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강화도, 간절함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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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내리는 강화도, 간절함에 관하여
  • 한상봉 편집장
  • 승인 2021.01.23 21: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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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봉의 오늘생각-2021.1.22.
사진=한상봉
사진=한상봉

1. 어제였지요. 관음사찰로 유명한 강화도 보문사로 가는 길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엔 강화도에서 석모도 가는 배를 타야 닿을 수 있었던 보문사. 지금은 석모대교를 타고 갑니다. 모든 간절함이 바다를 가로지르는 것만 같습니다. 비가 내려 뿌우연 하늘이라 알 수 없는 심사를 더 깊게 가라앉게 하는 것만 같습니다. 급발심입니다. 갑자기 마음이 움직여 그리로 갔습니다.

2. 어제는 108배를 보문사 극락보전에서 아미타 부처님 전에 올렸습니다. 아미타불은 근기가 부족한 이들의 손을 이끌어 극락에 닿게 한다는 불교 타력신앙의 본존입니다. 기왕이면 석가모니불처럼 이생에 깨달음을 얻어 온전한 해방에 이르면 좋겠지만, 용기가 부족한 저희로선 우리 자신보다 더 큰 원력에 기대어 하늘을 만지고 싶은 모양입니다. 앞서 깨달음에 이른 분들에게 존경의 염을 담아올린다는 생각으로 극락보전에 엎드려 있었습니다. 특히 천진한 얼굴을 잊을 수 없는 정인이의 명복을 이곳에서 빌어 봅니다.

3. 왜 가톨릭신자가 절에 가서 절을 하는지 뜨악한 눈빛을 보내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이해하는 하느님은 불가의 모든 것을 넘어서는 분입니다. 온 세상이 그분 그늘 아래 있으니, 제가 절을 하는 곳이 어디인들 그분의 가피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세상 어디든 넘치는 은총과 자비 안에서 하느님께 절을 할 뿐입니다.

4. 극락보전을 나와 산등성이로 이어진 수백 계단을 밟아 마애석불 앞에도 갔습니다. 석불 자체는 썩 제 맘에 드는 형상은아니었지만, (제가 경주에 살면서 숱한 마애석불을 보게 되면서 석불에 대한 눈높이가 좀 높아진 모양입니다만) 그곳에서 바라보는 아랫 세상은 깊은 침묵에 잠겨 "모든 게 괜찮다, 다 괜찮다" 위로하는 듯 합니다. 그리고 돌아서 내려오며 내가 품을 세상이 내 우산 밑이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 눈과 마음에 포착되는 세상만이 현실이고, 그 작은 길을 따라서 그분에게로 가야지, 생각합니다. 대의명분보다 작지만 구체적인 사랑에 머물러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진=한상봉
사진=한상봉

5. 김응교 선생님이 지은 <그늘>이란 문학에세이집이 있습니다. 거기서 재일교포 작가인 양석일의 <어둠의 아이들>이란 작품 소개를 읽었습니다. 여기서 양석일 님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는 빛의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빛 속의 사람들은 어둠의 사람들이 보이지 않지만 어둠의 사람들은 빛의 세계의 사람이 잘 보입니다. 빛 속에서 사는 사람들은 어둠의 사람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보려하지도 않습니다. 이렇게 되면 보이지 않기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소설과 영화를 통해 어둠의 세계와 나 자신을 어떻게 마주하여야 하는가 생각합니다. 빛의 세계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여성과 아이같은 약자들입니다. 어둠 속 세계와 마주하려는 '어둠의 상상력'이야말로 작가에게 필수불가결한 일입니다. 소설 제목을 '어둠의 아이들'로 정한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6. 문득 나는 빛의 세계에 속한 사람인지 어둠의 세계에 속한 사람인지 생각해 봅니다. 그래요, 나는 두 세계의 중간에 서 있는 사람일 겁니다. 빛과 어둠에 모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상승하고자 하나, 어둠에 갇힌 이들을 잊을 수 없고, 하강하고자 하나, 좀더 안락한 삶을 떨쳐내기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 중간 어디쯤에서 어정쩡한 자세로 주저앉아 있을 때가 많습니다. "그때 그 때 다르다"는 말이 좀 비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7. 파주로 돌아오며, 생각합니다. 내 비겁함을 떨쳐 내는 게 나를 구원할지도 모른다고. 엉거주춤 자세에서 벗어나 이제 그만 일어나야 한다고 말입니다. 일어나서 어느쪽이든 갈 길을 정해 걸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차창을 얼룩지게 하는 빗방울들이 와이퍼에 씻겨내리 시야가 또렷해집니다. 그렇게 내 마음도 닦아낼 수 있다면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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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가톨릭일꾼(http://www.catholicwork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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