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광처럼 깨달음의 순간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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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광처럼 깨달음의 순간이 온다
  • 로버트 엘스버그
  • 승인 2020.08.31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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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엘스버그의 [우리를 행복으로 이끄는 성인들] -보는 것을 배우기(4)
사진출처=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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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튼의 영적 체험은 수많은 성인들과 신비가들의 삶에서도 똑같이 발견되고 있다. 노르위치의 쥴리안은 세계를 하느님의 손안에 있는 소중한 개암나무 열매라는 비전을 받았으며, 12세기 독일의 신비가인 빙엔의 힐데가르트 성인도 다음과 같이 비전의 체험을 표현한다.

“강렬한 빛이 열려진 천국의 창공에서 번쩍였다. 그 빛은 나의 머리를 관통하였고 나의 마음과 온 가슴을 덥혔는데, 태우지 않고 따스한 불길로 그렇게 하였다, 마치도 태양이 그 빛이 닿는 곳마다 모든 것을 따스하게 데우듯이.”

이런 체험들을 통하여 신비가들은 공통적으로 성서의 의미에 대한 깨달음, 우주의 운명, 혹은 단순히 일상의 빛나는 마음에 대한 깨우침을 말한다. 그들이 나누는 것은 실제의 바깥 장막이 잠시동안이라도 옆으로 걷어져서 그 안에 참으로 있는 것이 드러나도록 해주는 섬광 같은 통찰이다.

이 체험들은 성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거룩한 변모를 떠올리게 해준다. 그 때 예수님은 세 제자들,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산으로 올라갔는데, 그곳에서 갑자기 “모습이 그들 앞에서 변하여 얼굴은 해와 같이 빛나고, 옷은 빛과 같이 눈부셨다”(마태오 17,2). 성서에서 가장 특별한 이야기들 중 하나이며, 제자들이 비유로서가 아니라 상황 그 자체를 직접 흘낏 볼 수 있었던 경우였다. 미래의 영광 속에 계시는 그리스도? 실제의 더 깊은 핵심에 대한 영감? 베드로는 두려움과 충격 속에서 겨우 말한다. “주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갑자기 그 순간은 사라지고,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제자들은 산을 내려오며 본 것에 대하여, 그 의미에 대하여 서로 중얼거렸을 뿐이다.

일상생활에서 그러한 현현은 자주 일어나지 않거나, 거의 없다. 그리고 대부분의 우리들은 태양을 똑바로 바로 볼 수 없는 것만큼이나 어떤 노골적인 진리를 바라볼 수 있는 자세가 갖추어져 있지 않으므로 오히려 그런 경험이 없는 것이 더 최상이다. 죠르쥬 베르나노스가 쓴 것처럼, “만일 하느님께서 우리가 선과 악 모두에 있어 서로 얼마나 연결되어 있는가를 분명하게 알려주셨다면, 어떻게 살아 남을 수 있었을까 의심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가면서 모든 것이 너무나 분명하고 생생하게 살아있는 어떤 순간들을 경험하며 기억한다. 어떤 결정적인 만남이나, 문제의 핵심을 찌르는 깊은 대화가 그런 경우이다. 갑자기 모든 일상의 베일이 걷어지고 거룩한 땅에 서 있는 우리자신을 느낀다.

이런 경험들이 일어나면 우리는 어떻게 했는가? 대부분의 경우는 그것들을 지워버리거나 내쳐버린다. 우리가 소위 현실이라고 부르는 일상의 계획과 일들을 그것이 방해하지 않도록 한다. 그러나 성인들에게 그러한 경험은 실제의 진정한 시금석이었으며, 삶의 여정을 제대로 방향 잡게 해주는 별자리였다.

이 결정적인 순간은 아주 단순한 것일 수 있다. 부활의 로렌조 수사는 프랑스 군대에 오랫동안 복무하고 있을 때 그런 순간을 경험했다. 백년전쟁의 노련한 군인으로 그는 무엇이 공포인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추운 겨울날, 그는 잎이 하나도 없는 마른 나무를 바라보게 되었다. 그는 나무의 앙상한 가지들이 봄이 되면 다시 잎으로 덮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갑자기 “하느님의 섭리와 권능에 대한 깊은 영감”을 얻었다. 후에 그는 이 통찰에 의해 파리의 가르멜 수도원으로 곧장 갔고 그곳에서 일생 “하느님의 현존”을 실천하며 살았다. 또한 깨우침의 순간은 도덕적인 도전이나, 인간 고통과의 특별한 만남을 통해, 혹은 다른 성인과의 만남을 통해 일어날 수 있다. 4세기의 주교였던 뚜르의 성마르띠노는 한 가난한 걸인과의 만남에서, 에디뜨 슈타인 성인은 아빌라의 대데레사 성인의 자서전을 읽고 그런 순간을 경험하였다.

그러한 발견의 순간들은 아주 짧은 시간에 불과하지만, 그 영향은 오래 지속된다. 그 순간에 대한 기억은 희미해도 짧은 순간 진리를 만나게 된다해도, 우리가 더 깊고 넓은 세계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로버트 엘스버그 /1955년 미국 잭슨빌에서 태어났다. 존재의 의미와 참된 삶에 이르는 길을 찾던 그는 하버드 대학교를 다니다 2학년을 마치고 1975년 도로시 데이와 함께 5년 동안 일했다. <가톨릭일꾼> 신문 편집장으로 활동하다 1980년 가톨릭으로 개종했으며, 모교로 돌아가 종교와 문학을 공부한 후 라틴 아메리카에서 변화된 가톨릭교회 모습을 체험했다. 도로시 데이의 작품집을 냈으며 하버드 신학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면서 1학년을 가르쳤다. 1987년 신학박사 과정을 마치고 메리놀 수도회 Orbis 출판사 편집장이 되었다. 지은 책으로 <모든 성인들>과 <모든 여인 가운데 복되도다> 등이 있다. 도로시 데이 시성식 추진위원회와 헨리 나웬 재단 위원이며, 현재 세 자녀와 함께 뉴욕 주 오시닝에 살고 있다.

이 글은 2003년, 미국 메리놀 출판사가 발간한 <The Saints' Guide to Happiness>(Robert Ellsberg)를 <참사람되어> 2005년 3월호에서 편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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