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이 가지는 치명적인 폭력성-학폭과 청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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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이 가지는 치명적인 폭력성-학폭과 청문회
  • 최태선
  • 승인 2021.02.15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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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선 칼럼
사진출처=pixabay.com
사진출처=pixabay.com

최근 배구선수 쌍둥이 자매의 학폭 이야기가 세간의 관심이 되었다. 국가대표이기도 한 이 두 선수는 십 년 전 자신들이 저질렀던 학폭으로 인해 곤욕을 치르고 있는 중이다. 급기야 경기에도 출전하지 못했고 최고의 팀이었던 소속팀은 패배도 그냥 패배가 아닌 곤죽을 쑤었다.

참 보기 드문 일이다. 힘센 자가 약자의 고발만으로 이렇게 치도곤을 치르는 경우는 드물다. 처음에는 나도 내가 좋아했던 쌍둥이 자매에게 내 마음이 기울었었다. 운동하는 애들에게 폭력이란 익숙한 것이다. 그러니 그럴 수 있는 일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일이 심각하게 돌아갔다. 자매가 사과문을 게재하여 문제가 일단락되는가 싶었는데 급기야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사실 이런 일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내가 늘 말하듯이 ‘희생의 체제’이다. 힘 있는 자가 힘없는 자를 지배하고 자기 마음대로 능욕하는 것은 초등학교가 아니라 어린이집에서부터 시작된다. 아니 이미 태어나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엄마와 아이의 싸움부터. 그러니까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 이미 힘이 모든 것을 좌우한다는 사실을 배우고 익히게 된다.

그리고 인간에게 힘이란 단순히 육체적인 힘만이 아니다. 실력이라는 단어에서 보듯이 아는 것도 힘이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머니가 제일이다. 조중훈 일가의 사건을 상기해보라. 왜 그 집 사람들이 그렇게 만무방들이었는가. 그들이 배우지 못했는가. 교양이 없는가. 아니다. 그들은 다만 돈이라는 힘을 과도하게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일 뿐이다. 힘을 가진 사람은 힘을 주체하지 못한다. 힘은 반드시 드러나기 마련이다.

요즘 연예인들이 그걸 잘 보여준다. 연예인들은 몸이 상품이고 몸이 생명이다. 아무리 연기를 잘 하고 아무리 노래를 잘 해도 잘 생기고 예쁘고 섹시해야 인기가 좋다. 그래서 연예인들에게는 성형수술이란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다. 그것도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기적으로 반복해야 하는 일종의 과정이 되었다. 헬스나 요가와 같은 몸매관리 역시 똑같은 비중을 차지한다. 그래서 많은 시간을 여기에 할애한다. 소위 말하는 몸짱이 되려는 것이다. 그렇게 몸짱이 되면 그 몸매가 드러나게 하기 위해 몸에 달라붙는 옷을 입거나 노출이 과도하게 되는 것이 정상이다. 힘은 숨어 있지 않는다. 힘은 반드시 밖으로 드러나 다른 사람들을 누르고 이기는데 사용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힘을 가지더라도 그것이 드러나지 않는 일이 바로 영적인 일이다. 여기서 우리는 비능력이 영적인 선택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얼마 전 고등학교 동창인 목사와 오랜만에 통화를 했다. 내가 동창이 아니라면 전화통화도 할 수 없는 목사님이시다. 다행히 동창이라는 인연이 있어 통화를 할 수 있었다. 통화 중에 내 신앙의 두 축이 가난과 비능력이라는 말을 했다. 비능력이 무슨 말인지 혹시 아느냐고 물었다. 역시 모른다는 답이 왔다. 모를 수밖에 없다. 힘의 정상은 아니더라도 힘을 가진 자는 자신이 가진 힘에 함몰되어 힘이 가지는 근본적인 악마성을 상상할 수 없다. 그것이 순리이고 그것이 공평하다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힘은 반드시 계층을 형성하고 지배를 정당화한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희생의 체제’를 정상으로 인식하게 만들고 그것을 정의로 인식하게 만든다. 특히 힘은 인간으로 하여금 역지사지할 수 있게 만드는 능력인 공감의 능력을 파괴한다. 자신은 결코 이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래서 힘을 가진 목사들은 자신들이 사람들을 파괴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하느님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된다.

어제 한 분이 내 글에 과거에는 카리스마 있는 목사를 좋아했지만 이제 바보 목사를 좋아하게 되었다는 댓글을 다셨다. 과연 정말 그럴까. 나는 그것을 곧이곧대로 믿지 못한다. 바보 목사를 좋아한다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힘이 없는 사람이 되기 전까지는 다만 피상적이거나 낭만에 불과한 생각이다. 가장 밑바닥에서 인간은 그것을 배울 수 있게 된다. 그러니까 자신이 바보가 되기 전까지 그것을 배웠다고 말하기 어렵다. 어쩌면 추체험까지는 가능할지도 모른다. 인생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것이므로.

국회에서 청문회가 열릴 때마다 나는 이 사실을 목격한다. 이들이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왔던 과거가 청문회장에서는 문제로 드러난다. 자신과 자녀들의 군 면제, 부동산 투기와 위장전입과 같은 것들은 단골메뉴다. 물론 법이 모든 걸 해결하는 능사가 아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탈일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는 힘을 가졌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들이 객관적으로 판단되는 순간 월권 내지는 범죄였음이 드러나는 것이다.

나는 단 한 번도 청문회 때문에 후보자의 청렴결백이 드러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아무리 청백리였더라도 그 자리에 앉으면 불의가 드러나지 않는가. 그걸 정쟁만으로 이해할 수 있는가. 아니다 적어도 그 자리에 앉는 사람은 힘 있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힘에 의해 함몰되었던 과거가 수면 위로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그러한 일들을 통해 힘이 가지는 치명적인 폭력성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힘은 반드시 악을 초래한다.

나와 아내가 들었던 가장 아픈 말이 있다. 아내의 대학 동창 가운데 가장 친한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이름을 말하면 대부분 아는 대기업의 딸이었다. 그 친구는 대학생 때에도 돈이 몇 천만 원 정도는 있었다. 당시에는 집이 몇 백만 원을 넘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 친구는 인연을 귀하게 여겨 졸업 후에도 아내와의 교제를 이어나갔다. 내가 목사가 된 후에도 아내가 자신 있어 하는 부분이었다. 내가 교회를 차리면 적어도 몇 천 정도는 언제든 도와줄 친구가 있다는 믿음이었다. 그것은 과장이 아니었다. 만일 내가 그런 식으로 교회를 하려는 의도가 있었다면 아내의 친구는 정말 천군만마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 친구와의 교제가 단절되었다. 아내와 친구와의 대화 가운데 의견충돌이 있었다. 아내가 목사인 내가 늘 말하던 것을 친구에게 인용했다. 그러자 그 친구가 한 마디 했다.

“야, 우리 교회 부목사들 가운데 유학 갔다 오지 않은 목사 한 사람도 없어.”

이 말 하나로 아내와 그 친구와의 관계는 단절되었다. 결국 아는 것이 힘인 바로 그 힘에 의해 아내와 내가 박살이 난 것이다. 나는 유학을 갔다 오지 않았고 박사도 아니다. 그러니까 내가 뭘 안다고 떠드느냐는 아내 친구의 직언이 영원할 것 같았던 우정을 박살낸 것이다. 이것이 힘이 가지는 파괴력이며 악함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힘을 성령의 역사의 증거로 인식한다. 힘을 가진 자들을 신봉하고 그들을 자신들의 지도자로 선택한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그 결과를 보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교에 들어서서 힘을 택한 자들의 진면목을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오늘날 교회의 일탈과 부패와 타락은 그리스도를 따라 무력해져야 하는 길을 가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힘을 추구했기 때문에 일어난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성서는 그런 걸 열매라고 한다.

"네 칼을 칼집에 도로 꽂아라. 칼을 쓰는 사람은 모두 칼로 망한다. 너희는, 내가 나의 아버지께, 당장에 열두 군단 이상의 천사들을 내 곁에 세워 주시기를 청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그러나 그렇게 되면, 이런 일이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고 한 성경 말씀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두 자매는 다시 나올 것이다. 세상은 힘의 각축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는 무력해져야 하는 나라이다. 힘을 가진 자는 힘으로 망하는 나라이다. 적어도 그리스도인이라면 이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학폭으로 완전히 망하는 연예인들이나 운동선수들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청문회에서 과거의 잘못이 드러나면 공직에 임용될 수 없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스도인들이 그것을 주도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그리스도를 따라 힘의 사용을 거절하는 비능력의 길을 걸어야 할 것이다.

 

최태선
하느님 나라의 시선으로 살아가는 
55년생 개신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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