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마 유치환과 선한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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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마 유치환과 선한 나무
  • 한상봉 편집장
  • 승인 2021.01.23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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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봉의 오늘생각-2021.1.6
사진=한상봉
사진=한상봉

1. 오늘은 108배를 시작한지 10일째 되는 날입니다. 어젯밤엔 한국순교복자수녀회에서 선물받았던 <무아>초를 켜고 절을 했습니다. 절을 하다보면, 마음 모두었던 지향은 어데가고 온갖 상념이 밀려왔다 다시 떠나곤 합니다. 그러거나 저러거나 상관없이 절을 해야 절입니다. 머릿속은 사방을 헤매어도 몸은 어김없이 앞으로 쏟아지고 알아서 기도합니다. 그러니 다행입니다.

2. 절을 하다가 책꽂이에 박혀있던 해묵은 청마 유치환의 시, 산문집이 눈에 자꾸 들어옵니다. <깃발> <나는 고독하지 않다>는 제목이 선명합니다. 유치환이라면, 제가 고등학교 시절부터 줄곧 마음에 두었던 시인입니다. 삼중단 문고판부터 시작한 청마에 대한 애정은 지금도 바래지 않고 내 영혼과 내 글에 묻어납니다. 뭐가 그리 좋았는지 생각해 보면, 청마의 시와 산문에 산맥의 기개과 풀꽃의 애잔함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깃발>이나 <바위> 같은 시도 썼지만, <나는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는 이영도 시인과 주고받은 연서도 있습니다. 이건 시와 혁명의 통일이요, 내 안의 아니마(여성성)를 길어올리는 남자의 마음이기도 했습니다.

3. 그중에서도 저는 <선한 나무>를 참 좋아합니다. 사람이란 어쩌면 어릴수록 완고합니다. 성당에 다니며 사제나 교사가 되고 싶었던 저는 "교훈적인 시나 글"을 고집했고, (지금은 "사람이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지, 하는 융통성이 고도로 발휘되고 있지만) 아마 그런 이유로 더 좋아했던 모양입니다. 잠시 시를 옮깁니다.

선한나무
_유치환

"내 언제고 지나치는 길가에 한 그루 남아 선 노송(老松) 있어, 바람 있음을 조금도 깨달을 수 없는 날씨에도, 아무렇게나 뻗어 높이 치어든 그 검은 가지는 추추히 탄식하듯 울고 있어, 내 항상 그 아래 한때를 머물러 아득히 생각을 그 소리 따라 천애(天涯)에 노닐기를 즐겨하였거니, 하룻날 다시 와서 그 나무 무참히도 베어 넘겨졌음을 보았나니.

진실로 현실은 이 한 그루 나무 그늘을 길가에 세워 바람에 울리느니보다는 빠개어 육신의 더움을 취함에 미치지 못하겠거늘, 내 애석하여 그가 섰던 자리에 서서 팔을 높이 허공에 올려 보았으나 그러나 어찌 나의 손바닥에 그 유현(幽玄)한 솔바람소리 생길 리 있으랴.

그러나 나의 머리 위, 저 묘막(渺漠)한 천공(天空)에 시방도 오고가는 신운(神韻)이 없음이 아닐지니 오직 그를 증거할 선(善)한 나무 없음이 안타까울 따름이로다."

4. 제 삶과 제 글이 "유현한 솔바람 소리"를 생기게 하는지 저는 모릅니다. 하지만 그런 소리 전할 수 있기를 갈망하는 건 사실입니다. 늘 허방을 짚어도, 후회하고 다시 실수하는 일이 많지만, 그래도 그런 갈망이 그치지 않으면 언젠가 (실수로라도) 그윽한 소리를 내보낼 때도 있겠지, 합니다.

5. 다락에서 청마의 책을 끄집어 와서, 표지를 젖히니, 시인의 이야기가 이렇게 시작하네요.

"이 시는 나의 출혈이오 발한이옵니다. 그렇기에 뉘가 내 앞에서 나의 시를 운위함을 들을 적엔 의복 속의 피부를 들추어들 보고 말성하듯 나는 불쾌함을 금치 못하옵니다. [저도 모르는 낱말이 나오네요. 옛스러워 그냥 둡니다] 그러므로 가다오다 가난한 이 책을 보게 되시는 분은 어느 가장 무료한 마음과 일의 틈을 타서 가만히 읽으시고 가만히 덮으시고 가만히 느껴 주시기 바랍니다.

항상 시를 지니고 시를 앓고 시를 생각함은 올마나 외로웁고 괴로운 노릇이오며 또한 얼마나 높은 자랑이오리까. 이 자랑이 없고 시를 쓰고 지우고, 지우고 또 쓰는 동안에 절로 내 몸과 마음이 어질어지고 깨끗이 가지게 됨이 없었던들 어찌 나는 오늘까지 이를 받들어 왔사오리까.

시인이 되기 전에 한 사람이 되리라는 이 쉬웁고 얼마 안 될 말이 내게는 갈수록 감당하기 어려움을 깊이 깊이 뉘우쳐 깨다르옵니다. 그러나 드디어 시 쓰기를 병인양 벗어버려도 나를 자랑할 날이 앞으로 반드시 있기를 기약하옵니다. ..."

6. 시가 아니어도 시인이 아니어도 아름답고 정갈한 사람 되기를 희망했던 청마 유치환의 마음은 종교와 같습니다. 저 역시 글을 쓰지 않아도, 신학을 하지 않아도, 가톨릭일꾼이라 내밀지 않아도, 차마 신앙인이라 말할 수 없어도 생애가 아름답기를, 생애가 시가 되기를 바라는 것을 과욕이라 탓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제 삶이 그저 몇몇 낱말의 나열이 아니라, 뜻을 가진 언어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7. 제가 대학에 입학하고서 첫 오리엔테이션 가는 날, 버스칸에서 돌아가며 신입생들의 자기 소개를 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선배가 던진 질문은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하는 것이었고, 저는 "청마 유치환과 함석헌 선생"이라 했습니다. 함석헌 선생님은 도서부 담당 선생님 소개로 <뜻으로 본 한국역사>라는 책을 읽었고, 이 때문에 사학과를 지망했던 까닭입니다. 암틈 청마 때문인지 함석헌 때문인지....모르지만, 그 선배의 눈에 꽂혀 결국 대학생활 초장부터 운동권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으니, 다행인지요, 불행인지요?

8. 어제 108배를 드리면서 "이승에서 좋은 스승을 만나 자유와 지혜를 얻기를" 바랐습니다. 좋은 제자가 좋은 스승을 만나고, 좋은 스승이 좋은 제자를 만나겠지요. 그래서 매일 좋은 학생이 되고 좋은 선생이 되자고 마음 먹습니다. 먹고서 탈이 나지 않기를 바라며 하루를 또 지나가고 있습니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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