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 의인, 소금꽃 김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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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 의인, 소금꽃 김진숙
  • 박철
  • 승인 2021.01.10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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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칼럼
사진=장영식
사진=장영식

오늘 아침, 아브라함의 기도를 묵상했다. 거기에 보면,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가 나온다. 하느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시겠다고 하자 그 때에 아브라함이 하느님께 아뢴다. “주께서 의인을 기어이 악인과 함께 쓸어 버리시렵니까? 그 성 안에 의인이 쉰명이 있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래도 주께서는 그 성을 기어이 쓸어 버리시렵니까? 의인 쉰명을 보시고서도, 그 성을 용서하지 않으시렵니까?”(18,24) 그렇게 시작한 기도가 45명으로 30명으로 20명으로 마지막엔 “의인 10명만 있어도 소돔성을 멸하시겠느냐”고 하느님께 따진다. 그 때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열 명을 보아서라도, 내가 그 성을 멸하지 않겠다”고.(32) 결국, 의인 10명이 없어서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는 이야기로 끝난다.

그렇다면 오늘 이 시대 하느님이 원하시는 의인이 누구란 말인가? 교회에 가면 하느님이 원하시는 의인이 있을까? 만날 예배당에서 입술로만 ‘주여 주여’하는 외치는 자들에게서 진정 하느님이 원하시는 의인을 찾을 수 있을까? 예배당에서 의인을 찾으려니 난감하기 짝이 없다. 불현듯 지금 복직투쟁을 하고 있는 소금꽃 김진숙 씨가 생각났다.

김진숙 씨는 1987년 2월 노조 집행부의 어용성을 폭로하는 안내글을 배포했다가 그해 7월 해고됐다. 부당해고된 지 35년이 지났다. 2011년 1월부터 11월까지 309일 동안 한진중공업의 구조조정에 맞서 영도조선소 안 크레인에서 고공농성을 벌였다. 그리고 2020년 12월 30일, 부산 호포역에서 청와대까지 걷기로 작정하였다.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하며 그녀의 걷기에 동참하고 있다. 그녀는 이 추운 엄동설한에, 거리에서, 왜 걷기 시작했을까?

“앓는 것도 사치라 다시 길 위에 섰다. 연말까지 기다렸지만 답이 없어 청와대까지 가보려 한다. 복직 없이 정년 없다.”

“그냥 답답해서 나왔어요. 병원에 있는 것도 답답하고. 더군다나 청와대 앞에서 단식하고, 세월호 유가족들도 농성하시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유가족들이 단식한다는 게 참 말도 안 되는 얘기잖아요. 점점 더 문제들이 해결되는 게 아니라 점점 더 심각해지고 누적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래서 제가 좀 걸을 수 있을 때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야 되겠다는 생각도 들고. 특히, 한진중공업이 지금 또 매각 앞두고 다시 고용위기가 닥치지 않겠는가 하는 위기감들도 있고.”

왜 김진숙 씨는 이 엄동설한 칼바람을 맞으며 걸어야 하는가? 하느님이 진정으로 원하시는 의인은 그런 사람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성서의 시인은 ‘의인(義人)’이란 시냇가에 심어지 나무와 같다(시편 1,3)고 노래했다. 그는 악을 꾸미는 자리에 가지 않고, 죄인의 길을 걷지 않으며, 비웃음을 일삼는 자들과 어울리지 않고 야훼의 법을 기쁨으로 삼아 밤낮으로 그 법을 되새기는 사람, 그래서 의인은 시냇가에 심어진 나무와 같아 그 잎사귀가 무성하고 철따라 열매를 맺는다고 덧붙여 노래하고 있다.

성서에서 말하는 의인이란 누구인가? 그는 무한하신 하느님의 자비에 믿음의 뿌리를 내린 사람, 세계와 역사와 인생을 하느님에 근거하여 바라보는 사람이 아니겠는가? 폭력과 억압으로 하느님의 자녀들인 인간을 ‘들이마시고 삼키는 자들’, 그리하여 공동사회에 치명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자들,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전적으로 배신하고 대적하는 악하고 불경스러운 자들’에 대하여 의분을 느끼는 사람, 그야말로 그는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마태 5,6)이다. 그러므로 의로움이란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려는 강렬한 원의와 의지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의인이란 아직도 죄의 사슬, 악의 굴레에서 괴로워하면서도 의로움으로 분노하고, 그로 인하여 고통과 수난과 죽음의 길을 불사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는 말로나 이론이 아니라 헌신적인 실천, 구체적 나눔과 봉사로 이웃과 세상 만물에 의로운 관계를 건설하는 사람이다. 인간의 고질적 이기주의와 거짓 평화와 안정으로부터 사람을 해방시켜 화해와 해방의 길을 모색하는 사람이다. 언젠가 도래할 하느님의 나라가 완성되는 날까지 하느님의 창조적 동반자가 되려는 사람이다. 이러한 하느님의 사람을 가리켜 의인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성서에는 성인이란 없고 의인만 있다는 말의 속뜻을 알아차리기엔 그리 어렵지 않다. 이집트 폭정에 시달리고 괴로워하는 이스라엘을 건져 내시던 그 순간부터 민중의 해방시키는 구원의 역사 속에 하느님은 의인을 부르고 계신다.

당신 외아들을 주시어 무한하신 사랑과 자비를 드러내신 하느님은 이 시대 우리 가운데서도 의인을 부르고 계신다. 전쟁과 자연 파괴(생태계 파괴)와 성폭력과 사회구조적 폭력으로 대별되는 이 세상의 폭력과 억압으로부터 가난한 자들을 편들어 그들을 해방시킬 의인을 하느님은 찾고 계신다. 우리 중 그 누가 의인으로 불리움을 받고 있는가? 정의를 위해 분노하는 정치·경제·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부정한 인간의 삶의 모든 자리에 하느님의 뜻을 찾아 투신하는 사람들, 생애의 안락함과 재산과 명예와 생명을 던져 놓고 투쟁하는 이 시대의 투사들, 그들이 바로 하느님이 찾고 계시는 이 시대의 의인이 아닐까?

‘정의’라는 말만 나오면 눈살부터 찌푸리는 그리스도인들, 그들을 과연 하느님의 자비를 믿는 그리스도인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느님을 안다면서 정의를 모르는 사람, 이웃을 용서하지 않으려는 사람,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려는 사람, 이 시대 강도만난 사람을 외면하는 종교인, 그런 사람을 과연 하느님을 믿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정의가 없는 사랑은 속이 다 썩은 아름다운 과일과 같고, 사랑이 빠져 나간 정의는 물이 말라 버린 호수와 같아서 생명과 구원으로 우리를 해방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정의가 꽃피는 곳에서만 사랑과 구원이라는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새해벽두, 이 엄동설한에 아픈 몸으로 뚜벅이가 되어 부산에서 청와대까지 걷고 있는 “의에 주리고 목말라”하는 이 시대의 진정한 의인, 김진숙 씨의 소원이 이루어지길 간절히 기도한다.

 

박철
탈핵부산시민연대 상임대표
샘터교회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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