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겨울, 좋은 침낭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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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겨울, 좋은 침낭이 필요합니다
  • 서영남
  • 승인 2020.11.10 12: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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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남의 민들레국수집 일기]
사진=서영남

이웃과 나눌 때는 무엇인가를 바라지 말고 그냥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대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 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루카14,13-14).

​"그때가 어떤 시절인가 하면 6.25 직후입니다. 그러니까 한국사회가 가장 황폐했을 때입니다. 그런데도 우리 인심이 그랬어요. 왜냐? 그건 그냥 오랜 세월 동안 부모한테서 자식으로 이어져온 삶의 방식이었어요. 당시에는 전쟁 직후이기도 했기 때문이지만 거지가 참 많았어요. 동네마다 거지들이 다 붙박이로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사람들이 굶주릴 일은 없었어요. 서너 집에서 한술씩 보태면 끼니를 해결할 수 있잖아요. 이런 습관들이 있었어요. 그렇게 해서 우리가 식민지, 전쟁 그 험한 세월을 서로 돌보면서 살아남았던 거예요. 지금과 같이 이렇게 인심이 갈가리 찢겨 있는 시대에 만일 전쟁이라도 일어나면 우리는 몰살할 겁니다."(<녹색평론>  174호 131쪽).

그 시대에는 모두가 가난했습니다. 가진 것도 거의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가난한 사람이 밥이라도 한 끼 먹을 수 없는지 물어보고 소반에 소박한 밥상을 차려서 대접하고는 했습니다. 대접하는 사람도 대접 받은 사람도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물질적으로 엄청나게 풍부해진 요즘에는 인정머리가 없어졌습니다. 쥐꼬리만큼 내어 놓고 로또복권 일등에 당첨 된 것처럼 되돌려 받으려는 터무니없는 욕심을 부립니다.

​민들레국수집을 운영하면서 배고픈 우리 손님에게 밥 한 그릇이나마 대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헐벗은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한여름에 두꺼운 겨울옷을 입고 밥 먹으러 온 손님도 있습니다. 코르덴바지를 입고 있는데 바지가 온통 구멍투성이입니다. 너무 더워서 바람이 통하도록 구멍을 뚫었다는 것입니다. 두꺼운 윗도리는 벗어서 손에 들고 있습니다. 겨울에 교도소에 잡혀가서 한여름에 출소하게 되었는데 입을 옷이라고는 겨울에 보관되어 있는 자기 옷뿐이기 때문이라 합니다. 허리띠가 노끈인 사람, 팬티를 입지 못한 사람, 맨발인 사람도 있습니다. 내복도 없습니다. 여섯 달이나 옷을 갈아입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민들레 옷가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고마운 분들이 나눠주시는 옷을 헐벗은 우리 손님들에게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있기 때문에 노숙을 하는 우리 손님도 필요한 옷이 많습니다. 겉옷뿐만 아니라 속옷도 필요합니다. 허리띠와 목도리와 모자도 필요합니다. 이불은 부피가 너무 커서 손님들이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침낭도 중요합니다. 배낭도 필요합니다. 거리에서 끝없이 걸어야 하는 우리 손님들은 운동화가 필요합니다. 막노동을 하기 위해서 안전화도 필요합니다. 장갑도 필요합니다. 수건과 세면도구도 필요합니다.

​참으로 많은 고마운 분들이 우리 노숙 손님들에게 필요한 옷을 나눠주십니다. 지난 17년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후원물품은 봉쇄수도원인 어느 가르멜 수녀원에서 보내주신 헌옷입니다. 상자를 열어보고 가슴이 찡했습니다. 눈물이 났습니다. 수십 년의 세월이 옷에 묻혀있습니다. 깨끗하게 빨아서 다림질을 한 옷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쳐다보지도 않을 옷이지만 봉쇄수도원의 수녀님들은 당신들이 가진 것 중에서 제일 좋은 것을 보내주셨습니다.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는 우리 손님들과 입을 옷을 나눌 때는 내가 지금 입을 수 있는 것을 나눠주면 참 좋습니다. 헌옷을 전달받은 어려운 처지에 놓인 이들이 당부를 합니다. 제발 옷을 보내지 말아달라고 사정합니다. 쓰레기로 처리해야 하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고 한탄합니다. 어려운 이웃에게 나눌 때는 내가 입을 것처럼 나누어야 합니다.

​오래 전의 일입니다. 전화가 왔습니다. 내용은 당신 집의 냉동실에는 유황 먹여 키운 오리의 뼈가 많이 있다고 합니다. 살점도 꽤나 붙어있다 합니다. 당신이 워낙 유황 먹여 키운 오리고기를 좋아해서 많이 사 먹었는데, 뼈를 버리기 아깝다 합니다. 그러니 민들레국수집 손님들에게 끓여주면 좋겠다고 합니다. 몸보신에 좋은 유황 먹여 키운 오리를 뼈가 아니고 통째로 스무 마리 쯤 민들레국수집에 보내주시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합니다.

​겨울이 오기 전인데 거리에서 지내는 우리 손님들의 체감 계절은 한겨울입니다. 좋은 침낭이 필요합니다. 

 

 

서영남 베드로
민들레국수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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