렛 어스 드림, 폭풍이 지나간 뒤에 우리를 더 낫게 해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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렛 어스 드림, 폭풍이 지나간 뒤에 우리를 더 낫게 해달라고
  • 한상봉 편집장
  • 승인 2020.12.27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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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렛 어스 드림], 교황 프란치스코, 21세기북스, 2020 북리뷰-1

프란치스코 교종의 비전을 담은 새로운 책이 번역 출간되었다. <Let Us Dream>(21세기북스, 2020). 이 책은 ‘더 나은 미래로 가는 길’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내 생각에 지금은 심판의 시간인 듯합니다.”라는 말로 시작되는 이 책은 지금 이 코로나 시대를 위기이며 기회의 때(카이로스, Kairos)로 보고 있다. 교황과 공동 작업에 들어간 오스틴 아이버레이는 이 책이 코로나19로 인한 봉쇄기간에 잉태되었다고 말한다. 2020년 3월 27일, 로마는 부활절을 앞두고 텅빈 교회와 썰렁한 거리로 불안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어둡고 을씨년스런 광장에서 교황은 예정에 없던 교황강복에 나섰다. 이날 교종은 이 시련과 전환의 때가 지나면 우리 인류가 더 나아지거나 급격히 퇴보할 것이라 말했다.

부활절 직후 교종은 전 세계 전문가들에게 코로나19 이후의 미래에 대한 조언을 듣기 위한 위원회를 바티칸에 설립했다고 발표했다. 교종은 우리 앞에 횃불을 밝혀주고, 우리가 절벽에 떨어지지 않도록 지키고 싶었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우리가 먼저 거북하더라도 사회의 주변부가 고통 받고 있다는 현실을 똑바로 보고, 우리 사회에 작용하고 있는 긍정적이며 인간적인 힘과 파괴적이며 비인간적인 힘들을 구분하면서, 어떻게 복음적 선택을 통해 이전과 다르게 행동할 수 있는지 가늠해 보고자 애썼다. 교종은 하느님의 창조가 이 순간에도 진행되는 역동적인 과정이고, 지금은 ‘형제애’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무관심이라는 바이러스

프란치스코 교종은 세상의 실상을 보고 싶다면 주변부로 가라고 한다. 그곳은 죄와 고난, 배척과 고통, 질병과 외로움의 공간이지만 “죄가 많아진 그곳에 은총이 충만히 내렸다.”는 말처럼 미래의 가능성이 열려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곳에서 우리가 가장 처음 발견하는 것은 ‘무관심’이라는 바이러스다. 무관심은 끊임없는 외면의 결과이며, 즉각적이고 마법적인 해결책이 없다는 이유로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 게 낫다고 되뇌인 결과이다.

부자는 문간을 지날 때마다 늘 라자로를 보았겠지만, 무관심의 심연 너머로 보았기 때문에 “가엾어라!”라고 혼잣말을 중얼거릴 뿐 이 때문에 마음이 흔들리지는 않았다. 감정이입이 없는 바라봄은 행동을 촉발하지 않는다. 무관심에 중독된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그래서 어쩌라고? 나하고 무슨 상관이야?” 프란치스코 교종은 이렇게 말한다.

“적잖은 이탈리아 사람이 삶을 헤쳐 나가려면 건전한 정도의 ‘메네프레기스모’(menefreghismo, 무관심)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 대해 빠짐없이 걱정하기 시작하면 어떻게 마음 편히 살 수 있겠느냐는 뜻입니다. 이런 사고방식은 결국 영혼을 철갑으로 둘러쌉니다. 다시 말하자면, 무관심은 영혼의 방탄복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어떤 것도 영혼에 스며들지 못하고 튕겨 나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결코 무관심하지 않다.”고 교종은 말한다. 그분의 본질은 자비이며, 그저 보고 감동하는데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응답하시는 분이다. 하느님은 알고 느끼면, 우리를 구하려고 달려오시고, 기다리고만 있지 않는다. 무관심한 사람은 이런 하느님께 마음을 닫아 건 사람이며, 그에게는 새로운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면 우리에게 답이 있다는 말인가? 그건 모른다. 다만 그리스도인은 “내가 세상 끝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는 말씀에 희망을 걸고 사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미리 준비된 깔끔하게 포장된 대답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주님이 우리가 그곳에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문을 우리에게 열어주시리라 굳게 믿는다.

진리는 늘 새롭게 번역되어야 한다

우리가 현실을 알아차렸다면, 이제 어떻게 행동할지 선택하는 기준이 필요하다. 이 식별 단계에서 교종은 성령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도록 초대한다.

“우리는 하느님에게 사랑받는 사람이고, 섬기고 연대하라는 부름을 받은 사람이라는 걸 먼저 알아야 합니다. 또한 우리에게 조용히 사색하는 건강한 마음가짐과, 성급하게 다그치는 독촉에서 피신할 수 있는 공간도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기도하며 성령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며, 우리를 공동체로 묶어주고 꿈꾸게 해주는 대화를 장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무장할 때 우리는 시대의 징표를 정확히 읽고, 우리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길을 선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 상황에서 과거의 개념은 그대로 현실에 적용할 수 없다. 이 불확실한 세계에서 타협할 수 없는 가치를 지키고 시대의 징표를 읽으려면, 먼저 하나의 답안지만 내어놓는 근본주의의 유혹을 버려야 한다. 근본주의자들은 이미 진실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나의 태도, 하나의 폐쇄적 사고방식을 제시한다. 하지만 진리는 마음을 열고 진리를 보려는 사람에게만 드러난다.

로마노 과르디니
로마노 과르디니

교종에게 이런 생각을 불러일으킨 것은 로마노 과르디니의 <주님>이란 책이었다. 그는 미완성인 생각(el pensamiento icompleto)을 강조했다. 이런 관점은 어떤 생각을 끝없이 전개하다가 멈추고는 우리에게 관상하는 여유를 준다. 요컨대 유익한 생각은 항상 미완성이라는 것이다. 누가 절대적으로 확실한 것을 요구한다면 그건 그가 불안에 사로잡힌 영혼이라는 뜻이다. 한편 존 헨리 뉴먼은 진리가 항상 우리 너머에, 우리 밖에 있으면서 양심을 통해 우리에게 손짓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종교적 진리 역시 마찬가지다. 종교 전통은 박물관의 전시물이 아니라고 교종은 말한다. “교리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항상 같은 자리를 지키지만 점점 굵어지고 매번 더 많은 열매를 맺는 나눔처럼 성장하고 발전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떠난 뒤에 “진리의 영께서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요한 16,13)이라 한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 역시 어느 시대에나 모든 남녀의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울리도록 여러 맥락에서 새롭게 번역될 필요가 있다. 오스트리아 작곡가 구스타브 말러는 “전통은 재가 흠모되는 곳이 아니라 불이 보존되는 곳”이라고 말했다.

 

* 이 글은 종이신문 <가톨릭일꾼> 2020년 겨울호에 실린 것입니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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