틴아메리카 해방신학의 산실인 브라질 레시페 신학교 교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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