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시대, 악령을 거부하고, 하느님을 선택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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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시대, 악령을 거부하고, 하느님을 선택하라
  • 한상봉 편집장
  • 승인 2021.01.03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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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렛 어스 드림], 교황 프란치스코, 21세기북스, 2020 북리뷰-2

코로나19가 던지는 질문

코로나19는 새로운 질문과 새로운 답을 기다리고 있다. 이제 우리는 모든 것을 멈추고, 기존관례를 재검토하고, 우선순위를 변경해야 한다. 이 변화의 요청 앞에서 우리는 악령을 거부하고, 하느님을 선택해야 한다.

“악령은 두려움과 의심을 이용하여 재물과 명성으로 우리를 꼬드깁니다. 우리가 무시하면, 악령은 우리에게 경멸과 비난으로 반격하며 ‘너희는 무가치한 존재’라고 욕합니다. 적의 목소리에 사로잡히면 우리는 현재를 보지 못하고, 미래의 두려움이나 과거의 슬픔에 초점을 맞추게 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목소리는 현재를 말하며,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앞으로 나아가도록 돕습니다. ... 선한 영은 선하게 행동하며 주변 사람들을 돕고 섬기고 싶은 욕망을 우리의 내면에 불러일으키고, 올바른 길을 가려는 힘을 북돋워줍니다. 반대로 악한 영은 나를 내 안에 가두며, 나를 경직되고 편협하게 만듭니다.”

특별히 팬데믹 시대에는 여성에게서 희망의 징표를 찾을 수 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세계 전역의 의료 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약 70퍼센트가 여성이며, 여성이 대통령이거나 총리인 나라가 다른 나라들보다 더 효율적이고 신속하게 코로나에 대응하며 국민들과 교감하는 능력을 지녔다고 말했다. 복음서에서도 예수의 죽음 이후에, 여성 제자들은 이 비극에 주눅 들지 않았고 도망치지도 않았다. 오히려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 그들은 예수님께 성유를 바르려고 무덤으로 달려갔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말씀하신 대로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마태 28,6)는 소식을 가장 먼저 들을 수 있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무엇보다 여성은 우리 시대에 ‘모성적 경제’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보았다. 영국의 여성이며 경제학자인 케이트 레이워스는 ‘도넛 경제학’을 주장하면서, 사람들을 빈곤의 ‘구멍’에서 끌어내면서도 환경 훼손의 ‘천장’을 피하는 방향으로 분배와 재생에 초점을 둔 경제를 역설했다. 교종은 이런 사고방식에 담겨 있는 에토스, 곧 정신을 높이 평가했다. 상위 1퍼센트가 세계 금융 재산의 거의 절반을 소유한 반면, 수십억의 사람들이 극심한 궁핍에 시달리는 터무니없는 불평등을 안타까워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취약함에 대한 관심, 환경오염을 대차대조표에서 상쇄해야 하는 비용으로 계산하며 자연계를 보호하려는 염려도 내 눈에는 보입니다. 일할 수 있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일자리를 마련해 줄 수 있는 경제, 주주를 위한 부만이 아니라 사회를 위한 가치까지 창출해낼 수 있는 노동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는 경제에 대한 관심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데올로기에 매몰되지 않고 자유시장 자본주의와 국가사회주의라는 양극을 넘어서려는 이론, 모든 인류가 토지와 주택, 일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철학에 중심을 두는 이론입니다. 이 모든 것은 복음에서 우선시하는 것이고, 가톨릭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에 일치하는 것입니다.”

 

by Charlie Mackesy
by Charlie Mackesy

결함있는 교회라도, 어머니를 돌보듯 사랑합시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우리가 다른 미래를 꿈꾸고 싶다면 ‘외떨어진 양심’에 주의하라고 당부한다. 교회역사에서 자신들이 ‘그리스도의 몸’보다 우월하다는 교만 때문에 이단으로 빠지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외떨어진 양심 앞에는 교회와 주교, 교황을 비난할 이유가 언제든 깔려 있다. 그들은 교회가 교회답지 못하고 비난하고, 다른 편에선 교회가 과거와 달라졌다고 비난한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몸(하느님 백성)과 교감하며 이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는 위대한 과업에 몸을 내던지지 않고, 자신을 순수주의자 또는 진리의 수호자로 자처하며 저희들끼리 웅크리고 있을 뿐이다. 그들이 끝없이 글을 써대는 동안, 하느님의 백성은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 앞으로 전진한다. 또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교회의 잘못을 모른 체 하지 않지만, 그게 일부의 잘못임을 다행으로 여기며 죄를 고백하고 하느님의 자비를 구한다.

“교회에 불순물이 너무 많다고 주장하며, 이런저런 순수주의자들이나 전통주의자들만이 신뢰받을 만 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몸, 즉 교회에 분열의 씨를 뿌립니다. 이런 현상이 영성의 세속화입니다. 교회가 양성평등을 지지한다는 증거로 여성을 사제로 서품할 때까지 교회의 진심을 신뢰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 예수님은 교회를 순수의 성체나, 영웅과 성자들의 광장으로 세운 것이 아닙니다. 물론 지금까지 많은 영웅과 성자가 있었던 것은 감사할 따름입니다. 교회는 훨씬 더 역동적인 곳입니다. 교회는 회심의 학교, 영적 전투와 식별이 이루어지는 곳, 죄와 유혹과 더불어 은총이 넘쳐흐르는 곳입니다. 신자들에게 하느님의 자비가 필요하듯이, 교회에도 하느님의 자비가 필요합니다.”

교종은 비록 교회에 결함이 있다고 해도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의 소리를 귀담아 듣기를 권한다. 교회에 힘을 북돋워주고, 교회의 죄와 실수까지 떠안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스도께서 약하고 죄 지은 사람들에게 나타나셨듯이, 우리도 교회가 다시 일어서도록 도와야 한다고 요청한다. 교회를 비방하거나 업신여기지 말고, 어머니를 보살피듯이 교회를 돌보아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교종은 외떨어진 양심에 대한 해독제는 ‘자책’(self-accusation)이라고 했다. 다른 사람을 비난하기에 급급한 외떨어진 양심에서 벗어나려면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는 세리처럼 ‘영혼의 가난함’을 취해야 한다. 이는 나 자신을 책망하라는 뜻이 아니라, 자신을 낮추어 하느님께 자비를 청하라는 뜻이다. 그분이 내 안에 들어와 일할 수 있도록 마음을 열라는 뜻이다.

하느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면, 형제나 자매의 결함을 찾으려 하지 않고, 그가 어떤 문제로 고민하고 무엇이 필요한지 찾아낸 뒤에 도움을 주려고 한다. 그것만이 내 형제와 자매를 하나로 이어준다. 그래야 서로 의견이 달라도 입씨름은 할 수 있지만 서로 증오하는 악순환에는 휘말리지 않는다.

 

공동합의성: 차이를 인정하고 함께 걸어가기

교종은 갈라진 세계를 함께 치유하려면 ‘공동합의성’ (synodality)이라는 전통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고 말한다. 공동합의성이란 높은 차원에서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조화를 이루려는 노력이다. 음악에 비유하면 이해하기 쉽다. 일곱 개의 음, 반음 올림표와 반음 내림표를 조합하면서도 각 음의 특성을 그대로 살리며 멋진 음률을 빚어내는 것과 같다. 교종은 교회 안에서 그런 음률을 빚어내는 분이 성령이라고 말한다.

교종은 초대교회의 모습에서 공동합의성의 원천을 찾는다. 유대인이 아닌 사람도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할례 같은 율법을 따라야 하는지 논란이 생겼을 때 서로 얼굴 붉혀가며 논쟁을 했지만, 하느님이 비유대인을 통해 보여준 징표와 기적을 숙고한 끝에 비유대계 그리스도인은 할례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 결정은 교회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그리스도가 약속한 구원은 인종과 민족과 언어에 상관없이 모든 인류에게 주어진 것이라는 선언이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교종은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인 민족들은 각각 고유한 문화를 통해 하느님의 은사를 경험하고, 따라서 그들의 문화에는 교회가 추구하는 진정한 보편성(Catholicity), 즉 다채로운 얼굴의 아름다움이 담겨 있었다.”고 말했다. 교종은 우리 모두가 진리를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위태로운 긴장을 늦추지 않으면서도 함께 걸어갈 수 있다고 전했다.

“지금 우리 사회에 절실히 필요한 것이 바로 이런 공동합의성입니다. 팽팽하게 대치하며 전쟁을 선포하거나 상대를 꺾으려 하지 말고, 차이를 표현하고 들으며 상대를 억누르지 않고 함께 걸어갈 수 있을 정도로 상황을 무르익게 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그동안 가정, 청년, 아마존에 대한 세 번의 시노드를 소개하며, “공동합의성은 하느님 백성 모두로부터 듣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회는 가르치기 전에 먼저 경청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밝히고 있듯이, 모든 신자들은 성령에게 기름부음을 받은 까닭에 “믿음에서 오류를 범할 수 없다”는 신자들의 신앙 감각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의 백성

교종은 “우리는 한때 하나의 백성이 아니었지만 이제는 하느님 백성입니다.”라고 말하면서 하느님의 친밀함이 우리를 불러 모은다고 말했다. 교종은 행동의 시대에 돌입하기 위해 일체감을 회복하라고 권하면서, 인도 시인 라빈드라나트 타고르의 시에서 영감을 얻는다. “그대는 나를 이끌어 알지 못하는 친구들과 어울리게 하셨습니다. 그대는 먼 곳을 가깝게 하셨고, 낯선 이와 내가 형제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벗어나 엑소더스를 감행하면서 하나의 백성이 되었듯이, 우리는 코로나 팬데믹을 함께 경험하면서 하나의 백성이 될 수 있다. 재앙이 닥치면 우리는 자신이 한없이 취약한 존재임을 알게 되고, 우리의 안전망이 얼마나 허술한지 알게 된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각자 최선의 이익을 추구하는 개인들의 결합체에 불과했으며, 백성의 하나됨은 객쩍은 거짓말에 불과하고, 시장과 국가의 힘 앞에 우리는 무력한 존재이고, 삶의 목적은 이익과 힘을 얻는 데 있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이제 폭풍이 밀려오면서 새로운 생각이 일어나고 있다.

“때때로 닥치는 큰 재앙이 그들이 원래 자유롭고 하나이던 존재였다는 기억을 되살립니다. 시련의 시간은 백성들을 안팎에서 억압하는 것이 전복되고 새로운 자유의 시대가 시작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교종은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에 항의하는 시민들의 시위에서 하나의 백성이 탄생하는 것을 보았다. 2020년 5월 25일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 파우더호른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인 조지 페리 플로이드가 경찰에 의해 체포되던 중 질식사했다. 교종은 이 시위에서 ‘국민의 영혼’이 드러났다고 했다. 사회가 아무리 타락하더라도,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는 생존을 위한 투쟁,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려는 욕망, 자유를 사랑하는 마음, 정의와 창조에 대한 관심, 가족과 축제를 향한 사랑과 같은 본원적인 가치를 끝까지 지키려는 본능이 있다고 했다. 이것은 인간의 얼마나 존엄한 존재인지 드러내는 일이다.

교종은 “누구도 혼자서는 구원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하느님은 우리를 복잡한 관계망에 끌어들이며, 우리를 역사의 교차로 한복판에 밀어 넣는다고 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우리가 인종과 언어의 모든 경계를 뛰어넘는 백성의 일원임을 알아듣는데 달려 있다. 이런 이유로 그리스도인은 항상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옹호하지만 결코 개인주의자가 될 수 없고, 애국심으로 조국을 사랑하고 섬기지만 국가주의자가 되지 않는다. 

 

* 이 글은 종이신문 <가톨릭일꾼> 2020년 겨울호에 실린 것입니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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