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교회는 없다 가난한 사람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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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교회는 없다 가난한 사람만 있다
  • 조기동
  • 승인 2020.10.15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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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동 칼럼
사진=한상봉
사진=한상봉

한 분이 가난한 사람 편들기를 강조하시기에, 아군과 적군으로 나누어 지나치게 이분법으로 세상사를 보는 것은 아니냐고 했더니, 대뜸 “버르장머리 없는 00”라고 해서 당황한 적이 있습니다. 이분법은 단순해서 설명하기가 좋습니다.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민주당과 공화당. 가난한 교회와 부자 교회 이렇게 말입니다.

가난한 사람을 위한 가난한 교회, 멋진 말입니다. 하지만 초기 교회를 제외하고 교회가 가난한 적이 있었던가요? 앞으로도 없을 것 같습니다. 부자 교회가 되고 싶은 가난한 교회는 있습니다. 그런 교회는 사실 가난한 교회가 아닙니다. 오직 자발적으로 가난해지고자 하는 개인이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나는 가난한 교회라는 낱말이 책에만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많은 사람들은 정의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내편을 편들고 남의 편을 미워하기를 좋아합니다. 다시 말하면 정의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내편이 정의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해야 행복합니다. 원하는 대로 하지 못하면 괴롭습니다. 그런데 지속가능한 내편의 승리는 없습니다. 즐거움과 괴로움이 반복됩니다. 고락이 윤회하면서 옵니다.

잠을 적게 자고, 말이 많아지고, 공연히 즐겁고, 자꾸 일을 만들고, 자신을 부풀려 이야기하고, 신용카드를 많이 쓰고, 성생활이 잦아지고, 약을 잘 먹지 않으며,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고, 머리가 싸하니 피곤하면 조증입니다. 반대는 울증이겠죠. 합쳐서 조울증입니다. 울증도 병이지만 조증도 병입니다. 조울증은 완치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우리의 고락도 그렇습니다. 그건 모두 욕망에 뿌리를 두기 때문입니다.

조울증은 우리의 감정 곡선의 기복이 커진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화가 나면, ‘아, 화가 나는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것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출가 전에는 욕구 충족을 위해 갈망하던 사람이 출가 후에는 고행으로 무조건 욕구를 억제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고행 후에도 해탈하지 못한다는 게 불교입니다. 양극단을 버리고, 그걸 누르지 않고 가만히 두라는 것입니다. 마음을 고요하게 하여 알아차림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조울증은 들뜬 상태입니다. 내가 다시 조증이구나, 조심해야지, 술을 자제하고 약을 잘 먹고 단순한 생활을 해야지, 하고 깨닫는 게 알아차림입니다. 그러면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19 시기에는 부정적 정보가 많습니다. 그럴수록 긍정적 사고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임진왜란도 한국전쟁도 잘 이겨냈지요. 우리는 신천지가 극성을 부릴 때도 잘 이겨냈는데, 이번에도 그리 되리라 믿습니다. 중요한 건 내 마음의 흐름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SNS 좀 줄이고요.

예를 들어, 사별을 해서 슬픔이 찾아오거든, 그 슬픔을 서둘러 끝내려 할 필요는 없습니다. 30분 울 것을 20분에 끝낼 필요는 없습니다. 충분히 애도하고 나면, 그렇게 세월이 우리 마음도 치유해 줍니다. 그리고서, 마음이 자유롭게 원하는 대로 흘러가시면 어떨까, 합니다. ‘나는 자유다.’라고 조용히 말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계룡산에 가서 도를 닦을 수 있고, 민들레 국수집에 가서 봉사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원한다면 혼인성사를 다시 할 수도 있습니다. 사별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죠. 이런 게 다 알아차림입니다. 살다보면 즐거움 뒤에 괴로움이 오고, 괴로움 뒤에 즐거움이 들어옵니다. 이따금 사이다 발언을 들으면 기분 좋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내게 좋은 것만, 내편만 찾아다니는 사람을 보면 좀 걱정됩니다.

나는 가난한 교회를 자주 말하는 성직자나 신학자가 자신이 가진 것을 얼마나 가난한 사람을 위해 꺼내 놓는지 지켜볼 요량입니다. 개인의 자발적 가난만이 내가 아는 유일한 가난입니다. 가난한 교회는 없습니다. 

 

조기동 사도요한
대야미성당 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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