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한 노신사의 교회에서 착한 사마리아인의교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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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한 노신사의 교회에서 착한 사마리아인의교회로
  • 한상봉 편집장
  • 승인 2021.01.23 20: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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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톨릭신자로서 자긍심을 느끼게 해 주는 분이 '교황/교종'이라는 것은 아주 새로운 현상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지만, 교회개혁을 바라는 이들은 늘 교황제도의 전근대적 봉건주의를 비판해 왔습니다. 교회 상층부 관행의 비밀주의와 관료주의, 특히 교황권에서 비롯되는 주교와 사제들의 권위주의는 시대정신인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고질적인 적폐로 생각해 왔던 거지요.

2. 이런 문제가 가톨릭교회 안에서 모두 해소되었다고 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프란치스코 교종께서 아무리 관료주의와 성직자 권위주의를 문제삼아도 지역교회의 수장들과 하부단위인 본당에서 예사롭게 볼 수 있는 권위주의는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제는 영적 치유자로 기능해야겠지만, 도리어 신자들에게 상처를 남기고, 그들의 여유로운 생활환경(거처와 생활수준)은 가난한 이들을 부끄럽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오죽하면, 교종께서 한국에 방문했을 때 한국주교들에게 "한국교회는 번영된 교회지만, 가난한 이들을 밀어낼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아립니다.

3. 정말 사랑하는 우리시대의 예언자, 프란치스코 교종이 지난 해 10월 4일에 반포한 ‘형제애와 사회적 우애’에 관한 회칙 「모든 형제들」에 대한 좋은 영상물이 있어서, 이걸 링크하면서 잠시 그 회칙을 살펴봅니다.

 

4. 교종은 이 회칙의 목적이 "모든 형제와 자매에게 복음의 향기(풍미)로 가득한 삶의 방식을 제안"하려는 데 있다고 밝혔습니다. 여기서 복음의 향기는 그리스도의 향기겠지요. 교종은 하느님을 “형제적 사회라는 전망에 영감을 일으킨 아버지”라며, 특별히 형제애 (fraternità)와 사회적 우애 (amicizia sociale)를 강조합니다. 하느님의 자녀들인 우리가 모두 형제와 자매들이며, 모두 같은 배를 타고 있고, 오로지 우리가 함께할 때만 구원받을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5. 이 회칙에서 가장 빛나는 사람은 복음서에 등장하는 <착한 사마리아인>입니다. 교종은 우리가 고통에 등을 돌리고 약자와 취약한 자를 돌보는 데 “문맹”인 병든 사회에 살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럴 때 주목해야 할 사람이 “길 위의 낯선 사람”이라고 합니다.

6. "길위의 낯선 사람"에 관해 잠시 묵상합니다.

사마리아인에게 강도만난 그 사람은 "길위의 낯선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이는 낯선 사람을 돌보아 주었습니다. 낯선 자를 자기 식탁에 앉히는 게 환대이며, 용기있는 친절입니다. 치열한 관대함과 용기있는 선택이 없는 사랑은 '그리스도교적 환대'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냥 사랑을 베풀고 살아야지, 하는 단순한 마음으론 가서 닿을 수 없는 형제애입니다. 그를 만져 내가 더러워질 것을 감수하고 내미는 사랑이 하느님의 자비입니다.

7. 길을 가던 사제와 레위와 교사들은, 자신의 정체성과 상관없이 같은 유다인이면서 다른 유다인을 "길 위의 낯선 사람"으로 그냥 못본척 쌩까고 지나갑니다. 낯선 이는 자신의 안위에 보탬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을 위험에 빠뜨릴 어떤 행동도 감행할 마음이 없습니다. 나의 직업, 나의 생계, 내 가족의 안녕이 언제나 우선입니다. 이 문제가 충분히 해결되었을 때, 자신의 현재 생활수준을 지킬 충분한 안전망이 마련한 뒤에야, 모든 불순함을 막아낼만한 방호복을 입은 뒤에야 상처받은 이에게 가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으로 부르기에 부끄러울 테지요.

8. 이 사람들은 교회를 "부유한 노신사의 교회"로 만듭니다. 고상하지만 늙고 이기적인 교회 말입니다. 빈센트 반 고흐가 목회자가 되기 위해 신학을 공부할 때, 과외교사였던 멘더스 다 코스타는 "부유한 노신사의 교회"를 비판하며 "가난한 이들에게로" 가라고 고흐에게 말한 적이 있죠. 그때 고흐는 부유한 노신사의 교회를 "그들은 참 숨막히는 사람들이군요." 하고 답했습니다.

9. 교종은 우리가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편견과 개인적 관심, 역사나 문화의 장벽을 넘어 다른 사람들의 이웃이 되도록 초대받았다고 강조합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쓰러지거나 고통받는 사람들을 포옹하고 통합하며 도와주는 사회를 만드는 데 공동의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교종은 우리 그리스도인은 “사랑을 위해 창조된 이들”이라고 힘주어 말합니다. 특히 배제된 모든 이의 얼굴에서 그리스도를 알아보라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권고합니다.

10. 길위의 낯선 사람을 형제자매로 끌어안는 그리스도인은 이승에서 또 다른 의미의 "길 위의 낯선 사람"입니다. 남이 이해할 수 없는 놀라운 사랑으로 무장하기를 희망하는 새해입니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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