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성경과 평신도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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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성경과 평신도 리더십
  • 한상봉 편집장
  • 승인 2021.01.23 21: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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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봉의 오늘생각-2021.1. 17.
사진=한상봉
사진=한상봉

1. 햇볕이 참 따사롭게 은총처럼 내리는 청명한 하루입니다. 길고양이 한 마리가 마당에 놓인 물그릇에 입에 대고 떼지를 못합니다. 길고양이들은 밥도 문제려니와, 겨울엔 물을 얻기가 참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내가 쳐다봐도 아랑곳없이 한참 물을 먹는 녀석을 보면서, 그리 춥지 않은 날씨가 다행이다 생각합니다. 추운 날에는 빨리 얼지 말라고 따뜻한 물을 담아 바깥에 내어 놓지만, 강추위엔 요령부득입니다. 길 위에 있는 모든 생명들은 그렇게 가엾고 고단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온기가 배어 있는 집안에 머문다는 게 미안한 하루입니다.

2. <예수처럼 사랑하면 죽는다>라는 제목으로 나오는 가톨릭성서모임 특강 자료를 탈고하고 수녀회에 보냈습니다. 제가 주로 참고한 책들은 개신교 출판사나 시공사 등 일반 출판사에서 출판한 책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다보니, 인명과 지면, 사건을 다루는 번역어들이 가톨릭과 개신교 사이에 퍽 차이가 크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모든 걸 가톨릭식 용어를 사용하자니, 사실상 공용 맞춤법 통일안에 벗어나는 것도 더러 있더군요. 예 1. 저는 일반 용례에 따라 '스룹바벨'이라 한 것이 가톨릭 성경에선 '즈루빠벨'이라 하더군요. 많이 배우면서 작업합니다.

3. 또 하나, 저 같은 비전문가의 눈에는, 우리 말을 너무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주교회의에서 새로 번역한 성경이 좀 불편하고 까칠합니다. 우리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개신교를 포함해서) <공동번역 성서>를 잃어버린 게 가장 안타깝습니다. <공동번역 성서>의 언어는 우리 몸에 착 와서 안깁니다. 교회에선 '의역'이 심해서 어쩔 수 없다고 변명하지만, 특히 시편이나 이사야 예언서를 읽을 때 번역어의 차이에서 오는 감동의 차이는 엄청나게 큽니다. 물론 교회에선 새번역 성경을 '전례용 성경'이라고 했지만, 사실상 공용 성서가 되어, 공동번역은 폐기된 상태입니다.

4. 그래서 생각합니다. 직역이라는 새번역 <성경>은 말 그대로 전례용이나 전문가용으로 쓰고, <공동번역 성서>를 "신자용 성경"으로 정해 다시 보급하면 좋겠습니다. 그게 쉽고 아름다와 신자들의 신앙생활에도 더 도움이 될듯 합니다. 성경은 우리 말의 늬앙스를 잘 아는 분들이 번역하면 좋겠습니다. 제발~

5. 하물며 새번역 성경 제작과정에서 빚어진 논란을 잠시 돌아보면, ... 그러더군요. <공동번역 성서>는 저작원이 대한성서공회에서 가지고 있어서, 매년 가톨릭교회가 성서공회에 갖다바치는 저작권료가 상당했고, 그 비용을 우리 교회 안으로 돌리려는 노력이었다고 합니다. 사실 주교회의(천주교중앙협의회)는 성경 판매로 천문학적 이득을 본 게 사실입니다. 한 집에 한 권만 사도, 수백만 권 아닙니다. 죽은 자식 거시기 만지는 이야기 같아서 헛헛하지만, 그래요, 교회도 벌어 먹고 살아야지요.

6. 이참에 생각하는 것은, <오늘의 말씀>입니다. 전례력에 따라서 매일 읽어야 하는 성경 본문과 해설 및 전례서 내용을 담아서 신자들에게 보급하는 월간지인데, 25년 동안 어느 평신도가 발행하다가 2010년 2월호(통권 297호)로 폐간되었습니다. 나중에 주교회의에서 <매일미사>를 만들면서 경쟁하다가, 결국 새번역 <성경>이 나오고, 이 성경 사용을 허락하지 않는 방식으로 문을 닫게 만들었던 걸 기억합니다. 이것도 결국 교회 시장을 둘러싼 이권다툼이 개입된 것이지요.

7. 성경이든 <매일미사>든 독점권을 갖는다는 것은, 성경이 갖는 특수성 때문에 교도권을 지키는 의미도 있지만, 복음선교의 다양성을 해친다는 점에서 위험하고, 자칫 교회가 돈벌이 수단을 장악한다는 점에서 복음적으로 찜찜한 일이기도 합니다. 교도권을 주교가 갖는다는 것은 교회법상 당연한 일지만, 평신도의 자발적이고 창조적인 해석과 투신을 가로막는다는 점에서 비민주적이고, 자폐적인 측면도 있습니다. 그래서 "성직자들이 알아서 하고, 신자들은 시키는대로만 한다"는 소극적 신앙이 칭찬받는 교회 분위기를 형성하는 거죠.

8. 오늘 우연히 주원준 선생님의 <집콕복콕>이라는 예수회 마지스 청년센터에서 주관하는 유튜브를 보았는데, 느끼는 점이 좀 있었습니다. 게중에 주원준 선생님이 "준비된 평신도"가 없다는 이야기는 참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최근에 교회 안에서 유행어가 된 '공동합의성'도 그렇지만, 교회 안에서 중요한 직무를 평신도에게 나눠줄 때 준비된 또는 양성된 평신도 리더십이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신 것이지요. 사회생활에선 잘 나가는 평신도라도 교회 일을 맡기면 교회일을 세속적으로 처리하거나 엉뚱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는 겁니다. 교회정신, 주원준 선생님 말씀대로라면 '그리스도교 교양'이 부족한 이들에게 교회 일을 맡길 수는 없다는 거지요.

9. 결국 교회민주화 또는 공동합의성이 제대로 발휘되려면, 관건은 평신도 리더십을 양성하는 것입니다. 복음과 교회정신에 부합하는 생각과 행동을 낳는 평신도가 많아져야 한다는 겁니다. 평신도 리더십은 최소한 성경과 사회교리 정도는 꿰고 있어야 합니다. 잠깐 가톨릭일꾼 양성이 얼마나 절박한 과제인지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스스로 수행하고 공부하고 실천하는 평신도. 사실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라 굳이 구분하지 않아도 좋을만큼 '그리스도교 영성'에 깊이 닿아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늘어나고, 그분들과 깊은 인연을 맺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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