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들은 어묵 국물에 "겨울 맛!"이라 감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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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들은 어묵 국물에 "겨울 맛!"이라 감탄한다
  • 서영남
  • 승인 2020.11.22 21: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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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남의 민들레국수집 일기]
사진=서영남
사진=서영남

가을비가 많이 내렸습니다. 비바람에 나뭇잎은 다 떨어졌습니다. 겨울이 코앞에 왔습니다. 어제 오후부터 기온이 급강하했습니다. 노숙하는 사람들은 밤새 추위에 떨었습니다.

코로나 19로 우리 손님들은 식탁에 앉아서 식사를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300일이 넘는 동안 오로지 도시락으로만 끼니를 이어왔습니다. 겨울이 코앞인데 코로나 바이러스는 수그러지기는커녕 기세가 등등합니다. 찬바람 쌩쌩 불고 꽁꽁 얼어붙는 겨울이 다가와도 도시락 외에는 대안이 없습니다.

"싸늘한 아침에 따끈한 어묵 한 꼬치는 스텝들의 미소를 자아내고 딱딱하게 뭉친 긴장마저도 녹여준다. 촬영 현장의 밥차가 준비한 어묵꼬치에 '고맙습니다! 잘 먹었어요!'가 저절로 나온다. 행복은 이렇게 사소한 것에서 시작된다. 나도 어찌나 허기졌는지 다섯 꼬치나 먹는 반칙을 했다."는 페이스 북을 보고 손뼉을 쳤습니다. 우리 손님들께도 어묵과 뜨거운 국물이나마 대접하면 좋겠습니다.

민들레국수집 앞에 천막을 치고 포장마차를 차렸습니다. 어묵꼬지를 대접하기로 했습니다. 삶은 달걀도 커피믹스와 떡볶이도 대접하면 좋겠습니다.

손님들이 어묵 국물에 "겨울 맛!"이라고 감탄합니다. 밤새 추위에 떨다가 어묵 국물 한 모금에 속이 따뜻하게 풀린다고 합니다.

 

사진=서영남
사진=서영남


김00님은 나이가 오십이 조금 넘었습니다. 지적발달장애입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혼자 고시원에서 삽니다. 기초생활수급비를 받으니 그나마 노숙을 하지는 않습니다. 어묵을 좋아하지만 사 먹을 돈이 없습니다. 맘껏 먹어도 좋다는 말에 신이 났습니다. 일곱 개를 먹고 이제는 도시락을 먹어야 한다면서 일어났습니다. 고맙다고 몇 번이나 인사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민들레 포장마차를 잘 시작하나 것 같습니다. 찬바람이 불면 더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참 고운 할머니가 커다란 상자를 힘겹게 들고 오십니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 사위가 작아서 못 입는 겨울옷을 급히 챙겨서 가져오셨습니다. 벌써 할머니의 정성이 가득한 나눔이 여섯 번째입니다. 두꺼운 옷과 침낭을 찾는 손님이 많습니다.  

매일 도시락을 싸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되도록이면 우리 손님들이 좋아하는 반찬을 해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 손님들은 고기 요리를 참 좋아합니다. 생선 요리도 참 좋아합니다. 나물 요리도 좋아합니다. 샐러드도 참 좋아합니다. 매운 청양고추도, 상추로 쌈 싸 먹는 것도 참 좋아합니다. 요즘은 김치를 제일 맛있어 합니다.

밀양의 남천식육점에서는 오래 전부터 (10년도 넘은 것 같습니다) 매달 몇 상자씩 돼지고기를 보내주십니다. 손님들께 다양한 돼지고기 요리를 해 드릴 수 있습니다. 장조림도 하고, 고기를 갈아서 완자도 합니다. 돼지 불고기로도 내고, 수육으로도 내면 참 좋아합니다. 매달 삼산농산물 도매시장 근처에 있는 명품 도매정육센터에서는 아주 품질 좋은 돼지 불고기감을 듬뿍 주십니다. 돼지불고기를 해서 내면 눈 깜짝할 새 없어집니다.

돼지고기로 불고기를 할 때는 주머니 사정에 따라 부위가 달라집니다. 뒷다리 살로만 불고기를 할 때는 주머니 사정이 아슬아슬할 때입니다. 뒷다리 살과 앞다리 살을 섞어서 불고기를 할 때는 주머니 사정이 조금 괜찮을 때입니다. 앞다리 살로만 불고기를 할 때는 손님들에게 제대로 대접하고 싶을 때입니다. 앞다리 살로만 돼지불고기를 해서 도시락 반찬에 담으면 기분이 참 좋습니다.

남동공단의 숨은 후원자께서는 십년도 훨씬 넘는 동안 매달 두 번씩 싱싱한 닭을 손질해서 백 마리 씩 보내주십니다. 요즘은 닭볶음 반찬으로 합니다. 탕을 해 드립니다. 연안부두 어시장의 아녜스 자매님도 정기적으로 맛있는 생선을 나눠주십니다. 오징어젓, 간장게장 등등 젓갈도 손님들이 좋아하는 반찬입니다. 깻잎장아찌, 무말랭이도 좋아합니다.

 

서영남 베드로
민들레국수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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