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어게인 30호 가수 때문에 지금 나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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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어게인 30호 가수 때문에 지금 나는 행복하다
  • 최태선
  • 승인 2021.01.24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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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선 칼럼

한 방송에서 진행되고 있는 무명가수들의 경연에서 출연하는 가수들은 자신들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번호로 불린다. 익명성이다. 익명성은 선입관 없이 사람을 보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어쩌면 오늘날 불평등한 사회에 대한 저항이 내포되어 있는 사고의 발상일 수도 있다. 그래서 그런지 그들의 경연은 뻔하지 않다. 창의력이 부각된다. 천재성을 가진 사람이 각광을 받는다. 다른 경연에서라면 노래만 잘하면 된다. 그런데 번호를 사용하니 노래만 잘하는 것으로는 주목을 받을 수가 없다.

번호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엇인가. 당연히 수감된 사람들이 떠오를 것이다. 그들은 수감되는 순간 자신의 이름을 상실한다. 그들은 모두 죄수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인식할 수밖에 없다. 인간성의 말살이다. 그들은 당연히 출감 날짜를 고대하게 된다. 그 고대 속에는 자신이 다시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는 날이라는 기대가 들어있다. 인간은 번호로 불리면 안 된다. 그것은 그가 더 이상 인간이기를 거부당하는 것이다. 굳이 여기서 김춘수 시인의 ‘꽃’을 강조하지 않아도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름에 담겨있는 인간성이다.

그런데 감옥에서만 그렇게 인간이 비인간화 되는 것이 아니다. 대형교회를 가서 예배를 드려보라. 물론 오래 다닌 사람들이 서로 이름을 아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서로의 이름을 모른다. 이름을 모른다는 것은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의미이다. 그런 사람들이 옆과 앞과 뒤를 바라보며 사랑한다는 말을 나눈다. 이것이 ‘사랑의 타락’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기란 좀처럼 어렵다. 그들은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서로 위로를 받았다고 착각한다. 정말 위로를 받았을까. 받는다. 무엇으로. 그것은 자신이 사랑한다는 말을 내뱉었다는 것으로 자신의 책임을 다한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그것이 사랑이라는 단어의 타락이며 몰락이라는 사실을 애써 외면한다. 그것이라도 안 하면 정말 외롭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의 타락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 비인간화이다. 교회가 세상문화에 따라 비인간화의 선봉에 서게 된 것이다.

비인간화는 나쁜 것이다. 악한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모든 악에도 순기능이 존재한다. 우리는 그 순기능을 ‘싱어게인’이라는 경연 프로그램을 통해 확인한다. 모두가 똑같은 취급을 받는 것이다. 과거의 인기나 경력은 더 이상 경연의 참고자료가 되지 못한다.

그들은 평등해졌다! 그들은 동등한 기회를 가졌다.

이것이 비인간화의 순기능이다. 그런데 그 순기능이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다. 먼저 다양성이다. 시청자들은 번호로 불리는 가수에 다른 면을 기대한다. 그것이 바로 창의성이다. 번호로 불리는 가수가 어필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독특함이다. 그냥 노래만 잘하는 것으로는 강렬한 인상을 남길 수 없다. 좋은 점수를 받을 수가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만의 독특함을 부각시켜야 한다. 그렇게 자신만의 독특함을 부각시키고 그것을 인정해주는 것이 그 경연이 인기를 끌게 된 결정적인 요소다. 나도 모르게 월요일을 기다린다. 그리고 방송이 끝나는 순간 ‘벌써’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이 프로에서 그동안 알 수 없었던 새로운 것을 느끼고 볼 수 있다. 가장 먼저는 이미 언급했듯이 평등함이다. 모두에게 똑같은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우리 모두는 무의식적으로 공감하게 된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평등이라는 단어에서 무엇이 연상되는가. 나는 하나님 나라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평등은 하나님의 정의가 이루어지는 곳에서만 이루어지는 지고의 행복이다. 불평등을 정의로 인식하는 사람들은 평등을 불의로 인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싱어게인이 재미있는 이유를 생각해보라. 우리도 무의식적으로 평등을 오매불망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그리고 무명가수들이 번호로 불리면서 행복하게 노래하는 모습을 보라. 비인간화의 상징인 번호를 통해 그들이 다시 인간이 되고 있지 않은가. 내가 지금 인간들을 번호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인간을 번호로 부르는 것은 악이다. 그러나 그런 악이 가진 순기능만으로도 우리가 얼마나 정의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가, 우리가 정의를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장애를 가지고 있는가를 보라는 것이다. 그리고 번호라는 비인간화를 통해 일시적으로 회복된 인간성만으로도 인간이 얼마나 인간다워질 수 있는가를 확인해 보라는 것이다.

 

싱어게인 유튜브 갈무리 사진
싱어게인 유튜브 갈무리 사진

그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인물이 30호 가수다. 그가 부른 치리치리뱅뱅을 보라. 그것이 너무 새로운 해석이라서 그는 경연에서 졌다. 그러나 그것이 너무 새로운 해석이라서 그는 다시 무대에 서게 되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당당하게 올어게인을 받았다. 이제 심사위원들이 그의 창의성에 익숙해진 것이다. 그가 어떤 노래를 부를지 기대를 하게 된 것이다. 아무도 알 수 없다. 만일 그가 다시 치리치리뱅뱅을 부른다면 그의 주가는 떨어질 것이다. 그는 또 다시 새로운 노래를 불러야 한다.

나는 그 새로움이야말로 생명에 대한 찬가라고 생각한다. 생생한 생명은 뻔하지 않다. 그는 언제라도 새롭게 꽃을 피워낸다. 그가 만나는 사람에 따라, 그가 처한 상황에 따라 그는 변신에 변신을 거듭한다. 이것이 생명의 발현이다. 이것이 주님이 말씀하신 생명으로 풍성해지는 가장 분명한 현상이다. 나는 그런 생생함, 생명으로 풍성해지는 아름다움을 30호 가수에게서 보았다.

그런데 그런 그의 창의력은 우연한 것이 아니다. 그는 유명한 이재철 목사님의 아들이다. 이재철 목사님은 우리 시대 목사의 본이다. 물론 나는 그분에게 만족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새로운 꿈을 꾸기 때문이다. 그분의 길과 내 길은 다르다. 그러나 나는 그분을 존경한다. 그분이 가시는 길이 아름답다. 그러나 나는 그분과 같은 길을 가지 않는다. 이것이 영원한 생명을 받고 생명으로 풍성해지는 길을 가는 사람들의 특성이다. 그래서 나는 누구에게도 맨티 역할을 하지 않는다. 이재철 목사님도 나도 본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진정한 하느님의 백성은 자신의 길을 가야 한다. 가장 생생한 모습으로. 그리고 이것이 바로 생명의 역사이다.

대형교회들을 보라. 광화문 집회에 참석한 분들을 보라. BTJ에 참석하는 사람들을 보라. 이들의 특성이 무엇인가. 똑같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들이 생명을 말살하는 비인간화의 주범임을 보여준다. 비인간화된 사람의 특성 가운데 가장 현저한 현상은 이성의 상실과 폭력의 일상화이다. 획일화는 비인간화의 가장 현저한 특징이며 그것은 반드시 이성의 상실과 폭력의 일상화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창의성과 다양함과 생생함은 과정이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의 정의에 매진하고 헌신하게 된다. 각각의 자유로움으로 하느님의 정의라는 하나님의 꿈을 실현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된다. 그들이 머무는 곳에 하느님 나라가 이루어진다. 그들이 머무는 곳에 하느님의 정의가 강같이 흐르게 된다. 물론 그것은 평화와 비폭력으로 특징지어질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평등해지는 그곳에서 사람들은 사람이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보고 배우게 될 것이다.

사실 나는 어제에 이어 오늘 다시 시장 신화에 대한 언급을 계획했다. 그러나 벌써 오늘 분량의 지면이 채워졌다. 우리는 우리들이 시장 신화에 갇혀 대안을 생각하지 못하는 장애를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을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

최근 나는 명동밥집에 관한 기사를 보았다. 누구건 배고픈 사람들이 와서 먹을 수 있는 곳이다. 나는 정말 그런 일을 계획하고 실천할 수 있는 분들을 존경한다. 그런데 개신교에서는 예배타령에 갇혀 종교탄압을 주장하며 어떻게 하든 살려고 하는 불쌍한 사람들을 보게 된다. 우리 시대의 레미제라블이다.

나는 30호 가수가 인기를 얻고 성공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나는 그의 말년이 성공한 가수가 아닐 것이라고 짐작해본다. 그의 미래는 하느님의 정의에 대한 헌신이 될 것이라고 나는 기대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를 통해 생명으로 풍성해지는 하느님의 역사가 보이기 때문이다. 그가 무엇을 하든 종국에는 하느님의 정의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나는 믿고 기대한다.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믿음을 심었다. 교회가 아니라 믿음을 물려주었다. 우리는 30호 가수를 통해 믿음의 역사를 보게 될 것이다. 30호 가수 때문에 나는 지금 행복하다.

 

최태선
하느님 나라의 시선으로 살아가는 
55년생 개신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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