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을 묻지 않는 하느님의 숨-홀리 루드 묘지에서 환대의 집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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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을 묻지 않는 하느님의 숨-홀리 루드 묘지에서 환대의 집까지
  • 조민아
  • 승인 2020.12.27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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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아 칼럼

홀리 루드(Holy Rood)는 스코틀랜드 방언으로 “성십자가”라는 뜻이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미국 워싱턴 디시의 북서부, 포토맥 강을 끼고 있는 조지타운(Georgetown)이란 작은 동네인데, 집에서 걸어 5분 거리에 “홀리 루드”라는 이름의 공원묘지가 있다. 자그마한 규모이지만 188년의 역사와 함께 7,000여 구의 시신이 묻혀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노예 출신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1,000여 명, 남북전쟁의 퇴역 군인 그리고 아일랜드계 미국인들을 비롯해 유럽에서 건너온 이민자들이 이 곳에서 마지막 안식을 찾았다. 1990년 이후로는 찾아오는 발길이 적어 수십 년 동안 도로 한쪽에 버려져 있었다는데, 2018년 조지타운 대학과 홀리트리니티 교회(Holy Trinity Catholic Church)가 회복 작업을 시작한 이후 지금처럼 공원으로 단장을 하게 되었다. 새 직장을 얻어 작년에 이사 온 나는 황폐했을 옛 모습은 보지 못했다.

 

묘지에서 만난 그들

묘지 산책을 좋아한다. 죽은 이들의 땅에 들어서면 경이롭고 어지럽고 또 슬프다. 삶과 죽음의 차이는 파르르 나비의 날개처럼 가벼운데, 한 생명이 떠나면 한 우주가 저문다. 내 발 밑에 그 7,000개의 우주가 운동을 멈춘 채 고이 누워 있는 것이다. 저마다의 우주에 측량할 수 없는 고통과 슬픔이 있었으며, 기적처럼 찾아오던 기쁨과 환희의 순간들이 있었을 것이다. 하느님은 이 7,000개의 우주 하나하나를 통해 이 땅에 날숨을 내쉬었다가 하나의 우주가 멈출 때마다 들숨으로 당신에게 불려 들였을 것이다. 하느님의 숨이 이곳에 쉼으로 머물러 있다.

낡은 묘비들 사이로 걷다 보면 그날따라 유난히 나를 불러 세우는 이름들이 있다. 대부분의 묘비에는 이름과 생몰 년도만 적혀 있지만, 그 단순한 기록은 많은 이야기들을 한다. 오늘은 존 코넬리(John Connelly)와 그의 아내 레베카 머드(Rebecca Mudd), 또 토스 코넬리(Thos Connelly)가 함께 묻혀 있는 무덤 앞에 섰다. 존 코넬리는 1819년에 태어나 마흔이 되던 1859년에 죽었고, 레베카 머드는 1817년에 태어나 1885년에 죽었으니 남편을 보내고 26년을 더 살았다. 남편보다 2살이 많았던 머드는 남편의 마지막 생일을 어떻게 보냈을까. 함께였을까, 아니면 이미 홀로였을까.

아일랜드인들의 미국 이민은 1845년을 기준으로 나뉜다. 그 이전의 아일랜드인들은 스코틀랜드계 아일랜드인들이 대부분으로 식민주의자들인 앵글로 색슨계와 무리 없이 동화되었지만, 1845년에서 1852년 사이, 대기근에 떠밀려 이주한 아일랜드인들은 대부분 가난했고, 앵글로 색슨계로부터 차별당하고 무시 받기 일쑤였으며, 또 천주교 신자들이었기에 개신교인들이 중심이었던 미국 사회의 소위 “주류”에 유입될 수 없었다. 이들은 같은 백인 임에도 “하얀 깜둥이(White nigger)”라고 불리며 차별을 받았고, 게으르고 다혈질적인 술고래로 무시당했다. 19세기 미국 신문의 구직 광고에서는 “아일랜드인은 지원하지 말 것”이라는 문장을 종종 찾아 볼 수 있었다.

“코넬리”라는 성씨는 게일릭(Gaelic)계에 흔한 성씨이니, 존 코넬리는 영국에 대한 저항이 가장 치열했던 북아일랜드 토박이였을 가능성이 크다. 대기근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온 가난한 아일랜드인들 중에는 코넬리라는 성씨를 가진 사람들이 특히 많았다. 그런데 “머드”라는 성씨는 11세기 무렵 이태리에서 영국으로 이주해 체스터 지방에 정착해서 살았던 가문으로 일부가 북아일랜드로 이주하긴 했지만 아일랜드 토박이는 아니다. 그렇다면 그녀는 남편을 어떻게 만났을까? 영국 본토의 착취와 수탈 덕에 감자 외에는 먹을 것이 없던 시절에 감자마저 병이 들어 버려 100만 명이 아사했던 처참한 아일랜드 대기근 시기에 만나 함께 굶주리며 서로를 의지하게 되었을까, 아니면 살기 위해 고향을 떠난 또 다른 100만 명의 무리 속에서 기근만큼이나 잔인한 이주민의 고충을 견디고 서로 위로하며 정을 붙이게 되었을까. 그들은 언제 가족이 되었으며 머드는 왜 남편의 성을 따르지 않았을까. 둘 사이 아이는 있었을까. 이들의 아이가 아닌 것이 분명한, 1809년에 태어나 1862년에 죽은 토스 코넬리(Thos Connelly)는 이들 부부와 어떤 인연이 있었을까. 이렇게 망자들의 사연에 이야기를 붙이다 보면, 시작도 끝도 사람으로 이어져 그들의 시간이 나의 시간으로 흘러들어 온다.

 

차별할 권리는 어디도 없다

차별은 전염병과 같은 것이라, 그리도 모욕적인 차별을 경험했던 아일랜드계 미국인들 중 많은 이들은 일자리를 두고 경쟁해야 했던 이웃 이탈리아계 미국인들에게 너그럽지 못했고, 사회의 변두리를 전전하며 어렵게 삶을 일구던 아프리카계와 아시아계 미국인들을 멸시하기도 했다. 미국의 인종 차별은 이렇게 한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 사이 무지와 몰이해와 두려움과 혐오가 켜켜이 얽혀 제도의 골수에 깊이 박혀 버린 사회악이다. 1955년 인권운동가 로자 파크스(Rosa Parks)의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이 도화선이 되어 시작된 흑인 민권운동의 역사는 이제 70년이 되어가지만 평등의 이상은 아직도 요원하다. 지난여름 백인 경찰이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를 체포하는 과정에서 목을 무릎으로 8분 46초 간 짓눌러 살해한 사건, 그 뒤로 이어진 블랙 라이브스 매터(Black Lives Matter) 운동은 인종차별이 아직도 미국 사회의 제도와 일상을 장악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차별이 만연한 사회에서 이렇게 구조적 폭력에 의한 살인사건이 발생하면 어김없이 따라 나오는 또 다른 폭력이 있다. 희생자가 사회의 “정상적인” 기준과 규범에 부합하는 사람인지 아닌지 따져 살인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행위이다. 망자의 과거를 들추고 삶의 치부들을 공개해 마치 그가 죽어 마땅한 사람인 것처럼 모욕하고 살인을 합리화한다. 이런 이차, 삼차 폭력을 지켜볼 때마다 생각나는 도로시 데이의 말이 있다. “우리에겐 (사랑을 받을) 가치가 있는 가난한 이들과 그럴 가치가 없는 가난한 이들을 구분하고 차별할 권리가 없습니다. 복음은 우리에게 그럴 권리를 주지 않았습니다.” 나는 이 말이 단지 원칙에 바탕을 둔 정언 명령이 아니라 인간의 고귀함에 대한 깊은 확신에서 나온 말이라고 믿는다. 이것을 깨닫게 된 계기가 내게 있다.

 

메리하우스. (사진=한상봉)
메리하우스. (사진=한상봉)

누구도 내 사연을 따져 묻지 않았다

조지타운으로 이사 오기 전, 예기치 못했던 일이 삶에 닥쳐 경제적으로 또 정서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어려웠던 그 한 해를 나는 도로시 데이의 고향이었던 뉴욕, 그 중에서도 그가 가톨릭일꾼을 만들고 처음 환대의 집을 열었던 뉴욕시에서 보냈다. 자가용이 없어도 지낼 수 있는 곳, 오가는 이들이 너무 많아 오히려 숨어 살 수 있는 도시가 뉴욕이다. 마천루가 펼쳐져 있고, 영화에서나 등장하는 펜트하우스 족들이 살고 있는 신기루 같은 곳이지만, 일 달러 오십 불짜리 피자로 요기를 하고 달러트리 스토어에서 저렴한 품질의 생활용품을 구입하여 하루하루를 지탱할 수 있는 곳도 뉴욕이다. 그 곳에 사는 동안 나는, 갑자기 바뀐 내 처지가 믿기지 않았다. 일이 고단하고, 나 자신이 밉고, 떠나 온 시간들이 그리워 버스에 앉아 혼자 훌쩍거린 날도 많았다. 하지만 새벽 첫 출근길 버스에 타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삶이 버거워 옆에 앉은 이의 눈물에 개의치 않았다. 어쩌면 그저 모른 척 했을 것이다. 도시의 그 무심함이 나는 고마웠다.

뉴욕에 도착하고 정착을 하기도 전에 찾았던 곳이 가톨릭일꾼 환대의 집 중 한 곳인, 집 없는 여성들을 위한 ‘메리하우스’였다. 도로시 데이가 말년을 보냈던 방이 이곳에 있다. 자원 봉사를 하고 싶다고 소개를 하긴 했지만, 실은 봉사에 마음이 있어서 메리하우스를 찾았던 것이 아니다. 낯선 곳에 적응하려면 친구를 만들고 살아갈 방법을 배워야 했는데, 능력도 출신도 사연도 묻지 않고 기꺼이 반겨 줄 만한 곳이 환대의 집이라 문을 두드렸다. 아닌 게 아니라, 메리하우스에서 봉사를 하는 동안 어느 누구도 내 사연을 따져 묻지 않았다. 삶이 어려운 것이, 또 더 어려운 이들과 함께 하는 것이 그곳에서는 그저 당연한 일이었다. 메리하우스 봉사자들의 일과는 단순하다. 아침에 도착하면 한두 시간 동안 기부로 들어 온 낡은 옷들을 차곡차곡 개어 진열을 하고, 시간이 남으면 주방에서 식사 준비를 돕는다. 12시가 되어 부근의 집 없는 여성들이 찾아오면 소박하지만 정성스레 마련한 점심 식사를 나누어 주고, 그들이 낡은 옷들을 뒤져 필요한 것을 챙기는 일을 도와주다 2시가 되어 여성들이 모두 거리로 돌아가면 설거지를 하고 뒷정리를 한다.

 

사진=한상봉
사진=한상봉

메리하우스를 찾는 여성들은 자신의 삶을 포장하지 않았다. 욕망도 욕심도 웃음도 비웃음도 비난도 칭찬도 다 날것이었다. 그들은 그래서 아름답기도 했지만, 때로 거칠고 무례하기 그지 없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기도 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면, 나 자신 남의 판단이 싫고 두려워 그곳을 찾았다는 사실도 잊은 채 그들을 업신여기고 낮추어 보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곤 했다. 은연 중 그들이 “사랑 받을 가치”가 있는지를 가늠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마음이 사라진 것은 그들과 가까워져 서로 이름과 얼굴을 기억하게 되면서부터였다. 소박한 점심을 함께 먹으며 그들의 삶과 내 삶이 교차하는 시간이 늘자, 생명이라는 단 하나의 이유로 절대적으로 존중 받아야 할 인간의 “가치”가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니고 내게 있는 것과 똑 같은 크기와 깊이로 그들에게도 있다는 사실이 피부로 와 닿기 시작했다.

무슨 사연이 있어 척박한 거리에 나 앉게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어렵고 힘든 시간이 찾아왔던 첫 순간들이 그들에게도 있었을 것이다. 버스에서 고개를 숙이고 울던 날들, 무심한 도시가 주는 위로를 달게 받았던 날들이 그들에게도 있었을 것이다. 세상은 나보다 그들에게 몇 십 배나 더 가혹하여 그들을 절망으로 몰아가다 종내 빠져 나오기 힘든 질곡에 묶어 버렸지만, 그래서 다 놓아 버리고 싶다가도 메리하우스처럼 사연을 묻지 않고 반겨주는 곳이 있어 그들은 쉬어갈 수 있는 것이고, 이름을 기억해주는 이들이 있어 살아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 것이다. 부끄럽지만 살아야 하니까 내미는 손, 사람이니까 받아 줄 수 있는 손이 그들에게도 내게도 있다. 단지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충분한 사랑 받을 가치가, 그들에게도 내게도 똑같은 크기로 있다. 세상에 사랑 받을 가치가 없는 사람은, 사람대우를 받지 못할 사람은, 죽어도 마땅한 사람은 없다. 사랑은 그렇게 치열하게 지켜내야 할 의무이며, 조건 없이 사랑해야 한다는 것에 복음은 일말 타협의 여지를 두지 않는다. 그들을 향해서도, 나 스스로를 향해서도 말이다.

어렵던 한해를 보내고 내겐 다행히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고, 그렇게 뉴욕을 떠났다. 그리고 또 일 년이 지났다. 신종 바이러스로 인해 수 없는 생명을 떠나보낸 지난여름, 병마가 휩쓸어 묘지처럼 쓸쓸한 공터가 되어 버린 뉴욕 시가지를 뉴스에서 보며 나는 메리하우스의 그 여성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오늘 이 묘지에 서서 다시 그들을 기억한다. 내 삶만큼 고귀하고 무겁고 또 가벼운 그들의 삶을 위해, 그 삶에 얽힌 고통과 슬픔과 환희를 위해, 그 삶을 삶이게 하는 사랑을 위해 기도한다. 그들을 위한 나의 기도가 이 곳 묘지에 머무는 하느님의 들숨과 날숨에 섞일 것이다. 200여 년 전에 살았던 코넬리와 머드의 삶도, 비석도 제대로 없이 이 공원에 묻힌 아프리카계 미국인 노예 1000여 명의 삶도, 코로나 바이러스가 이제 막 앗아 가버린 세상 많은 이들의 안타까운 삶도, 그 상실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그보다 더 많은 이들의 삶도 모두 하느님의 들숨과 날숨에 섞여 하나가 될 것이다. 세상에 생명을 내고 결국 당신의 품으로 모두 받아 안는 하느님의 숨, 본래 아무 조건도 차별도 없는 생명의 본질인 그 숨과 말이다. 

 

조민아
미국 조지타운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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