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기도, 하느님은 홀로 사랑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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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기도, 하느님은 홀로 사랑하지 않는다
  • 유대칠
  • 승인 2020.10.26 11: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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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칠의 주님의 기도 2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그림=유대칠
그림=유대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느님은 우리에게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예수가 우리에게 알려준 기도의 시작은 그렇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하늘에 계시다면 왠지 우리의 밖 저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그분은 그렇게 멀리 남으로 있지 않으며 우리의 아버지로 , 어쩌면 우리의 어버이로 우리의 곁에 있으십니다.

하늘이 우리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듯 보이지만, 사실 하늘은 모든 것을 살게 하고 모든 것을 품으로 그렇게 우리의 곁에 우리와 더불어 있습니다. 어쩌면 우린 하늘 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품에 안겨 있는 것일지 모릅니다. 이 세상 언제 어디에나 있으면 때론 내려다 보고 때론 옆에서 볼 수도 있는 것이 하늘입니다. 우리에게서 떨어진 저 멀리에서 사사로운 욕심에 싸우고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 주는 우리를 내려다보시며 우리에게 그러지 말고 그 아집에서 벗어나 더불어 살아가는 더 높은 곳으로 오라 손짓하는 것이 하늘이기도 하고, 아프고 힘든 이의 옆에서 그의 숨에 살아있는 공기로 있기도 하고, 힘겨운 그의 땀에 차가운 바람으로 함께 하는 것이 하늘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은 바로 그러한 하늘에 있으십니다. 우리의 아집과 홀로 있음으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우리의 더불어 있는 바로 그곳에 그렇게 우리의 아버지로 있으십니다. 

나만의 아버지도 아닙니다. 너만의 아버지도 아닙니다. 우리의 아버지입니다. 우리와 더불어 있으신 그런 아버지이십니다. 나 아닌 이의 아버지라서 나를 남으로 두는 그런 아버지가 아니십니다. 나만의 아버지라서 나 아닌 이들을 남으로 두는 그런 아버지도 아니십니다. 우리 모두와 더불어 우리 모두의 눈물과 우리 모두의 미소에 항상 더불어 우시고 웃으시는 그런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사람은 갈라지는 것을 참 좋아합니다. 나와 생각이 다르면 갈라지려 합니다. 나와 종교가 다르면 갈라지려 합니다. 나와 국적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기호가 다르며, 피부색이 다르면 갈라지려 합니다. 더불어 있을 때는 서로 간의 욕심을 따집니다. 나는 이렇게 너와 더불어 있을 것인데, 그러면 너는 나에게 무엇을 해 줄 것이냐. 혹은 너와 더불어 있으면 나에게 이런저런 이득이 되니 나는 너와 더불어 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더불어 있다기보다는 그냥 곁에 있는 것입니다.

더불어 있다는 것은 서로 다름이 한 자리에 우리를 이루고 있음입니다. 나 아닌 이의 눈물과 미소가 우리 가운데 남의 눈물과 미소가 아닌 그런 모습으로 있을 때, 우린 더불어 있다 합니다. 그런데 우린 더불어 있기보다는 갈라져 홀로 있으려 합니다. 옆 친구의 눈물과 미소가 나의 마음을 어지럽힌다면 고개 돌리며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스스로의 영혼이 백지가 되어 하느님을 만나려 합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우리를 그와 같이 홀로 사랑하지 않으십니다. 항상 더불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와 함께 함에 계산을 하고 있지도 않으십니다. 이 만큼의 돈을 내어 주었으니 나도 이 만큼을 내어주겠다 계산하지 않으십니다. 아버지가 그렇습니다. 선한 아버지는 자녀를 두고 계산하지 않습니다. 아프다 멀리하고 돈 없다 무시하고 남보다 이런저런 능력 없다 조롱하지 않습니다. 항상 옆에서 든든하게 응원하며 더불어 있어주십니다. 아버지가 그와 같듯이 하느님께서도 우리 이기심 밖 저 멀리서 우리의 아픔과 미소의 바로 곁인 하늘에서 우리와 항상 더불어 있으며 우리를 더 높은 곳으로 오라 응원하며 손짓하고 있으십니다. 

<주님의 기도>는 이와 같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는 고백으로 시작합니다. 우리말과 달리 라틴말 <주님의 기도>는 '우리 아버지'라는 뜻의 라틴말 Pater noster(빠테르 노스뗄)로 시작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바로 우리 아버지임을 가장 먼저 고백하며 시작합니다. 

'우리의 아버지'가 정말 제대로 '우리의 아버지'로 우리에게 다가오시기 위해 우리가 먼저 제대로 '우리'로 '더불어' 있어야겠습니다. 하느님을 만나는 자리는 바로 우리가 나와 남으로 흩어져 서로의 아집에 서로를 적으로 두고 싸우는 공간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안아주며 너의 눈물과 미소도 우리 가운데 나의 눈물이며 미소라 살아가는 이들의 그 우리 됨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렇게 우리가 더불어 있다면 바로 그곳에 우리의 아버지로 우리의 더불어 다가와 있으실 것이라 믿습니다. 

유대칠 암브로시오
중세철학과 초기 근대철학을 공부한다.
대구 오캄연구소에서 고전 세미나와 연구, 번역을 하고 있다

앞으로 주님의 기도를 연재하려 합니다. 오캄연구소의 길이 홀로 감이 아닌 더불어감이 되도록 후원해주길 분들은 카카오 뱅크 3333-16-5216149 (유대칠)로 함께 해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대구에서 '교부 문헌 강좌'와 '더불어 신학' 그리고 철학 강좌를 준비합니다. 함께 하실 분들은 summlogicae@kakao.com으로 문의해 주시면 됩니다. 서로에게 고마운 만남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유대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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