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정양모 신부님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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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정양모 신부님을 생각하며
  • 가톨릭일꾼
  • 승인 2021.01.23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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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봉의 오늘생각-2021.1.19.

1. 오늘은 108배 23일째 되는 날입니다. 절을 할 때마다 "오늘 올린 108번의 절이 만약 작은 복이라도 된다면 모든 존재들의 평안과 행복을 위해 드립니다." 하고 두 번씩 읊조리며 마무리 합니다. 절을 하다 보면 세상과 인간의 평안에 앞서 제 영혼의 평안과 행복을 맛보기도 합니다. 그래서 모든 좋은 일은 남을 위한 것이면서 동시에 자신을 위해 유익합니다.

2. 어제 절을 하다가 떠오른 책은 <한국교회의 복음화를 위하여>라는 작은 책자입니다. 서공석 신부님과 정양모 신부님, 이순성 신부님과 이제민 신부님이 함께 엮은 책입니다. 이분들에 대한 감회가 새삼 새록 가슴을 따뜻하게 저밉니다. 우리 교회에 남아있는 몇 안 되는 스승이기 때문입니다. 이런저런 인연으로 네 분 모두 뵐 수 있었고, 그 가운데 정양모 신부님은 학창시절에 직접 배우면서 '예수와 신앙'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얻어누린 분입니다.

 

사진=한상봉
사진=한상봉

2. 수도원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당연히 신학교를 염두에 두었던 고등학교 시절에 가장 심각한 신앙적 위기를 겪었습니다. 마음이 절박할수록, 제가 기존에 알고 있는 하느님과 예수님에 대한 의구심이 큰 나무와 같이 자라서 제가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결국 모든 걸 포기하고 희망의 한자락이라도 잡아볼 요량으로 예수회 재단인 서강대학교에 들어가고, 그곳에서 졸업할 때까지 정양모 신부님의 존안을 뵈올 수 있었습니다.

3. 당시에 저를 신앙적 위기에서 구원한 것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정양모 신부님의 신약성서 강의입니다. 신학적 기초가 없는 소박한 신앙에서 역사적이고 비판적인 신앙으로 발돋음하도록 이끌어 주었습니다. 두번째는 해방신학입니다. 대학 2년 동안 그리스도교 교양을 익혔다면, 군생활 하면서 예수가 도대체 누군지 더 깊이 탐색했고, 제대 후 복학하면서 <제3세계신학회>라는 서클을 동료들과 만들어 공부했습니다. 그때가 1987년 6월 항쟁을 전후한 시기였지요.

4. 학내 서클 등록하는데, 혜명반(불교)과 '스카'(기독학생회), 가톨릭학생회를 빼고는 다른 모든 선교 목적의 개신교 서클이 반대했습니다. 앞서 세 곳은 이른바 운동권 종교서클이었고, 나머지는 개신교 보수교단의 학생단체라고 봐야 하겠죠. 이들의 반대로 등록이 안 되었는데, 한 가지 방법은 지도교수가 있으면 바로 서클등록이 가능하다고 하더군요. 그때 기꺼이 저희 지도교수가 되어 주신 분이 정양모 신부님이십니다.

5. 초대회장은 지금은 충청도에서 한옥 목수 일을 하고 있는 조관호가 맡았고, 가장 든든한 후배는 졸업후 고향으로 내려가 지금껏 농사를 짓고 있는 김의열입니다. 이 친구는 정일우 신부님과 오랫동안 솔뫼공동체 일도 하였습니다. 박성길 형은 횡성에서 장애인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그밖에 기억나는 멤버들이 여럿이지만, 모두가 그립고 아름다운 얼굴들입니다.

 

6. 정양모 신부님은 저희 서클 회보인 <생명으로의 부르심>을 참 좋아했습니다. 이 회보를 가리키며 안동교구의 정호경 신부님 이야기를 여러번 하시기도 했습니다. 그 이후로도 정 신부님과 인연은 오래 지속되었는데, 수년 전에 신부님과 더불어 바오로 행적을 찾아다니는 그리스, 불가리아, 터키 순례는 퍽 커다란 감명을 남겼고, 개인적으론 영광으로 남아 있습니다.

7. 신부님께서는 완고한 가톨릭 풍토에서 나올 수 없는 짐짓 혁명적인 발언을 하곤 하셨죠.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가 가장 존경하고 흠모하는 이에게 바치는 최고의 헌사"라고 이해하는 게 맞다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를 '신'으로 부르는 것은 실체적 진실이라기보다, 그분에 대한 우리의 사모의 정이 듬뿍 담긴 표현이라고 보신 것입니다. 이 때문에 멀쩡히 본당에서 초청 강의하다가 윗선의 간섭으로 무산된 경우도 많았습니다. 급진적 신앙은 참 고달픈 길이겠지요. 이런 분이시니, 다석 유영모 선생님을 정 신부님께서 흠모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릅니다. 유영모 선생님은 하느님을 "없이 계신 분"이라는 놀라운 말로 표현할 줄 아는 분이었기 때문입니다.

8. 정양모 신부님은 <한국교회의 복음화를 위하여>라는 책에서 "교회개혁 8개조"를 발표하셨습니다. 그 서두에 해당하는 글을 조금 옮겨 보겠습니다.

"예수는 율법을 금과옥조로 여기던 유대교를 혁신하기로 작심하고 613가지 율법조항을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환원시키셨다. 이른바 사랑의 이중계명이다. 이를 유가식으로 표현한다면 경천애인(敬天愛人)이요, 불가식으로 표현한다면 상구신애 하화인애(上求神愛 下化人愛)이다.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은 언감생심 엄두도 내지 못한 일을 예언자적 기질을 타고나신 예수께서는 감행하셨다. 성전제의에 매달린 제관들과 율법공부에 매달린 율사들은 이를 신성모독으로 확신한 나머지 총독을 힘을 빌려 서기 30년 4월 7일 금요일에 골고타 형장에서 예수의 목숨을 끊었다."

9. 그런데 이런 예수의 부활을 확신한 그리스도인들이 만든 교회가 지금은 제관들과 율사들의 교회로 되돌아갔다는 게 그분의 판단입니다. 그래서 글로즈 토드랜크라는 목사가 <기독교의 혁신>이란 책에서 부르짖은 기독교 혁신 10개 조에 영감을 받아, 정양모 신부님 나름대로 한국교회 혁신 8개 조항을 만드셨습니다. 그 항목은 이렇습니다.

-예수에 대한 신앙에서 예수의 신앙으로
-현실 야합에서 예언자적 자세로
-배타주의에서 종교다원주의로
-죄 강조 대신 사랑 강조의 영성으로
-상하구조 교회에서 평등구조 교회로
-표층신앙에서 심층신앙으로
-교훈적 강론에서 복음선포로
-참되고 착하고 아름다운 교회를 그리워하며

10. 당분간 그 항목을 하나하나 따라가며 제 생각도 덧붙여 가며 교회개혁 이야기를 좀 나누어 볼까 생각합니다. 그 길에서 여러분과 진지한 동행이 이어지길 바랍니다. 이참에 정양모 신부님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다시한번 고개 숙여 표하고 싶습니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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