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장꾼들이 장바닥을 두드려 새벽을 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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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장꾼들이 장바닥을 두드려 새벽을 깨운다
  • 장진희
  • 승인 2020.09.29 09: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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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희 시편
사진출처=pixabay.com
사진출처=pixabay.com

순천아랫장 가는 길

-장진희

 

새벽 바람이 차다
깜깜한 개울물소리 더욱 차다

강가의 새벽은 온통 안개
오리무중 길
태안사 입구를 지나며 청화스님을 생각한다
꽁꽁 언 겨울 한데서 정진하다 오히려 바가지로 머리부터 물을 끼얹었다는
미숫가루 한 되로 그 겨울 났다는
그렇게 자유와 평화와 사랑을 구해
사람다운 사람이 되었는가

아버지가 태안사 스님이었던
전화를 받으며 "나 좆털이요" 하던
산도둑놈처럼 미어터지는 가슴으로
국토, 아니 강토를 사랑했던
그 땅 위에 몸 부리고 사는 사람들을 사랑했던
원달리 시인 조태일을 생각한다

강안개를 뒤로 한 깊은골 원달리는 아직 새벽잠에 빠져 있는데
고갯마루에 닿으니 거짓말같이 월등면 드넓은 들이 발 아래 펼쳐진다
달 뜨는 동네 월등
쨍하니 차고 투명한 그믐달
마을마다 하나둘 빛나는 불빛들과 마주보는 샛별
푸르스름 열리기 시작하는 멀리 광양 백운산의 하늘

월등의 마을 앞 어두운 버스정류장마다
할매들이 보따리 보따리 챙겨놓고 옷깃을 여미며 첫차를 기다린다
쪽파 몇 다발, 호박 몇 덩이, 말린 나물 몇 줌.....
햇살을 담뿍 담은
밭에서 거둔 것들
장터 한구석에 풀어놓고 돈을 살 것이다

병풍을 제치듯 안개가 사라진 송치재를 넘으면 벌써 바다냄새
순천만 하늘이 새벽노을에 터지고 있다

남도 제일의 장터
바다에서 올라온 물고기들은
첫닭이 울기 전부터 길바닥에 누워 있고
온갖 장꾼들이 장바닥을 두드려 새벽을 깨운다
춥고 깜깜한 이 시간에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은 뭐 하는 사람들일까
다들 어디서 왔을까
나도 또 하루를 저 속에서 저 사람들과 부대낄 것이다

 

장진희
돈 안 벌고 안 쓰고 안 움직이고
땅에서 줏어먹고 살고 싶은 사람.
세상에 떠밀려 길 위에 나섰다.
장터로 마을회관으로.
곡성 죽곡 보성강변 마을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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