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해져야 보이는 하느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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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해져야 보이는 하느님 마음
  • 최태선
  • 승인 2020.11.10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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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pixabay.com
사진출처=pixabay.com

성서의 기록에 따르면 초기교회에서 집 있는 자와 밭 있는 자들이 그것을 팔아 사도들의 발 앞에 가져다 놓았습니다. 이 사실을 많은 사람들은 한 세대가 지나기 전에 다시 오신다고 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을 곧이곧대로 믿었기 때문에, 다시 말해 잘못된 종말론 이해 때문에 그렇게 했다고 해석합니다. 만일 그것이 잘못된 종말 이해 때문에 빚어진 일이었다면 그런 종말을 믿도록 만든 예수님을 우리가 믿어도 좋을까요.

집과 밭을 판 행위가 잘못된 종말론 이해에서 비롯되었다고 해석하는 이들은 결국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판단하고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행동은 혹세무민하는 이단들이나 종말론을 내세워 교인들의 재산을 갈취하는 것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정말 그렇게 집 있는 자와 밭 있는 자들이 그것을 팔아 교회에 가져오고 그것을 이 시대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온전히 쓰일 수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저는 그것이 바로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로마를 이길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저를 향해 네가 재산이 없으니까 그렇지 재산이 있다면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저에게는 꽤 많은 재산이 있었습니다. 그 재산이 목회를 하면서 다 사라졌습니다. 제가 교인 가운데 한 분의 법인대표를 맡아주었다가 법인이 잘못되어 다 사라진 것이지만 그때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도 저의 재산은 한 푼도 남아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제가 가지게 된 하느님 나라의 관점이 저를 그렇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제 재산이 그렇게 순차적으로 조금씩 하느님 나라 운동에 투입되었다면 아마도 저는 바리새인의 누룩에 빠져 자기의(自己義)라는 치명적인 영적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을 것입니다.

사실 저처럼 있던 재산을 다 잃으면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 재산이 다 사라져 가난해진 것을 감사로 받습니다. 저는 가난해졌고 저는 작아졌습니다. 그렇게 가난해지고 작아지니 복음에 담긴 하느님의 마음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뜻과 하느님의 정의가 제 꿈이 되었습니다. 물론 이 사실을 사람들은 인정해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런 저를 향해 집요하게 네가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가난해지고 작아지면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집니다. 그러나 무의도식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열정이 제 마음속에서 응축되고 또 응축됩니다. 물론 이것은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제 속을 뒤집어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도 없습니다. 보여준다 한들 그것을 대단한 일로 보아줄 사람들도 없습니다. 그게 뭐냐고 오히려 비웃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알 수 있습니다. 제가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것을. 저는 작아져야 합니다. 무력해져야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주님이 원하시는 약함에 도달했을 때, 또는 주님의 때가 이르렀을 때 그런 저를 통해 일하실 것을 믿습니다. 그러니까 주권은 전적으로 주님에게 있습니다. 저는 조바심을 내지도 않고 무언가를 하려 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리스도 안에 있고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의 뜻에 저의 온 몸과 마음을 맡기고 있습니다. 그것이 다입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신앙인이 여기에 이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누구라도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면 여기에 도달해야 합니다. 여기에 도달하기 전에 하는 모든 일은 결국 자신의 일이 되고 자신의 영광을 위해 하는 일이 됩니다. 아무리 그것을 하느님의 영광이라 하고 하느님이 다 하셨다고 하느님을 높일지라도 그것은 어리석은 인간의 착각일 뿐입니다. 그 상황을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말하기를 '주님, 주님,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또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할 것이다.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분명히 말할 것이다.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물러가라.’”

결국 주님의 때를 기다리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하는 모든 일은 불법일 뿐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일에 중독되고 경쟁과 효율에 익숙해지고 돈에 경도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헤롯의 길을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높이 올라간 교회 건물, 많은 교인들을 증거로 내세우고 힘들고 어려운 사람을 많이 도왔다고 자랑하면서 모든 걸 다 하느님이 하셨다고 하느님을 높이고, 많은 영혼을 구원했다고 자랑하지만 그것은 전혀 하느님의 일이 아니고 자신의 일일 뿐입니다.

특히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마음이 돈에 경도되었다는 사실을 좀처럼 인정하지 않습니다. 경도되었다는 말의 의미는 온 마음을 기울여 사모하거나 열중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돈에 경도되면 돈이 모든 판단의 근거가 되고 돈이 모든 일의 동인이 됩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끔찍한 일은 돈에 경도된 사람의 마음에는 하느님이 머물 자리 자체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모든 악의 뿌리가 된다는 것의 의미입니다.

자랑할 일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순기능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보아도 좋은 일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청부!!) 그러나 그 모든 것이 결국 악의 뿌리가 된다는 것이 성서의 증언입니다. 열의 하나를 기꺼이 희생하여 구제하고 돕는 일에 사용하여도 주님이 보시는 것은 나머지 아홉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두 렙톤을 헌금함에 넣은 가난한 과부를 보시고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헌금함에 돈을 넣은 사람들 가운데, 이 가난한 과부가 어느 누구보다도 더 많이 넣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결국 가장 어리석은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많은 일을 한 사람입니다. 기적을 행한 사람입니다. 중심을 보시는 하느님은 결코 속는 법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인간은 스스로를 속이는 자입니다. 그것을 인식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신앙입니다. 인간이 작아지고 약해져 더 이상 자신을 신뢰하지 않고 더 이상 자신에게 아무것도 의뢰하지 않는 사람이 될 때 인간은 그 올무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됩니다. 또 그런 사람을 통해 하나님은 일하시고 그때에야 비로소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비유가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비유를 난제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불의한 그 일을 한 청지기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불의한 재물(맘몬)에 충실하지 못하였으면, 누가 너희에게 참된 것을 맡기겠느냐?”

오늘날 돈에 경도된 마음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은 돈에 대해서 신실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아예 돈 자체가 불의한 재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불의한 재물에 불의와 거짓을 행하는 것이 충실한 것이라고 단정을 지으십니다. 그렇게 불의한 재물에 불의한 일을 하는 것이 하느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를 난제라고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그들의 마음이 돈에 경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 불의한 청지기 비유의 결론으로 “한 종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정말로 우리의 주인이시라면 우리는 불의한 재물로 불의한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완전히 거꾸로인 하느님 나라를 우리는 여기서도 확인하게 됩니다.

신앙의 삶을 삶에 있어 가장 큰 기적은 돈에 경도된 우리의 마음이 하느님께 경도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것은 단순히 가장 큰 기적이 아니라 진짜 기적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느님께 경도될 때 우리는 복음에 담겨 있는 하느님의 꿈을 마음에 새기고 하느님의 정의를 위해 헌신하는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입니다.

 

최태선
하느님 나라의 시선으로 살아가는 
55년생 개신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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