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니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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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니 걱정
  • 서영남
  • 승인 2020.09.01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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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남의 민들레국수집 일기]
사진=서영남
사진=서영남

피터 모린과 도로시 데이가 시작한 환대의 집을 흉내 내고 싶습니다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처음 멋모르고 민들레국수집을 열었습니다. 돈이 별로 없으니 배고픈 사람에게 국수라도 대접하면 좋을 것 같았습니다. 터무니없는 일이었습니다. 아니 배고픈 사람이 누군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자기 생각만 했습니다.

예산도 세우지 않고 그저 열정만으로 국수집을 시작했습니다. 배고픈 사람에게 국수라도 어디냐는 바보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노숙하는 사람은 그냥 며칠 굶은 사람이 아닙니다. 몇 날, 몇 달, 몇 년을 제대로 사람답게 식사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것을 상상조차 못했습니다.

어느 스물아홉 살 젊은 친구는 민들레국수집에 올 때마다 상상할 수 없으리 만큼 두세 번 접시에 듬뿍 담아서 식사를 했습니다. 이 젊은 친구는 고아원 출신입니다. 열아홉 어린 나이에 세상으로 나와서 살아보려고 죽을 고생을 했습니다만 살 길이 없었습니다. 왜냐면 좀 더 많은 일당을 준다는 일을 하다가 그만 허리를 다쳤습니다. 그렇게 노숙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민들레의 집 식구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함께 식사를 할 때였습니다. 좀 더 먹으라고 했더니 이렇게 말을 합니다. 
"전에는 하루에 한 끼도 먹기가 힘들었어요. 지금은 하루에 세 끼를 먹기 때문에 더 먹을 수 없어요."

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인천의 유명한 맛 집인 '인현삼계탕'에서 복달임으로 삼계탕을 먹는 날이었습니다. 얼마나 맛있게 먹는지 감탄을 했습니다. 나이 스물아홉인 청년이 세상에, 삼계탕을 처음 먹어본다는 것입니다. 삼계탕 한 그릇에 만 이천 원 할 때였습니다. 지금은 삼계탕 한 그릇에 만 오천 원입니다. 
"삼계탕 먹을 수 있는 돈이면, 라면을 끓여 먹으면 몇 날 며칠을 배부르게 먹을 수 있어요."

처음 국수집을 시작하면서 잔치국수를 대접하면 단무지와 김치 정도 반찬으로 내면 괜찮을 것 같아서 시작했다가 국수 말고 밥을 주면 좋겠다는 손님들의 바람에 시작한지 한 달도 되지 않아서 밥으로 바꿨습니다. 그때부터 끼니 걱정이 시작되었습니다. 내일은 무얼 해야 하지?

찾아오는 손님은 늘고 돈은 없습니다. 어느 겨울날 어떤 분이 동태 손질하고 남은 것을 기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동태 머리와 뼈만 남은 것을 몇 포대 받았습니다. 뼈에 남은 살을 잘 손질하고 머리도 이용해서 동태 탕을 끓여서 손님 대접하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은 다음 날 국을 마련할 길이 없어서 쩔쩔 매다가 겨우 사천 원을 마련해서 한 통 4킬로그램 하는 콩나물로 콩나물국을 한 솥 끓여 놓고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했습니다.

손님들이 반찬투정을 하면 기분이 참 좋습니다. 어느 날 우연히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우리가 토끼야."

이제는 손님들이 토끼처럼 채소를 좋아합니다. 상추쌈은 아주 좋아합니다. 과일 샐러드도 참 좋아합니다. 전에는 과일 샐러드를 내어 놓으면 손도 대지 않았습니다. 어디서도 먹어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과일을 샐러드로 내어놓지 않으면 좋아하지 않습니다. 또 우리 손님들은 처음 보는 음식은 손을 대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이라이스를 반찬으로 준비했다가 거의 손을 대지 않는 바람에 어려웠던 적이 있습니다. 손님들이 하이라이스를 처음 보았습니다. 노숙을 하면 먹을 것을 찾는 일도 힘든 일이지만 화장실 가는 일도 엄청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손님들은 처음 보는 음식은 아예 건드리려고 조차 하지 않습니다.

코로나19 때문에 노숙 손님들은 식탁에 앉아서 식사할 수 있는 기회조차 잃어버렸습니다. 일반 식당은 아무런 제한이 없습니다만 무료급식소는 제한이 많습니다. 식당에서 편안하게 그리고 품위 있게 먹을 수 있는 기회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겨우 도시락을 받아서 먹는다든지 거리에서 그릇에 밥과 반찬 또는 국을 한 그릇에 덮밥 또는 국밥처럼 먹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손님들에게 도시락을 마련하는 드리는 일이 더 걱정이 됩니다. 좀 더 맛있고 실하게... 매일 끼니 걱정을 합니다.

 

서영남 베드로
민들레국수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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