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어야 할 제 자리를 떠나면 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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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어야 할 제 자리를 떠나면 악이다
  • 유대칠
  • 승인 2020.09.29 09: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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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칠의 아픈 시대, 낮은 자의 철학-46]

아우구스티누스의 가장 큰 고민 가운데 하나는 과연 ‘악’이란 무엇이고 또 ‘선’이란 무엇인가였다. 지금 우리도 고민이다. 과연 ‘악’이란 무엇이고 ‘선’이란 무엇인가? 나에게 무엇인가 바라고 있지만, 눈에 보이게 드러내지 않고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선한 사람인가 나쁜 사람인가? 나의 눈엔 참으로 선하게 보일 수 있다. 기꺼이 도와주고 기꺼이 함께 하며 나의 곁에 있는 주는 사람이니 말이다. 그러나 사실 그는 자신에게 생긴 좋은 것을 위해 나의 곁에 있었던 것일 뿐일 수 있다. 나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는 그냥 자신의 이기심으로 나에게 잘해준 것일 수 있다.

다른 경우를 보자. 참 서툰 사람이다. 정말 나를 위하고 나와 더불어 있고자 하는데 참 서툰 사람이 있다. 실수도 있고, 종종 그 실수는 나를 불편하게 하기도 한다. 그러니 나에게 그 사람은 나쁜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 참 선해 보이지만 이기적인 사람이 있고, 참 서툴고 나빠 보이지만 그냥 서툴 뿐 선한 사람일 수도 있다. 단지 내가 그걸 모를 뿐이다. 그 행위의 주체가 나일 때도 비슷하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나는 남을 위하여 더불어 있는 듯하지만 그 가운데 나의 욕심을 숨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종종 나의 지난 여정을 돌아보며 반성하는 시간, 어쩌면 나도 그럴지 모른다는 생각이 스치기도 한다. 쉽사리 합리화 해버리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편하진 않다. 나도 나름 노력하지만 악한 사람 혹은 이기적인 사람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단지 그런 언어를 사용하고 있지 않을 뿐 말이다.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악은 그저 선의 부재가 아닌 결핍이다. 있어야 할 것이 없는 결핍이다. 하느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은 완전하여 그 자리에 있으면 된다. 그 자리에 충실하면 된다. 그러나 그 자리를 두고 서로 비교하고 다투고 더 많이 가지려 하고 누가 누구를 조롱하고 멸시하고 자랑하고 과시하면서 악이 생긴다. 악이란 바로 그러한 것이다. 있어야할 모습으로 있지 않은 것, 그로 인하여 하느님이 창조하신 이 완전한 질서를 파괴하는 것, 무질서의 세상을 만들어내는 것이 악이다. 악은 하느님이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어쩌면 사람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아집 속에서 말이다.

선생은 학생을 가르치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다. 그것이 그의 자리다. 법률가는 법으로 이 사회가 유지되도록 애쓰는 사람이다. 그것이 그의 자리다. 의사는 아픈 이의 건강을 위해 애쓰는 사람이다. 그것이 그의 자리다. 그런데 이들이 돈을 벌기 위해 애쓴다면, 오히려 돈을 위해 학생을 가르치는 일을 수단으로 여긴다면, 그것은 그의 자리가 아니다. 하느님의 질서를 파괴하는 일이다. 이때 선생은 악을 만들어낸다. 법률가와 의사도 마찬가지다. 법보다 돈이고 건강보다 돈이라면,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은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눈엔 바로 그러한 ‘자기 자리 버림’이 악의 시작이다. 바로 악이다.

의로운 사람은 가장 고귀한 것에 가치를 두고 살아간다. 그것은 쉽지 않다. 자신을 자랑하려 남보다 더 높은 곳에 올라서기 위한 것도 아니다. 의로운 사람의 그 고귀한 가치는 때론 힘들고 때론 무시 받는 고난의 길일 수 있다. 아니, 대체로 그러한 고난의 길일 것이다. 돈을 더 생각하는 선생과 의사 그리고 법률가 등의 세상에서 교육과 환자의 건강 그리고 사회의 정의를 더 생각하며 살아간다면, 더 많은 돈과 권력을 얻지 못할 수 있다. 남의 눈에 바보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바보가 되는 것이 선한 사람의 길이다.

이 세상은 원래 악하지 않다. 하느님이 마련한 이 세상은 참 착한 세상일 것이다. 너의 부족과 아픔을 위하여 기꺼이 나를 내어주겠다며, 스스로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하느님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러나 나의 것 하나 내어주지 않으며, 더 많은 것을 얻으려는 세상에서 주어진 자신의 길에 충실하긴 쉽지 않다. 바보가 되긴 쉽지 않다. 하느님의 질서 속 어쩌면 마땅히 있어야 할 모습으로 있는 그런 세상에선 모두가 모두를 위하여 모두를 사랑하며 안아주는 세상일 것이다. 자신의 자리에 애쓰며 하느님의 질서에 순종하는 그러한 세상일 것이다.

자신의 자리에서 애쓰며 하느님에게 순종하는 이, 아우구스티누스의 눈엔 바로 그런 이가 선한 사람이다. 돈과 권력보다 학생을 향한 교육에 애쓰는 선생이 더 좋은 선생이다. 더 선한 선생이다. 때론 바보 같이 보여도 말이다. 돈과 권력보다 환자의 아픔과 사회의 정의를 위하여 더 애쓰는 의사와 법률가가 더 좋고 더 선한 의사이고 법률가다. 비록 바보 같이 보여도 말이다.

과연 우린 지금 우리 각자의 자리에 얼마나 충실할까? 철학을 연구한다면서 철학보다는 돈인 세상이다. 어떻게 더 많은 연구비를 지원 받을까 그것이 더 중요한 세상이다. 교회도 어쩌면 더 큰 건물을 세울까 생각한다. 크고 화려한 교회를 자랑으로 여기는 세상이다. 점점 주어진 자리에 충실하기 힘든 세상이다. 더 착하고 좋은 사람이 되기 힘든 세상이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다. 신앙이란 바로 그러한 것이기 때문이다.

항상 돌아본다. 나는 나의 자리에 충실한가. 혹시 나는 하느님 창조하신 그 질서를 파괴하는 사람은 아닌가. 악의 생산자는 아닌가.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서는 유독 자신을 돌아보는 것들이 많다. 자신을 돌아보고 돌아본다. 자신의 자리에 충실한가 돌아보고 돌아본다. 그 돌아봄이 지금 우리에게도 절실한 그런 시대다.

 

유대칠 암브로시오
중세철학과 초기 근대철학을 공부한다.
대구 오캄연구소에서 고전 세미나와 연구, 번역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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