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식구가 된지 이제 한 달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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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식구가 된지 이제 한 달이 되었습니다.
  • 서영남
  • 승인 2021.02.21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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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남의 민들레국수집 일기
사진=서영남
사진=서영남

사마리아 사람이 강도당한 사람을 돕는 것처럼 가진 것이 두세 데나리온이 있어도 가능합니다. 가난한 사람을 돕는 데 큰돈이 들지 않습니다. 아주 쉽습니다. 작은 것을 나누면 가난한 사람에게는 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에 민들레 식구가 된 제민(가명)씨는 지적발달장애입니다. 장애카드에는 정신장애 3급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이는 오십대 중반입니다. 기초생활수급자로 고시원에서 혼자 살았습니다. 서울에서 살다가 몇 년 전에 인천에 와서 처음에는 노숙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고마운 사람의 도움으로 겨우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어 고시원에서 방 하나 얻어서 살았습니다.

누군가 조금만 도와주면 제대로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거의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욕심 부리지 않고 살았기에 나쁜 사람에게 이용당하지는 않았습니다. 민들레국수집에서 밥 먹고 겨우겨우 살았습니다. 지능은 모자라지만 잘 웃고 인사도 잘 했습니다. 시키거나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민들레국수집 주변을 청소하곤 그랬습니다. 제민 씨를 눈여겨보게 된 이유는 숟가락으로만 식사를 하기 때문입니다. 젓가락 사용법을 배우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제민씨가 민들레 식구가 되기로 했습니다. 민들레국수집 근처에 방을 얻었습니다. 1월 20일에 고시원에서 민들레국수집 근처로 이사를 왔습니다. 이삿짐이라고 라면 두 상자와 커피믹스 한 상자인데 그것은 민들레국수집에서 이웃과 함께 나눠먹기로 했습니다. 가져온 것은 쓸 만한 것이 없어서 속옷 두 개만 빼고 그냥 버리기로 했습니다. 살림살이를 장만했습니다. 새집으로 이사한 제민 씨는 이렇게 큰 방에서 지내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합니다. 너무너무 좋다고 합니다. 그렇게 민들레 식구가 된지 이제 한 달이 되었습니다.

 

사진=서영남
사진=서영남

제민씨가 식구들과 함께 지내면서 민들레국수집 분위기가 바뀌었습니다.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습니다. 작은 일에도 아이처럼 웃습니다. 작은 도움에도 고맙다고 합니다. 서로 챙겨줍니다. 밥을 할 줄 모르는 제민 씨를 위해서 저녁에 먹을 도시락을 챙겨줍니다. 제민 씨는 도와달라고 하면 온 힘을 다해서 합니다. 도와달라고 청했던 사람이 좀 쉬면서 하라고 부탁할 정도입니다.

제민 씨는 중학교 다닐 때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그때부터 지금껏 혼자 살았습니다. 서울에서 청소 일을 하다가 너무너무 힘들어서 인천으로 와서 노숙을 하다가 고시원에서 살았습니다. 고시원에서는 모든 것이 돈이 있어야만 살 수 있었습니다. 기초생활수급비로 받은 것으로 살려니 한 달을 살아내는 것이 너무도 힘들었다고 합니다. 앞으로는 조금씩 저금도 하기로 했습니다. 

제민씨가 처음에는 먹는 것에 조금 욕심을 내었습니다. 이제는 아주 품위 있게 밥과 반찬을 담습니다. 젓가락을 쓸 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쓸 줄은 아는 데 젓가락질이 어려워서 안 쓰게 되었답니다. 포크를 챙겨주었더니 몇 번 써 보고 다시 숟가락만으로 식사를 합니다. 식당에 가서 외식을 할 때는 젓가락도 사용합니다.

매일 샤워를 하도록 했습니다. 민들레희망센터에서 샤워를 하고 온 첫날이었습니다. 샤워를 하는 데 혼이 났답니다. 찬물이 나와서 틀면 뜨거운 물이 나오고 또 틀면 찬물이 나와서 어쩔 수 없이 찬물로만 샤워를 했다고 합니다. 추워서 죽는 줄 알았답니다. 민들레 식구가 몇 번을 따뜻한 물이 나오는 방법을 알려주었더니 이제는 아주 잘 씻습니다. 

민들레국수집에서 아침에 도시락을 싸는 일을 하면서 더워서 쩔쩔 맵니다. 겉옷을 벗고 하라고 했더니 겉옷을 벗었습니다. 살 것 같다고 합니다. 더우면 겉옷을 벗고, 추우면 다시 입으면 항상 쾌적하게 보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걸 몰랐다면서 크게 웃습니다. 그리고 고맙다고 합니다. 그런데 금방 잊어버립니다.

허리가 아프다고 합니다. 물리치료를 받아본 적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물리치료가 뭐예요? 제민 씨는 기초생활수급자이니까 병원에 가서 물리치료를 받아도 우선 돈이 들지 않고, 물리치료를 받으면 허리 아픈 것이 상당히 좋아진다고 알려주면서 함께 병원에 가서 한 시간 동안 물리치료를 받았습니다. 물건을 드는 방법을 알려주고 허리가 너무 아프면 먹을 수 있는 약도 나눠주었습니다. 

어제였습니다. 도시락을 전부 싸 놓고 잠시 쉬면서 커피를 마셨습니다. 제민 씨가 큰소리로 고맙다고 합니다, 자기가 고시원에 사는 것보다 민들레국수집에 온 것이 아주 잘 한 것 같다고 합니다. 외롭지 않아서 너무너무 좋다고 합니다. 그리고 돈이 들지 않아서 참 좋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어린아이처럼 크게 웃습니다. 

 

서영남 베드로
민들레국수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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