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루저와 난민들의 피난처-조두순 출소를 다시 생각한다
상태바
교회는 루저와 난민들의 피난처-조두순 출소를 다시 생각한다
  • 최태선
  • 승인 2021.01.03 18: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교정사목을 하시는 한 신부님이 하신 말입니다.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하는데 평범하게 살아갈 수 없다. 한 번 넘어진 사람이라는 생각, 그리고 우리 역시 언제든 넘어질 수 있다는 생각으로 평범하게 살아갈 기회를 줘야 한다.”

조두순님 생각이 납니다. 그가 보름 만에 처음 외출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코로나 이외의 이유로 자가 격리를 한 셈입니다. 즉각 그를 감시하는 사람이 따라붙었다는 소식도 함께 전해졌습니다. 과연 그가 어떻게 살까요. 위의 신부님 말씀대로 평범하게 살 수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과연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질문은 다양하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조두순님은 어떻게 살 수 있을까요. 우리는 조두순님과 다를까요. 등등 질문에 따라 다른 각도에서 조두순님을 바라볼 수 있을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저는 교정사목을 하시는 신부님의 생각을 지지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가 아직 저지른 죄에 비해 턱없이 모자라는 죗값을 치렀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적절한 죗값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사형일 것입니다. 아니 사형도 모자랄 것입니다. 인간이 도대체 무엇으로 그것을 갚을 수 있을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없습니다.

사실 쉽지 않은 질문입니다. 그리고 피해자 측에서 두려움을 느끼는 것도 당연합니다. 두려움을 느끼는 피해자들의 편에서 함께 분노하는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격투기 선수가 조두순을 응징하겠다고 달려간 것이나 유투버들이 대거 몰려간 것도 다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기저에는 한 인간의 존엄의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조두순님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인면수심을 말하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인면수심이란 말도 결국 그가 인간이라는 말입니다.

 

그림=김옥순 수녀
그림=김옥순 수녀

한 인간을 인간이 처벌할 수 있는가.

결국 사형에 관한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습니다. 과연 사형이 정의로운 것인가. 사형을 통해 우리 사회는 정의로워질 수 있는가. 이런 생각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여기서 관점에 따라 생각이 갈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이어라키(위계제도)를 구성하는 희생의 체제인 세상의 사고로는 사형이 매우 필요하고도 합리적인 수단입니다. 하지만 비폭력 평화의 나라인 하느님 나라 관점에서는 악순환을 불러오는 또 다른 폭력일 뿐입니다.

사실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생각을 거의 하지 않습니다. 저희 교회에 한 분이 새로 나오셨습니다. 가정의 어려움을 겪던 분이었습니다. 그분은 자신이 기도할 곳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저희 교회는 교회 건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결국 저희 교회를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분에게 필요한 것은 하느님이 아니라 기도할 공간을 가진 교회였습니다. 좀 더 엄숙한 느낌을 주는 어떤 신성한 분위기가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런 기도를 할 수 있는 신성한 공간으로서의 교회를 찾는 분이 그분뿐이었을까요. 아닙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 다니는 분들의 사고에도 우리 교회를 찾았던 분과 똑같은 이해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교회란 서낭당과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두려운 느낌을 가지느냐 안 가지느냐의 정도만 다를 뿐 기도를 위한 신성한 장소로서의 의미는 서낭당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서낭당과 다르지 않은 교회에서 하는 기도는 욕망과 필요를 아뢰는 이기적인 기도가 될 수밖에 없고, 아무리 오래 교회를 다니더라도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목사나 신부는 그런 교인들의 기도에 대한 이해를 바꾸어주어야 하는데 현실에서는 오히려 그런 사람들을 그런 기도에 고착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목사와 신부는 신의 대리인 행세를 하며 축복을 남발하거나 그 사람의 모자라는 기도를 채워주는 역할을 자임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목사와 신부가 힘을 합쳐 기껏 교회나 성당에 나온 사람들을 단단한 음식을 먹지 못하고 젖을 먹어야 하는 초보적 원리를 배워야 하는 유아의 상태에 고착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젖을 먹어야 하는 사람들은 결과적으로 하느님의 꿈을 꿀 수 없습니다. 자신의 필요를 위해서만 기도할 수 있는 젖먹이의 상태에서 벗어나 성장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사회에서 가장 이기적인 사람이 된 것은 이처럼 그들의 성장을 가로막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앞장서서 그 일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교의 현실이 이렇기 때문에 오늘날 그리스도인이라는 사람들은 사고할 수 없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를 찾아야 하고 신부를 찾아야 하는 젖먹이들로 살아야 신앙생활을 잘 한다는 칭찬을 받게 되었습니다. 거기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은 가차 없이 철퇴를 맞습니다. 결국 젖먹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하느님 나라의 관점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사고가 아니라 분노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차별과 혐오와 배제가 교회의 대세가 된 것은 이처럼 우연이 아닙니다. 분노하는 사람은 폭력과 정죄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분노하는 사람은 결코 사랑을 실천할 수가 없습니다. 사랑을 실천할 수 없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개신교 사람들이 주로 하는 일이기는 하지만 절에 가서 땅밟기를 하고, 단군상의 목을 자르고, 절에 불까지 지르는 사람까지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화를 내더라도, 죄를 짓는 데까지 이르지 않도록 하십시오. 해가 지도록 노여움을 품고 있지 마십시오. 악마에게 틈을 주지 마십시오.”

우리는 이 말씀에서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화를 내지 않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아니 세상에서 화를 내지 않고 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화를 내더라도 죄를 짓는 데 까지 이르러서는 안 됩니다. 화를 마음에 품어서도 안 됩니다. 해가 지기 전에 그 화를 삭여야 합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합니까. 그 화를 하느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서의 일관된 요구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복수할 수 없습니다. 복수는 인간의 일이 아니라 하느님의 일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형이 그리스도인에게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사형이 악마에게 주는 틈이라는 사실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이 단단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이 된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른 말로 하느님 나라의 관점으로 사물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제가 쓰는 글을 사람들이 읽어주는 이유는 제가 하는 사고가 세상의 사고와 다르기 때문입니다.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관점으로 세상과 복음을 바라본다는 것은 결국 다르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다르게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단단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의 의미이기도 합니다.

저는 조두순님이 평범한 삶을 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조두순님이 출소 전 하루에 팔굽혀펴기를 천 개씩 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그를 응징하려는 사람들과 조두순님의 싸움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결과가 어떻든 또 다른 범죄를 구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것을 바라보는 모든 사람들의 사고에서 폭력의 악순환을 강화할 따름입니다. 제 생각이 동의하기가 어려운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하지 않는 말이지만 저 같은 사람의 생각도 한 번쯤 들어보실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비폭력 평화의 나라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신이 하느님 나라 백성이라는 사실을 아시게 되었다면 하느님 나라의 관점으로 세상과 복음을 바라보실 수 있는 영적 성숙을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 교회와 교회의 지도자인 목사와 신부들이 그런 영적 성숙의 조력자로서의 자신의 책무를 깨닫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 나라 건설에 참여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루저’와 난민들의 피난처인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최태선
하느님 나라의 시선으로 살아가는 
55년생 개신교 목사

 

종이신문 <가톨릭일꾼>(무료) 정기구독 신청하기 
http://www.catholicworker.kr/com/kd.htm

도로시데이영성센터-가톨릭일꾼 후원하기
https://v3.ngocms.co.kr/system/member_signup/join_option_select_03.html?id=hva82041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