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들꽃들은 초가집 제단에 바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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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들꽃들은 초가집 제단에 바쳐졌다
  • 장진희
  • 승인 2020.10.15 21: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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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희 시편
사진=장진희
사진=장진희

비봉마을

-장진희

 

바다 끝까지 내달렸던 몸이
섬보다 더한 섬
분단의 반도에서
가장 높은 산정까지 올랐던 몸이
돌아와
사람 살이 깊숙한 장터에서
바람에 시달리던 몸이
첩첩 산에 가려
가을 하늘 반밖에 보이지 않는
나머지 반은 고인듯 흐르는
보성강에 비추는
비봉마을에 누웠다

쥔네가 천지간을 헤매는 사이
꼼짝없이 묶여 있던 강아지는
컹컹 대며 나서길 재촉하여
오늘의 여행지는 마을 강변길

여울물소리 반짝이는
가을 나무들 지친 잎새|
그늘 성긴 정자에 앉았다
보살 같은 주모 그리워
마저 걸어 강을 건넌다

오늘도 술동무는
팔순을 넘긴 평생 농꾼 어르신과
이눔의 술 끊어야지 끊어야지
목으로 잘만 넘기는 주모

휘청거리지도 비틀거리지도 않은 몸 끌고
다리는 들떠
노을 지는 가을 하늘 노래 절로 나오고
낼모레면 찬서리 내릴 터인데
열매를 맺을 수 있거나 말거나
피는 만큼 핀 들꽃
함께 가자 꺾어온다

짚앞에서 늘 가장 먼저 반기는
맑은 개울물 소리
스레트로 지붕 갈아 덮은
초가삼간
쓸모를 다한 확독
부레옥잠 밑에
언제부터인지 식구 된 개구리가
이 겨울은 어디서 나려는지
개굴개굴
제법 아는 척이다

강아지는 개울에 내려가
목을 축이고
가을 들꽃들은
초가집 제단에 바쳐졌다

 

장진희
돈 안 벌고 안 쓰고 안 움직이고
땅에서 줏어먹고 살고 싶은 사람.
세상에 떠밀려 길 위에 나섰다.
장터로 마을회관으로.
곡성 죽곡 보성강변 마을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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