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워하는 자는 기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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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워하는 자는 기다리지 않는다
  • 헨리 나웬
  • 승인 2020.11.03 23: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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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나웬의 [기다림의 길] -1

지난 수년간 내가 생각해 온 어떤 것에 관해서 성찰하고자 한다. 그것은 우리 시대에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즉 기다림의 영성이다. 우리의 삶에서 기다림은 무슨 의미인가?

이 질문을 더 깊게 생각해 보기 위하여, 기다림의 두 가지 측면에 대하여 살펴보려고 한다. 하나는 우리가 하느님을 기다리는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하느님이 우리를 기다리신다는 측면이다. 우리는 기다리고 있다. 하느님도 기다리신다. 루가복음의 처음 두 장은 우리가 하느님을 기다린다는 나의 생각에 배경을 마련해준다. 또한 루가복음의 마지막 장들은 하느님의 기다림에 관해 생각할 수 있는 얼개를 제공해준다. 예수 탄생의 이야기는 하느님을 기다리고 있는 다섯 사람들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 즈가리야와 엘리사벳, 마리아, 시메온과 안나이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의 이야기는 기다리고 계시는 하느님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by Alexander Antonyuk
by Alexander Antonyuk

하느님을 기다리고 있는 우리들

기다림은 그다지 대중적인 태도가 아니다. 기다림은 사람들의 큰 공감을 얻기가 어려운 것이다. 실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다림을 어떤 시간낭비로 생각한다. 아마도 그 이유는 우리가 살고 있는 문화가 기본적으로 “계속 움직여라! 무언가 해라! 무언가 차이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라! 그저 앉아서 기다리기만 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기다림은 그들이 현재 있는 곳과 가고싶은 곳 사이에 있는 메마른 사막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런 장소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 무언가 함으로써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어한다.

우리가 현재 처해있는 역사적인 상황을 볼 때 기다림은 더 어려운데, 그것은 우리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가장 만연된 감정들 중의 하나는 두려움이다. 사람들은 두려워한다 - 내적인 감정을 두려워하고, 다른 사람들을 두려워하며, 미래를 또한 두려워한다.

두려움이 많은 사람들은 기다리는 것이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무서울 때 우리는 현재 있는 자리에서 도망가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망갈 수 없을 때에는 대신 싸우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의 많은 파괴적인 행위들은 어떤 해로운 일이 우리에게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부터 온다. 그리고 좀 더 넓게 생각해보면, 개인들뿐 아니라 공동체들과 국가들도 피해를 받을까봐 두려워할지 모른다.

우리는 기다리는 것이 얼마나 힘들며 행동하고 싶은 유혹이 얼마나 큰지 이해할 수 있다. “먼저 공격”하는 방식으로 다른 이들에게 다가가는 태도의 뿌리가 바로 여기에 있다. 두려움의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다지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공격적이고 적대적이며 파괴적인 응답들을 하기가 쉽다. 더 무서워할수록 기다림은 더 어려워진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기다림이란 인기가 없는 태도인 것이다.

그러므로 루가복음의 처음부분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이 기다리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은 나를 감동시킨다. 즈카르야와 엘리사벳은 기다리고 있다. 마리아도 기다리고 있다. 시메온과 안나는 성전에서 예수를 만났을 때 꽤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다. 기쁜 소식의 처음 시작은 온통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리고 처음부터 이 모든 기다리는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지 “두려워하지 말라. 너에게 말할 기쁜 소식을 갖고 있다” 라는 말씀을 듣는다. 이것은 즈카르야, 엘리사벳, 마리아, 시메온과 안나가 어떤 새롭고도 좋은 일이 그들에게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이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기다리는 이스라엘 민족을 대변하는 사람들이다. 시편은 이 기다림으로 가득하다. “나는 야훼님 믿고 또 믿어 나의 희망 그 말씀에 있사오니, 새벽을 기다리는 파수꾼보다 내 영혼이 주님을 더 기다리옵니다. 새벽을 기다리는 파수꾼처럼 이스라엘이 야훼를 기다리옵니다. 인자하심이 주님께 있사옵고 풍요로운 속량이 그에게 있으니 그가 이스라엘을 속량 하시리라. 그 모든 죄에서 구하시리라”(시편 130,5-7). 내 영혼이 주님을 기다리고 있다. 이것은 히브리 성서 전체를 통하여 울려 퍼지고 있는 주제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모든 이들이 다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실상 예언자들은 다가오고 있는 상황에 대하여 깨어있기를 포기한 백성들(적어도 부분적으로)을 비판하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하여 기다림은 마침내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 끝까지 충실함을 고수한 이스라엘의 작은 그룹의 사람들이 지닌 태도가 되었다. 스바니야 예언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기를 못 펴는 가난한 사람만을 네 안에 남기리니 이렇게 살아남은 이스라엘은 야훼의 이름만 믿고 안심하리라. 그들은 남을 억울하게 속일 줄도 모르고 거짓말을 할 줄도 모르며 간사한 혀로 사기 칠 줄도 모른다. 그러나 배불리 먹고 편히 쉬리니, 아무도 들볶지 못하리라”(스바 3,12-13).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은 정화된 나머지 충실한 사람들이다. 엘리사벳, 즈카르야, 마리아, 시메온, 안나가 그러한 남아있는 사람들을 대표한다. 그들은 기다리고, 깨어있으며 기대하며 살 수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헨리 나웬(Henri Jozef Machiel Nouwen, 1932-1996)은 네덜란드 출신의 사제이며 영성작가. <상처받은 치유자로서의 사목자> <돌아온 아들> 등을 지었고, 마지막 10년동안 라르쉬 새벽공동체에서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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