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이라도 맘껏 먹어보는 것이 소원입니다
상태바
밥이라도 맘껏 먹어보는 것이 소원입니다
  • 서영남
  • 승인 2021.02.07 19: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영남의 민들레국수집 일기
사진=서영남
사진=서영남

“조석거리가 떨어졌어요.” 지금도 집에 쌀이 떨어진 것을 이렇게 말하면서 민들레국수집에 쌀을 가지러 오는 이가 있습니다. 몇 년 전에야 겨우 65세가 넘어서 기초생활 보장 수급자가 되었지만 그래도 생활이 힘든 것은 여전합니다. 매달 쌀을 한 포씩 가져가면 생활에 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그전에는 부부가 함께 민들레국수집에 와서 끼니를 해결했습니다.

조개 할머니는 평생을 화수시장 앞 길거리에서 조개와 굴을 까는 일을 했습니다. 이제는 몸이 너무 아파서 조개 까는 일도 못 합니다. 그래도 시장에 나와서 소일거리 삼아서 생선가게에서 잡일을 거들어 주십니다. 할머니는 얼마나 배고픔을 겪고 살았던지 집에 쌀이 떨어지는 것이 제일 무섭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쌀이 반 포대쯤 남으면 쌀을 달라고 합니다.

덕남(가명) 씨는 주민등록으로는 저와 동갑입니다만 정확한 나이는 모릅니다. 왜냐면 보육원에서 만들어진 호적이기 때문입니다. 십몇 년 전에 연안부두 어시장 근처에서 노숙하다가 민들레국수집을 찾아왔습니다. 한겨울에 청송 감호소에서 나와서 갈 곳이 없어서 노숙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들으니 별이 열세 개나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맘껏 배부르게 밥 먹을 수 있었다면 왜 감옥에 들어갔겠냐고 반문을 했습니다.

65세가 넘어서 기초생활 보장 수급자가 된 후에는 노인복지관에서 식사했었는데 코로나 19로 복지관 급식이 중단되어서 다시 민들레국수집으로 도시락 꾸러미를 받으러 옵니다. 어느 날 아주 미안한 표정으로 부탁을 합니다. 10킬로 쌀 한 포를 얻을 수 있는지 물어봅니다. 도시락만으로는 배가 고파서 밤에 잠이 오질 않는답니다. 복지관에서 급식하기 전까지는 매달 한 포씩 드리겠다고 했더니 고맙다고 합니다.

2014년에 필리핀에 민들레국수집 장학을 시작하면서부터 인천에 사는 필리핀에서 결혼이민을 온 필리핀 엄마 가족들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매달 한 번 민들레 꿈 어린이 밥집에 모여서 필리핀 음식을 요리해서 나누고 생필품도 나누고 쌀도 20킬로 한 포씩 나눴습니다. 필리핀에서 살면서 깜짝 놀란 것 중의 하나가 필리핀의 가장 큰 명절이 성탄절에 크리스마스 선물로 쌀을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겨우 네 살짜리 꼬마가 4킬로나 되는 쌀을 신이 나서 낑낑대면서 끌고 가는 모습도 있었습니다. 얼마나 배고픔이 무서운 것인 줄 아이들도 알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필리핀 우리 아이들은 장학금보다 쌀을 선물하면 정말 좋아합니다. 필리핀 엄마들이 매달 나눠드리는 쌀을 정말 좋아합니다. 코로나 19 때문에 필리핀 다문화 가정이 아주 많이 어려워졌습니다. 마스크를 구하는 것도 힘들어했습니다. 지난해 2월부터는 쌀과 함께 엄마들과 아이들 마스크까지 나눴습니다. 

 

설날과 추석 당일에는 집에서 민들레 식구들과 함께 보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이번 명절에는 우리 집에서 만나지를 못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민들레 식구들이 이번 설날에는 손님들에게 도시락 꾸러미를 나눠주고 싶다고 합니다. 차마 설날에도 도시락을 싸자는 말을 못 했는데 먼저 이야기를 해서 참 좋습니다.

사실 명절 연휴는 노숙하는 이들에 제일 싫어합니다. 무료급식소 문을 여는 곳도 없고 도시락을 나눠주는 곳도 없습니다. 그래서 명절 다음 날 손님들에게 어제 무엇 좀 드셨는지 물어봅니다. 컵라면 하나 먹었다고 합니다. 빵 하나 먹었다고 합니다. 아예 굶었다고 합니다. 이번 설날에는 우리 손님들에게 명절 음식까지 푸짐하게 나눌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우리 민들레 식구들도 전에 노숙할 때 정말 서러웠다고 합니다. 

올해 설날은 금요일인 2월 12일입니다. 2월 10일(수)에는 손님들에게 도시락 꾸러미를 드리면서 용돈을 주는 날입니다. 필요한 옷과 운동화 그리고 침낭과 방한용품 또 핫팩도 나누어 드립니다. 목요일만 쉬고, 설날에도 도시락을 나눠드립니다. 그리고 13일인 토요일부터는 정상으로 운영을 합니다. 민들레 포장마차도 열어서 온종일 어묵도 대접하고 컵밥도 나눕니다. 우리가 조금만 이웃과 나누면 놀라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피터 모린은 애덕 실천은 개인의 인격적 책임이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서영남 베드로
민들레국수집 대표

 

 

 

 

도로시데이영성센터-가톨릭일꾼 후원하기
https://v3.ngocms.co.kr/system/member_signup/join_option_select_03.html?id=hva82041

종이신문 <가톨릭일꾼>(무료) 정기구독 신청하기 
http://www.catholicworker.kr/com/kd.html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