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론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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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자는 없다
  • 한상봉 편집장
  • 승인 2021.02.15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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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봉의 오늘생각 2021.2.10
사진출처=pixabay.com
사진출처=pixabay.com

1. 광화문에 한 번 나가니, 자꾸 발걸음이 그리로 옮겨집니다. 버스로 한 시간 조금 더 걸리는 광화문 네거리 홀리커피 앞에서 만난 친구는 진용주입니다. 얼마전에 바람 불고 눈이 한정없이 내리던 날 서소문성지의 노숙인 예수 상을 찍었던 오래된 벗입니다.

2. 그를 처음 만난 건 격월간 잡지 <공동선> 편집으로 일할 때였지요. 그이는 당시 <우리교육>에서 일하고 있었고, 정우진 이란 친구와 더불어 도타운 정이 쌓였던 거지요. 기성의 것 너머를 항상 응시하는 눈빛이 좋았습니다. 그후 이 친구는 디자인하우스 등 몇 차례 직장을 옮기면서 티벳과 몽고, 일본에 천착했습니다. 돌이켜 보니, 세 나라가 모두 저희와 닮았으면서 사뭇 다른 구석이 있는 신묘한 나라로 여겨집니다. 피부색과 문화, 인상의 유사성이 있죠. 허나 그네들 고유한 문화는 인공감미료가 듬뿍 묻어나는 우리보다 더 '날것'으로 남아있는 것 같았습니다.

3. 프리 티벳운동에 참여하고, 몽고엔 열 번 이상, 일본엔 백 번쯤 다녀왔다는 진용주입니다. 그 특이한 이력이 마치 "내가 닿을 수 없는 미지"를 더듬고 있어서 좋앗습니다.

4. 그이랑 세종문화회관 뒷편에서 부대찌개를 먹으며 근 이십년 만의 해후를 기념했습니다. 그이가 얼마 전에 제가 페이스북에 올린 <지상에 몸푼 말씀>이란 책을 갖고 싶다고 했습니다. 1998년 제가 <공동선>을 만들면서 그이와 한창 만날 때 펴낸 책이라서 그런 것일까요? 연유를 묻자, 그이는 "알다시피 제가 무신론자이지만...."이란 말로 시작했습니다. 아~ 거기서 말을 끊고 제가 말을 거들었습니다.

"자네가 무신론자라고? 나는 무신론자는 없다고 생각해. 마치 유신론자가 없는 것처럼. 유신론자라고 해야, 그들이 성당이나 교회에서 믿는 하느님도 정작 제각각이니, '어떤' 하느님의 존재를 말하는지 모르겠거든. 우린 다만 '거룩함'이나 '어떤 그 이상의 힘' 같은 걸 경외하며 바라볼 수 있을 뿐이지. 난 자네가 무신론자인지 어떤지 모르지만, 종교적이라고 생각해."

그이는 말을 이어 자신이 몽골에서 겪었던 신성에 대해 이야기 하기 시작했습니다. 성당이나 교회에 나가지는 않지만, 얼마나 많은 기도를 하고 있는지 말하더군요. Good! 좋은 일입니다.

 

5. 토마스 할리크라는 신학자는 <하느님을 기다리는 시간>, 분도출판사, 2016)에서 생명력을 잃어버린 교회를 생각하며 “나는 무신론자들에게 동의할 때가 많다. 하느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들의 믿음만 빼고는 종종 거의 모든 점에 동의한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이 이 세상에 없다는 느낌입니다. 하느님께서 침묵하시고 멀리 동떨어져 계시는 것 같은 느낌을 가질 때마다 신앙인들도 신학자들도 종종 "하느님 없음"을 느끼는 무신론자가 되는 거지요.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는 정직한 사람이 아닙니다.

6. 할리크는 이를 “모든 태양에서 멀어진 순간”이라고 말합니다.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와 세월호 참사와 정인이의 죽음, 코로나 바이러스, 기후변화, 불타는 아마존, 넘쳐나는 쓰레기산, 우리시대에도 군사쿠데타가 가능하다는 현실, 대책없이 죽어나가는 노동자들, 그리고 비닐하우스에서 죽어가는 이주노동자, 이 세상에서 여전히 배제와 차별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거리낌없이 "하느님을 찬양"할 수 있는 사람은 실상 하느님의 자비를 배신하는 자들입니다.

7. 그래서 할리크는 “하느님 없는 세상을 뼈저리게 체험하지 않고는 종교적 추구의 의미, 하느님을 참고 기다리는 일과 그 세 얼굴인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의미를 온전히 깨닫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침묵하시는 차가운 밤, 우리 삶과 세상이 불확실함으로 가득 찬 어스름한 순간이야말로 신앙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다른 이를 참아주는 것은 사랑이요, 자신을 참고 견디는 것은 희망이며, 하느님을 참고 기다리는 것은 믿음이다.”(아델 베스타프로스)

8. "하느님을 참고 기다리는 것"이라니! 세상의 바닥을 응시하고 있으면, 그분이 그 안에서 활동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말인가, 싶습니다. 세상이 시궁창 같아도 그 안에는 여전히 선한 사람들이 있고, 그들이 세사으이 고통에 대해 응답하고 호응합니다. 김진숙과 더불어 영도에서 청와대까지 걸었던 사람들도 그들 가운데 하나이고, 매 순간 자신의 욕망을 거슬러 행동했던 사람들이 있지요. 그 사람들 안에서 희망을 건져 올리는 사람이 신앙인이겠지요. 자신도 그중에 하나가 되기로 작심하는 이들이 그리스도의 제자가 분명할 겁니다.

9. 만약 세상에 무신론자가 있다면, 하느님의 의지를 거슬러 행동하는 자들일 겁니다. 폭력적으로 미얀먀의 민주주의를 압살하고, 여우같은 얼굴로 서울시장이 되겠다고 기름 바르는 사람들이겠지요. 그가 가톨릭인지 개신교인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하느님의 자비를 능멸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열악한 작업환경으로 노동자들을 내몰고 죽이는 사람들, 중대재해기업을 옹호하는 정치인들, 아이들을 학대하고 여자들을 폭행하고 상품화 하는 사람들, 선한 이들을 조롱하고 야유하는 사람들, 우리 사회의 기레기들과 정말 끔직하게 오만방자한 판검사들, 그 모든 사람들에게는 하느님이 존재하시는 게 아니라, 그들 안에서 악마가 살아있습니다.

10. 선한 이들과 연대하는 이들은 성인들의 통공과 은총의 연대성을 경험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대열에서 우리 서로 얼굴을 찾아볼 수 있도록 기도하고 움직여야 하겠지요. 자비하신 주님만이 찬미 받으소서!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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