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걸 시대에 교회는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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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걸 시대에 교회는 어디에 있는가?
  • 김경집
  • 승인 2021.01.10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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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집 칼럼

현대문명을 낳은 핵심적 가치를 하나만 꼽는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자유로운 개인’이라고 대답한다. 중세와 결별하고 근대의 문을 열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보편적 가치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 ‘당연한’ 가치는 저절로 주어진 게 아니다. 인류가 투쟁해서 쟁취한 것이다. 때론 피 흘리고 목숨까지 바쳐서 얻어낸 전리품이다. 우리는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지만 수많은 이들이 그것을 위해 투쟁했다.

20세기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치르느라 그 가치가 유보되거나 퇴행하기도 했지만 1960년대 들어서면서 거세게 세상을 뒤흔들었다. 인류 역사상 그 시절만큼 세상이 뜨겁게 달궈진 적은 없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는 군사쿠데타와 산업화로 바깥세상의 변화에 대해서는 거의 무감각했고 가난에서 벗어나는 일에만 몰두했다.

미국에서는 1950년 후반에 엄혹한 매카시즘이 물러나면서 비로소 이념의 갈등과 공포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개인을 위해 투쟁했다. 흑인해방, 여성해방, 반전, 히피 등 온갖 문제가 한꺼번에 터졌고 유럽에서는 동유럽 국가들이 자유를 위해 투쟁했지만 소련의 무자비한 압제에 꺾였으며, 프랑스에서는 68혁명의 뜨거운 용암이 흘렀다. 교회도 예외는 아니었다. 교황 요한 23세가 1962년 바티칸공의회를 소집해서 바오로 6세 때인 1965년에 종결되었다.

 

여성해방, 거저 얻은 게 아니다

여성은 늘 종속적인 존재로 무시되었다. 유럽에서도 여성참정권은 늦게 허용되어 심지어 스위스는 1971년에야 가능했다.(미국은 1920년, 영국은 1928년, 이탈리아는 1945년, 프랑스는 1946년) 여성참정권도 그냥 얻어진 게 아니다. 수많은 투쟁과 심지어 죽음을 치르고 쟁취한 것이다. 영국에서는 에멀린 팽크허스트의 급진적 투쟁과 국왕의 말에 뛰어들어 순교한 에밀리 데이비슨 등의 희생을 치르고서 얻은 권리였다.

모든 게 처음에는 어색했다. 지금은 누구나 ‘당연히’ 여성의 모든 참정권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여기지만 처음에는 수많은 갈등이 있었다. 1893년 세계 최초로 여성투표권을 허락한 뉴질랜드에서 어떤 여성들은 호위도 받지 않은 채 기표소에 혼자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에 놀라 우편을 통해 투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을 정도였다.

1960년대 미국에서 들끓었던 여성해방운동도 치열했다. 20세기 초반의 여성해방운동이 남성과 동등한 대우를 받는 것에 주력했다면 이때의 여성해방운동은 성에 대한 생물학, 심리학, 문학적 측면을 강조하는 한편 여성문제, 여성운동과 관련된 모든 분야에까지 관심을 증진시켜나간 시기였다. 실천적으로 상당한 발전을 보여주었지만 남성들의 편협한 시선은 여전했고 유리천장도 여전히 공고했다.

글로리아 스타이넘 등이 주창한 미즈(Ms)운동(남성은 평생 같은 성의 Mr.인데 여성은 Miss에서 남편 성을 따른 Mrs.로 바뀌는 정체성의 문제를 따지면서 여성도 Ms.의 일관성을 가져야 한다는)은 오히려 그 명칭을 사용하는 여성들이 많은 억압과 왜곡된 시선 때문에 스스로 포기하는 경우가 흔했다. 어쨌거나 비로소 페미니즘이 인간해방운동의 핵심에 일치한다는 것을 천명한 중요한 전환점인 건 분명했다.

알파걸의 시대가 오고 있다

지금은 많은 여성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정치 영역에서도 수상 혹은 대통령으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여성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미국에서도 드디어 여성부통령이 선출됐고 머지않아 여성대통령이 출현할 것이다. 여러 나라에서 수많은 여성정치지도자가 이미 활동하고 있다. 아직은 기존 질서와 체계의 장벽에 막혀있지만 재계에서도 많은 여성 리더들이 출현할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여성들을 흔히 ‘알파걸’의 전형이라고 부른다.

알파걸(Alpha Girl)은 모든 분야에서 남성과 동등하거나 뛰어난 첫째가는 여성을 지칭하는 말로 그리스 알파벳의 첫 자모인 알파(α)에서 유래했다. ‘첫째가는 여성’을 의미하는 알파걸은 공부, 운동, 대인관계 등 모든 분야에서 또래 남학생과 동등하거나 그 이상의 성과를 보이는 엘리트 계층의 여성을 지칭한다. 이 말을 만들어낸 사람은 미국 하버드 대학의 아동 심리학자인 댄 킨들런 교수인데 북미지역에 거주하는 113명의 소녀를 인터뷰하고 남녀학생 900여 명에게 편지로 설문한 자료를 바탕으로 하여 만든 개념으로 2006년 그의 저서 제목으로 널리 알려졌다.

사법연수원 등에서 여성들이 상위 성적에 포진한 것은 이제 특별한 일이 아니다. 실제로 알파걸들은 성적도 좋지만 다양한 활동에서도 적극적이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성장시키는 성향이 뚜렷하다. 이들은 이전 세대와는 확연하게 다르다. 그들은 자신감과 열정으로 넘친다. 학업과 운동뿐 아니라 사회적 성공에서도 남자들보다 더 뛰어나다. 심지어 남자아이들은 중학교나 고등학교로 진학할 때 남녀공학을 기피한다. 여자들과 경쟁하면 내신에서 불리하기 때문이다. 딸 가진 부모 입장에서는 자신의 딸도 알파걸이기를 꿈꾼다. 이러한 갈망이 자칫 슈퍼우먼 콤플렉스를 만들어내는 경우도 있어서 안타까운 경우도 흔히 본다.

그런 이들이 주목해야 할 대목이 있다. 킨들런은 알파걸 출현의 사회적 배경을 지목한다. 첫째, 새로운 법과 사회 정책들이 여자에게 남자들과 동등한 권리와 기회를 보장했다. 둘째, 알파걸의 엄마를 비롯한 강력한 여성 역할 모델이 점점 많이 등장했다. 셋째, 자녀 교육에 적극 참여한 신세대 아빠들이 딸들의 생각과 감정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아버지들이 딸과 많은 시간을 보내며 자연스럽게 그녀에게 전통적인 남성적 생활방식을 전수하고 내면화시킨 것이다. 이러한 지적은 가정에서부터 사회적 불평등을 겪지 않고 긍정적이고 자신 있는 자아로 키웠다는 점이 핵심이다.

할머니와 어머니 세대가 여성의 권리를 위해 싸웠을 때 그들에게 돌아간 몫은 ‘드세다’ ‘도전적이다’ ‘되바라졌다’ 등의 부정적이고 냉소적인 남성 위주 사회의 외면이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혐’이니 ‘메갈리아 파동’이니 하는 따위의 것들은 그런 점에서 아주 후진적 사회의 행태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증거일 뿐 아니라 올바른 알파걸 출현에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에서 안타까운 일이다.

1960년대 그 뜨거웠던 분출의 시대에 여성해방의 보편적 가치를 전혀 모르고 넘겼던 대가를 어설프게 치르고 있는 건 아닐까? 남들은 이미 그 강을 건넜는데 우리는 여전히 작은 샛강 앞에서 촌스럽게 싸우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면서 어떻게 같은 시대를 산다고 할 수 있을까? 경제적으로는 많이 추격했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이 문제만큼은 30년쯤 뒤진 상태로 있는 걸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사고의 전환이 따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부모가 며칠 집을 비울 때 ‘엄마’가 ‘딸’에게 ‘오빠’ 잘 챙기라고 하는 걸 보면 멀어도 아직 한참 멀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오빠가 동생을 챙겨야지 여자라는 이유로 동생이 오빠를 챙겨야 한다는 생각을 갖는 한 알파걸은 무망한 일이다. 민주적 가정에서만 알파걸이 가능하다. 아들과 전혀 다르지 않은 방법으로 딸들을 교육시켜야 남자아이들과의 경쟁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으며 건강하고, 긍정적이고 자신 있는 태도로 자신의 재능과 꿈을 키워나갈 수 있다. 어른들의 사고가 민주적이고 개방적일 때 가능한 일이다. 페미니즘이 아니라 휴머니즘이, 그리고 민주주의가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일반적일 때 여성의 능력이 온전히 발현된다.

 

여성사제, 얼마나 더 기다려야

우리 사회는 아직도 여성에게 동등하고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는 데 인색하다. 그래도 예전에 비하면 훨씬 나아졌고 앞으로 더 나아질 희망을 갖는다. 그러나 교회는 그런 흐름에 ‘난 몰라’ 오불관언(吾不關焉)이다. 교회의 모든 권력은 남성이 독점한다. 어떤 이들은 12제자가 모두 남성인 것을 전범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작태다. 복음서에 수많은 여성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들의 존재가 던지는 의미가 무엇인지 조금만 생각해도 이렇게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초대교회에서도 여성들의 역할은 매우 컸다. 바오로의 서간문에도 많은 여성의 이름이 나오는 건 그들이 그 교회의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러나 교회가 공인되고 곧 국교가 되면서 모든 교회권력은 남성들이 차지했고 그게 지금까지 이어져온 것이다. 다행히 사회는 여성해방운동의 대가를 치르면서 발전했지만 교회는 여전히 철옹성이다. 특히 가톨릭교회가 가장 심하다. 불교 조계종에서도 서열 4위의 자리에 비구니 스님이 올랐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떠한가? 사제, 주교, 추기경, 교황은 반드시 남성들만의 몫인가?

교황 요한바오로 2세(공의회를 소집한 요한 23세와 선포한 바오로 6세의 정신을 계승하겠다는 의미로 요한과 바오로 두 이름을 쓴 것이다)가 선종하기 직전 여성에게는 ‘영원히’ 사제직을 허용하지 않아야 한다고 선언한 것은 시대착오적인 언행이었다. 다행히 성공회에서는 여성사제직을 허용했고 많은 여성사제들이 아름다운 사목을 하고 있다. 그러나 가톨릭교회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게 정말 하느님의 뜻일까? 도대체 언제까지 이 어둠을 안고 살아야 하는 것일까? 복음은 인간해방의 모범을 보인 선언이다. 복음은 어둡고 폐쇄된 사회에 자유와 정의를 외쳤다. 그런데 세상의 변화를 이끌어내지도 읽어내지도 못하는 교회는 화석이 되고 있다.

알파걸의 시대다. 그들에게는 그 환경을 만들어준 부모세대가 있었다. 우리도 그런 환경을 만들어야 할 시대적 의무를 갖고 있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어떤 성직도 허용되지 않아야 하는 교회라면 이제는 문 닫아도 좋다. 나의 이런 주장이 과격하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진리와 정의에 어긋나는 일을 교회가 눈감고 있다면 당연히 맞서 싸워야 한다. 신자들이 깨어나 외쳐야 한다. 세상에 공짜로 얻어지는 건 없다. 1960년대의 그 뜨거운 열정을 외면하고 건너뛰었지만 21세기의 한국교회는 그 값을 지금이라도 치러야 한다. 더 이상 눈감고 있는 게 능사가 아니다. 나는 교회에 묻는다.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가?
 

* 이 글은 종이신문 <가톨릭일꾼> 2020년 겨울호에 실린 것입니다.

김경집 바오로
인문학자
<눈먼 종교를 위한 인문학>, <생각을 걷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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