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때문이 아니라, 기쁨으로 놀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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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때문이 아니라, 기쁨으로 놀라야 한다
  • 헨리 나웬
  • 승인 2020.10.05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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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나웬의 "우리를 초대한 길들"-9
사진출처=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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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로 하여금, 분리시키는 힘으로부터 일치시키는 힘으로, 파괴적인 힘으로부터 치유하는 힘으로, 마비시키는 힘으로부터 강화시키는 힘으로 계속 움직이도록 해주는 훈련들이 있을까? 세 가지를 제안하려고 하며, 모두가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의 눈으로 위로부터 볼 수 있게 해주는 훈련들이다.

첫 번째 원칙(훈련)은 늘 이 세계의 가난한 이들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에게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우리가 다가가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아이들은 어디에 있는가?” 온갖 형태의 가난, 신체적, 지적 그리고 정서적인 가난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은 그전보다 더 많이 우리주변 어느 곳에나 있다. 어둠의 세력이 증가되는 잔혹함으로 그들의 교활한 의도를 보임에 따라 가난한 이들의 울부짖음은 더 커져가고 그들의 비참함은 더욱 더 선명하게 보여지고 있다. 우리는 계속 귀를 기울여야 하고 계속 바라보아야 한다.

두 번째 원칙은 하느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어진 가난한 이들을 진정으로 돌보실 것이라고 신뢰하는 것이다.
우리는 필요로 할 때 경제적, 감정적, 신체적 협력을 우리가 필요로 하는 만큼 얻게 될 것이다. 나는 돈, 시간, 재능을 갖고 도와줄 준비가 된 사람들이 많다고 확신하다. 그러나 그런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새로운 시도들을 감행하지 않는다면 여전히 보이지 않을 것이다.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모든 기초가 다 마련되기를 바란다면, 아무런 새로운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나, 하느님이 우리에게 하라고 청하시기 때문에 감히 어떤 미친 것 같은 시도들을 하게 된다면 전에 짐작하지도 못했던 많은 문들이 우리들을 위하여 열리게 될 것이다.

세 번째 원칙은 가장 어려운 것이다. 그것은 고통에 의해 놀라는 것이 아니라 기쁨으로 놀라야 한다는 원칙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우리는 팔을 뻗어야 할 것이며 가기를 원하지 않는 곳으로 인도되어 나아가야 할 것이다. 베드로에게 사실로 일어났던 일이 우리에게도 실제가 될 것이다. 우리 앞에는 고통이, 엄청난 고통이 놓여 있으며, 그 고통은 끊임없이 우리를 유혹하여 우리가 잘못 길을 택했으며 다른 이들이 우리들보다 더 영리했다고 부추길 것이다. 그러나 고통 때문에 놀라지는 말자. 즐거움으로 놀라자, 황폐한 사막 한가운데에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작은 꽃에 놀라자. 그리고 신선한 물이 계속 터져 나오는 샘들처럼 우리의 깊은 고통으로부터 나오는 그 엄청난 치유의 힘에 놀라자.

그래서, 가난한 이들에 초점을 두는 눈으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으리라고 신뢰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늘 기쁨으로 놀라는 정신을 갖고 우리는 강력하게 되어 이 암흑의 골짜기를 걸어가면서 기적을 행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로부터 분출되는 하느님의 힘이 우리가 어디를 가든 누구를 만나든 늘 함께 할 것이기 때문이다.

죤과 샌디에 관한 일화로 결론을 맺어보자. 죤과 샌디는 둘 다 매우 단순한 사람들이다. 우리들 가운데에는 늘 죤과 샌디 같은 사람들이 있다. 어느날 죤이 샌디에게 말했다: “우린 다툼을 해 본적이 없어. 다른 사람들처럼 한번 싸워보자.” 샌디가 물었다: “그런데 싸움을 어떻게 시작하지?” 죤이 대답했다: “아주 쉬워. 내가 벽돌을 들고 ‘이건 내 꺼야’ 하고 말하고, 네가 ‘아니, 그건 내 꺼야’ 라고 말하면, 그게 싸우는 것이지.” 그래서 둘은 앉았고 죤이 벽돌을 들며 말했다: “이 벽돌은 내 꺼야.” 샌디는 그를 부드럽게 바라보고 나서 말했다: “그래, 그게 네 것이면 가져.” 그래서 그들은 싸움을 할 수가 없었다.

우리가 벽돌을 손으로 움켜잡고 서로 내 것이다, 네 것이다 라고 말하는 한, 우리의 작은 권력게임은 점차 큰 게임으로 변해갈 것이고 우리의 큰 권력게임은 증오, 폭력, 그리고 전쟁에 이르게 될 것이다. 삶을 밑으로부터 본다면 우리의 두려움과 불안정함은 어디서나 할 수 있는 껏 벽돌을 움켜쥐게 만들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벽돌을 내놓을 때에, 손을 비울 때에 그리고 우리의 참다운 피난처이며 진정한 요새인 하느님께 빈손을 들어올릴 때에 우리의 가난은 위로부터 오는 힘, 치유하는 힘, 우리자신과 세계를 참으로 축복하는 힘을 받을 수 있도록 우리를 열어줄 것이다.

 

헨리 나웬(Henri Jozef Machiel Nouwen, 1932-1996)은 네덜란드 출신의 사제이며 영성작가. <상처받은 치유자로서의 사목자> <돌아온 아들> 등을 지었고, 마지막 10년동안 라르쉬 새벽공동체에서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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