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욱 가볍고 조용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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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가볍고 조용하게
  • 박철
  • 승인 2020.09.01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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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칼럼

인간이 눈을 감는 시기는 차례를 기다리지 않는다. 죽음은 반드시 앞에서만 오는 게 아니라 미리 뒤로 다가오는 것이기도 하다. 인간은 누구나 죽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것은 기다리거나 재촉하지도 않는데 뜻하지 않게 다가온다. 바닷물이 밀려 나간 앞바다의 갯벌이 아득히 멀리까지 보이다가도 눈 깜짝할 사이에 밀물이 차오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죽음을 미워한다면 생명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어찌 살아서 생명을 유지하는 즐거움을 매일 마음속으로 맛보면서 즐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 일을 자각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은 이 생존의 즐거움을 잊어버리고 나의 마음 밖에 있는 쾌락을 추구하니, 이 생명이라는 보물을 잊고 위태롭게 다른 보물을 무턱대고 탐내는 경우에는 그 바람이 결코 충족되지 않는다. 살아있는 동안 그 삶의 기쁨을 즐기지 않고 죽음을 바라보고서야 눈감기를 두려워한다면, 이것은 마땅한 도리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사람이 모두 생을 즐길 수 없는 것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게 아니라 죽음이 눈앞에 다가와 있음을 잊고 있는 것이다. 이것 이외에 만약 생사의 상태에서 초월하고 있다고 한다면 그야말로 참된 도리를 깨닫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자신은 지금 살아서 존재하고 있다. 이보다 더한 기쁨이 있을까. 죽음을 미워한다면 그 기쁨을 하루하루 확인하고 살아 있음을 즐겨야 한다.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들은 이런 인간의 가장 큰 즐거움을 즐기지 않고 그것이 보물임을 망각한다. 그리고는 재산이라든가 명성과 같은 하찮은 보물만을 끊임없이 찾고 있기 때문에 마음은 결코 만족하지 못한다. 살아있는 동안에 삶을 즐기지 않고 있다가 막상 죽음에 임박해서야 그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도리에도 맞지 않는 일이 아닌가.

 

사진출처=pixabay.com
사진출처=pixabay.com

사람들이 모두 이와 같이 살아있는 지금이 즐겁지 않은 것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게 아니라 죽음이 멀지 않았음을 잊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지닐 수 있는 최고의 보물은 재산도 명성도 지위도 아니며, 죽음을 면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매일 자각하면서 현존하는 삶을 즐기는 것뿐이다. 할 일이 없어 따분함을 고민하는 사람은 대체 어떤 심정일까. 어떤 일에도 마음이 끌려 움직이지 않고 자기 몸 하나 조용히 유지되는 상태가 무엇보다 바람직하리라. 세상일에 순응하다 보면 인간의 마음은 바깥 먼지에 사로잡혀 쉽게 당황하고, 남과 교제하게 되면 내 말과 행동이 남에게 어떻게 보여질지 생각하기 때문에 참된 말을 할 수 없게 된다.

남에게 이상한 말을 늘어놓기도 하고 괜한 말다툼도 한다. 어떤 때는 상대를 원망하는 일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때는 기뻐하기도 한다. 따라서 자신의 마음을 종잡을 수 없게 된다. 분별심이 마구 발동해서 득실을 생각하는 마음이 끊임없이 일게 된다. 이것은 마음이 미혹된 데다 술에 취한 듯 고주망태가 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더구나 그 취기가 몽롱한데에서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몸은 이리저리 뛰어다녀 분주하게 되고 마음은 멍하니 자아를 잊고 만다. 그런 점에서 모든 사람이 다를 바 없다. 아직 진실로 참 길(道)을 깨우치지 못한다 하더라도 마음은 나와 바깥세계와의 교섭을 떠나서 몸뚱이를 조용한 상태로 두고, 주위 세상사에 관계하지 않고 마음을 안락하게 유지함으로써 잠시나마 즐거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스케줄에 예정사항을 빽빽이 써넣고 끊임없이 바쁘게 돌아다니지 않으면 살아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없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인간은 다른 일로 마음을 어지럽히지 않고 자기 혼자 있으면서 마음을 주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평범한 생활을 하려면 돈벌이가 되는 일이라든가 출세라든가 정사(情事)라든가 그런 외부의 먼지에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빼앗기면서 미혹되기 쉽고, 타인과의 교제를 중시하면 텔레비전이라든가 신문이라든가 의견이나 정보에 끌려 다니게 되어, 마치 자기 자신이 아닌 것처럼 되고 만다. 즐겁게 사귀는가 싶다가도 금방 싸움을 벌이며, 원망하고 기뻐하는 일이 끝없이 반복되다 보면 마음의 평온 따위는 바랄 수도 없다. 저렇게 하면 될 것을, 이렇게 하면 될 것을 하는 생각으로 이해득실의 범주에서 빠져 나가지 못한다. 그러나 세상일에 바삐 뛰어다니고 있는 사람을 보면 이에 마음을 빼앗겨 가장 소중한 것을 망각한 점에서는 모두가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아직 참된 길이 무엇인가는 몰라도 일이나 인간관계, 세상에 대한 체면 같은 여러 인연을 끊고 마음을 편안하게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삶을 즐기는 태도하고 할 수 있다. 개미들처럼 모여서 동서로 발걸음을 서두르고 남북으로 달리는 인간들, 고귀한 사람도 있고 가난하고 천한 사람도 있다. 늙은이도 있고 젊은이도 있다. 저마다 갈 곳이 있고 돌아갈 집이 있다. 저녁에 잠들고 아침에 일어난다. 도대체 인간이 하는 일이 무엇일까. 생(生)을 탐하고 이(利)를 찾아 그만둘 때가 없다. 몸을 보양해서 무엇인가를 기대한다.

고맙게도 목숨이 있어서 우러러보는 하늘에 별은 환하게 빛나고 몸뚱이는 황홀하기만 하구나
오 주여, 한가한 날을 내려 주옵시고 하루를 이틀로 해서 살게 해주시옵소서.

시나브로 계절은 장마와 입추(立秋)를 지나 곧 가을 문턱에 들어섰다. 쾌청한 날씨에도 바람도 잠잠한 오후 한 두시라는 시각이 행복의 시간이다. 마음에 연결되는 것이나 눈에 연결되는 것 모두가 고요하고 조용하게, 그러나 억누를 수 없는 아낌과 사랑의 대상이 된다. 욕심에 사로잡혀 인간이 하는 일이 얼마나 하잘 데 없는가를. 다시 한 번 생의 출발점을 되돌아가, 인간에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필요치 않은가를 검토하여 거기에 상응하는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박철
탈핵부산시민연대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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