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나웬, 외로움을 축복의 자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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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나웬, 외로움을 축복의 자리로
  • 방진선
  • 승인 2020.09.23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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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라 나웬 선종 24주년

경애하는 헨리 나웬 신부님(Henri Jozef Machiel Nouwen (1932년 1월24일 – September 21, 1996년 9월 21일) 善終 24주년 

● 개신교인들이 어쩌면 가톨릭교인보다 더 사랑하며 오래도록 천착하는 가톨릭 사제의 영성!

☞ 가톨릭의 헨리 나웬, 개신교의 헨리 나우웬 !

☞ 두란노 헨리 나우웬 저서 세트(전12권)

☞ 헨리 나우웬은 개신교 출판사상 가장 얄궂은 위치에 놓여 있는 작가다. 그는 가톨릭 사제다. …개신교 출판계에서 차지하는 그의 지분이 크다는 건 무척이나 모순적 상황이다. 가톨릭이라면 이단 취급하며 체머리를 흔드는 사람들이 여전한 마당에 개신교 출판계에서 그의 자리는 얄궂다.… 개신교 출판사들은 그의 책 중에서 개신교의 신앙 정서에 반하지 않는 것들만 골라 펴냈다.

단언컨대, <데이브레이크로 가는 길>을 읽으면서 '그저' 은혜로웠다고 고백한다면 명백한 오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는 내내 흔들리는 나우웬과 함께 공명하게 된다. 다름 아니라 바로 그 특유의 솔직함 덕분이다. 그가 일기에 자신의 신앙적이며 인간적 약함을 쏟아 내고 있을 때, 한편엔 인간과 사회에 대한 진심어린 연민, 말씀에 대한 진솔한 성찰, 복음에 대한 진지한 따름이 있다. 약하고 여린 그를 이끌며 말씀 묵상이 살아 움직인다. 이른 봄 여린 순과 같은 나우웬의 심령을 깊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느껴진다. 이는 그가 자신의 약함을 고해성사하듯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기에 보고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더 이상 어둠에 다른 이름을 붙이지 않고 그냥 어둠이라고 불러야 비로소 그걸 이기적인 목적을 이루는 데 이용하려는 유혹이 차츰 가라앉는다." 소위 '확신범'들이 가득한 개신교 출판계에서 오히려 그의 '찌질한' 구석이 반갑다. 역설적으로 그의 '찌질함'이 깊은 은혜가 된다.……

새로운 맥락을 통해 동시대에 나우웬을 제대로 소개하고, 제대로 소화하는 일, 그의 영성을 재평가하는 일은 개신교 출판계는 물론 개신교 현실에 대한 큰 도전일 수밖에 없다. …

다시 나우웬을 읽는다는 건 신앙이란 가죽옷으로 자신을 가리지 말고 알몸을 내보이라는 요구다. 생각 이상으로 에큐메니컬한 요구다. 또한 정의와 평화 도상에 오르고 참여하라는 요구다. 동성애에 대해 전향적이 되라는 요구다. 모두 개신교 상황에서 첨예하고 만만치 않은 요구들이다. 나우웬이 걸어 간 '데이브레이크로 가는 길' 자체도 우리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엄청난 요구다. 가난한 자들에 대한 낭만적 섬김이 아니라, 비할 바 없는 '하나님의 가난'에 이르라는 '한결 험한' 실존적인 요구이기 때문이다. 나우웬은 이 시점에서도 여전히 얄궂은 존재다. (허영진 <개신교가 몰랐던 나우웬, 다시 읽기>뉴스앤조이 2014.05.14)

● 가톨릭교인은 나웬 신부님의 영성, 그 고갱이를 과연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는건가 

☞ 헨리 나웬 신부는 가톨릭과 개신교의 경계를 넘어 오늘날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영적 위로와 깨우침을 주는 대표적인 영성가입니다. 이미 고전이 되었다 할 <상처입은 치유자>나 <탕자의 귀환>을 포함한 그가 남긴 40여 권에 이르는 영성 저작들은 묵상의 깊이와 심리학적 이해, 섬세한 감성, 사려 깊은 표현들과 함께 저자 자신의 삶의 고민과 흔들림을 애써 숨기려 하지 않는 진솔함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의 저서들은, 1996년 그가 심장마비로 타계한 지 20년이 된 지금도 낡은 느낌을 주는 것이 아니라 마치 지금 여기에서 울리는 목소리와 같은 호소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외적인 풍요와 쾌락, 화려함의 뒤편에서 현대인들이 겪는 불행감과 불만족, 사랑받지 못하는 외로움, 성공과 권력에만 매달리는 마음의 병을 잘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헨리 나웬 신부가 현대인들의 ‘깨어진 마음’을 누구보다도 깊이 바라보고 그것을 치유할 수 있는 적절한 언어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자기 자신이 이러한 깨어진 마음, 흔들리는 감정, 올라가기 위해 버둥대는 삶에서 예외가 아니라는 것을 절절하게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자신이 더 많은 인정과 성공, 정서적 친밀감에 매달릴 때 그것이 채워지지 않으면 공허함과 외로움에 힘들어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자신이 오직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될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을 인생 여정에서 점점 더 분명하게 확신하였습니다. 그리고 행복은 성공의 사다리를, ‘오르는’ 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이, ‘내려오는’ 길에 있으며 그것이 또한 예수님 십자가의 길이 보여주는 신비이자 모범이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어 했습니다.

그가 이러한 진리를 머리로서만 알게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살면서 공허감, 실패, 집착, 분노와 건강하지 못한 자기연민 등 삶의 어두운 그림자를 예민하게 대면한 사람이었고, 각고의 시간 끝에 한발씩 치유의 길을 걸어갔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삶의 여정을 거쳐 몸과 마음으로 이러한 진리를 배우게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저서에서 잘 보게 됩니다. 책들은 그의 삶의 중요한 전환점과 결단들과 무관한 것이 아니며, 이 점이 우리에게 그의 글들이 그토록 깊은 감동과 귀중한 영적 도움을 주는 이유일 것입니다.(최대환 신부의 인물과 영성 이야기<헨리 나웬 신부 ①> 가톨릭평화신문 2016.2.21)

● 어떻게든 감추고 치장하고 포장하는 분칠하는 시선 권력의 노예들에게 가르치는 솔직담백한 자기성찰 

☞ 나의 가장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권력을 쟁취하려고 애쓰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충고를 줄 때에 그 사람이 나의 의견대로 따르고 있는지 알고 싶다. 도움을 줄 적에 감사를 받고 싶어 한다. 돈을 줄 때에 내 방식으로 쓰여지기를 원한다. 좋은 일을 할 때에는 기억되고 싶다. 동상이나 기념판은 아니더라도, 잊혀지 지 않는지 늘상 걱정하고 어떻든지 다른 이들의 생활과 행동 안에 끼어들기를 바란다. (<돌아온 아들 Return of the Prodigal Son>1994년)

● 세상살이의 정글 속에서세 물리고 파편처럼 부서지며 변방으로 내몰리는 이들을 보듬는 <상처입은 치유자The Wounded Healer> 

☞ 나는 찾을 수 없는 데서 조건없는 사랑을 찾을 때면 언제나 탕자입니다.I am the prodigal son every time I search for unconditional love where it cannot be found.(<돌아온 아들 Return of the Prodigal Son>1994년)

진정한 순교란 우는 사람들과 함께 울고 웃는 사람들과 함께 웃는 것에서 부터 시작하며, 고통스럽거나 즐거운 자신의 경험들을 다른 사람들이 마음껏 이용할 수 있도록 하여 그들이 스스로의 상태를 분명히 인식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상처입은 치유자The Wounded Healer>1972년)

● "거리두기" 시대에 서로를 가까이 더 가까이 이끄는 외로운 신비가 Lonely Mystic!

☞ 외로움은 부정적이니 긍정적인 것으로 바꿔야 합니다. 자신의 외로움을 끌어 안으면 빛과 희망과 기쁨이 찾아옵니다. Loneliness is a negative, so we have to turn it into a positive. When I embrace my loneliness, I find light, hope and joy.( Michael Ford <Lonely Mystic: A New Portrait of Henri J. M. Nouwen>2018년)

● 나웬 신부님의 손길은 누구와 연대할 것인가 

☞ "렘브란트는 나를 헝크러진 모습으로 무릎을 꿇고 있는 작은 아들에서 늙고 구부러진 아버지로, 축복을 받는 자리에서 축복하는 자리로 이끌었다. 나이가 들어가는 나의 손을 바라보면서, 고통 받는 모든 사람들을 향하여 뻗으라고, 내게 오는 모든 사람들의 어깨 위에 얹으라고, 그리고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에서 떠오르는 축복을 주라고 그 손이 나에게 주어졌음을 안다."(헨리 나웬 <돌아온 아들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A Story of Homecoming>1994년)

● 老境을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제게 주는 충고 

☞ “나이 듦은 마치 약속의 무지개처럼 온 인류 위에 내걸린 더없이 공통적인 경험이다. 지극히 인간적이기에 유년과 성년, 장년과 노년이라는 인위적인 경계를 뛰어넘는다. 약속으로 가득해서 인생의 보배를 점점 더 많이 캐낼 수 있게 해준다. 늙어간다는 건 낙심의 사유가 아니라 소망의 토대이고, 조금씩 퇴락해가는 것이 아니라 차츰차츰 성숙해가는 과정이고, 이를 악물고 감수해야 할 운명이 아니라 두 팔 벌려 맞아들여야 할 기회다.” …

진흙탕을 뒹굴고 오르내리기를 되풀이하며 한 발 한 발 죽음을 향해 가는 것이 인생일지라도, 첫 번째 흙구덩이는 두 번째와 다르고, 부침을 거듭하는 가운데도 진보가 있으며, 죽음 또한 마지막 선물이 될 수 있다.…"(<나이든다는 것Aging: The Fulfillment of Life>)1974년)

헨리 나웬 신부님!

저희의 차가운 손길을 잃어버린 아들을 맞이하는 이버지의 따스한 손길로 바꿔갈 수 있도록 지혜와 용기를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방진선 토마스 모어
남양주 수동성당 신자
Senex et Operarius Studens 窮究하는 늙은 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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