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개혁? 지금은 교회에서 탈출할 때-광화문 집회를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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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개혁? 지금은 교회에서 탈출할 때-광화문 집회를 바라보며
  • 최태선
  • 승인 2020.08.17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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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선 칼럼

광복절에 시위가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전광훈을 비난합니다. 맞습니다. 전광훈은 만무방입니다. 그러나 전광훈이 아무리 만무방이어도 혼자 날뛸 수는 없습니다. 시위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참석했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도로를 점거할 수 있을 만큼의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거기에 그렇게 모여든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전광훈이 그처럼 막말을 쏟아내면서도 활동할 수 있습니다. 저는 두 부류의 사람들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먼저 전광훈을 지지하는 목사들입니다. 정필도와 최홍준 목사를 필두로 정주채 목사도 그를 선지자로 추켜세우며 그의 입장을 지지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로마서 13장을 언급하며 국가 지도자들에게 순복해야 한다던 목사들이 현 정부에 반기를 든 것입니다. 친미주의자와 독재자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부 대통령도 마다하지 않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촛불혁명이라는 세계사적으로 유래 없는 명예혁명으로 등장한 대통령에게는 이상하게도 그 성경구절을 적용하지 않습니다.

정필도 목사는 경기고 출신 목사입니다. 나이 든 사람들은 경기 중 고등학교의 위상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정필도 목사의 나이 또래에서 경기를 나온 사람은 거의 예외 없이 자신이 속한 분야의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지도가가 되었습니다. 최홍준 목사는 서초동 사랑의교회 옥한흠 목사와 함께 제자훈련의 토대를 놓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실질적으로 제자훈련의 모든 것을 주도하던 실력자였습니다. 그가 암에 걸렸을 때 집 두 채 있는 사람은 한 채를 팔고, 외제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은 팔라고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정주채 목사는 분립 개척과 조기 은퇴로 사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분들이 도대체 어떻게 전광훈과 같은 만무방을 지지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이분들뿐만이 아닙니다. 뭐니 뭐니 해도 개신교 한국교회에 가장 현저한 발자취를 남기신 분들은 복음주의 사인방이라 불리는 홍정길, 옥한흠, 이동원, 하영조 목사입니다. 물론 제 말에 동의하지 않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들도 이분들의 이름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돌아가신 분들을 제외하고 홍정길, 이동원 목사가 시국기도회라는 것을 열면서 한 말을 들어보면 이분들도 역시 전광훈을 지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예외도 있지만 적어도 한 시대를 풍미하던 목사들 중 많은 분들이 전광훈과 전광훈이 주장하는 내용을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해보입니다.

그래서 이분들이 세웠던 온누리교회와 지구촌교회 등에 태극기부대와 같은 사고를 가진 모임들이 버젓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극우니 극좌니 하는 말은 일부 소수의 극단적인 사람들을 말하는 것인데 그들을 극우기독교 세력이라고 말하기에는 그들의 수가 너무 많습니다. 조금 전에도 언급했지만 아무리 큰 허물을 가졌더라도 그토록 국가지도자들에게 관대했던 이들이 현 정부와 대통령에 대해서만 그렇게 막무가내의 태도를 보이는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아마도 하느님과 친한 이분들에게 하느님께서 현 정부와 대통령에게만은 복종하지 말라는 무슨 특별계시라도 주었나 봅니다.

정말 일관성이 없는 태도입니다. 저는 국가 조찬기도회에 참석해서 전두환을 축복해 준 한경직 목사를 욕하지 않았습니다. 그때까지는 일관되게 목사들이 국가 지도자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자세를 견지했으니까요. 목사들은 결코 국가지도자에게 욕을 하거나 불경한 태도를 보인 적이 없었습니다. 교인들에게도 항상 국가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반드시 가르쳤으니까요. 그들이 그토록 절대적으로 사랑하던 로마서 13장이 갑자기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들 외에 전광훈에게 실질적으로 가장 도움을 준 사람은 장경동과 변승우입니다. 이들은 강력한 카리스마로 자신들의 교인들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인물들인데 이들이 전광훈 집회에 자신들의 교인들을 전국에서 소집했기 때문입니다. 장경동은 코미디언보다 더 웃기는 부흥사인데 저도 그의 집회 때마다 배꼽을 잡았습니다. 가요도 가수 뺨치게 잘하는 탈렌트 목사입니다. 그 입담을 가지고 티브이에 고정 패널이 될 정도입니다. 변승우는 신사도운동의 한 부류로 이단의 혐의를 받고 있었는데 전광훈이 한기총 회장이 되면서 이단이 아니라는 판정을 내려준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인연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사람의 스타일은 애초에 전광훈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정통 중의 정통인 목사들과 실질적으로 교인들을 통제하는 데 달인인 부흥사나 신사도운동을 하는 목사들이 전광훈을 지지하기 때문에 전광훈이 그토록 날뛸 수 있는 것입니다. 날뛰면 날뛸수록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열광을 합니다. 그 와중에 돈까지 챙기며 높아가는 인기를 즐기며 전광훈이 자신 있게 자신을 가두는 정부가 자신을 핍박한다는 주장을 하고, 감옥에 갇히는 것을 복음을 위해 받는 핍박이라고 떠드는 것입니다.

이런 목사들이 많기 때문에 코로나라는 국가 비상사태에도 불구하고 막무가내로 집회에 참석하여 막말을 쏟아내고 폭력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바로 이런 사람들이 그동안 교회가 심은 씨앗의 열매들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사실 전광훈을 지지하는 목사들보다 이분들이 더 의미 있고 더 안타까운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집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을 정신이 나간 사람들로 매도합니다. 그러나 그분들은 정신이 나간 사람들이 아니라 평생을 교회에 열심히 나가 예배를 드리고 그들이 배운 믿음대로 행동하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분들은 결코 이상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분들은 평생 교회 잘 나가던 분들입니다. 기도 많이 하던 분들입니다. 우리의 어머니요 아버지들입니다. 우리의 자매요 형제인 분들입니다. 그래서 더 실망스럽고 더 절망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무엇보다 그분들의 폭력적인 언사가 가장 그분들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드러낸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정말 하느님의 아들과 딸들이라면 그분들이 그렇게 폭력적이 될 수가 있을까요. 그럴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평화의 사람들입니다. 평화를 호흡하고 평화를 말하고 매사에 평화를 도모하는 평화의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들이 정말 평화의 왕이신 그리스도를 알고 믿는다면 평화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보이는 사나운 폭력적인 언사는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폭력은 사탄의 가장 현저한 도구입니다.

 

사진출처=pixabay.com
사진출처=pixabay.com

몇 년 전 제주에 갔다가 그곳 4·3평화공원을 간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벌어진 일들을 보고 그곳 사람들이 왜 육지 사람들을 그렇게 경계하고 특히 그리스도인들을 싫어하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서북청년단이 그 원인이었습니다. 한경직 목사가 주도하는 서북청년단원들이 제주 4·3사건의 주역이었습니다. 당시 정부는 이들에게 어떤 금전도 제공하지 않고 현지에서 모든 것을 조달할 수 있는 권리만을 주었습니다. 그런 그들의 수탈과 만행이 얼마나 끔찍했는지를 제주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니 그들은 그걸 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제주4·3사건을 제가 아는 친한 목사에게 이야기했더니 제가 잘못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김대중이 박원순을 보내 제주4·3사건을 조사해서 보고하게 했기 때문에 그처럼 제주4·3사건이 와전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할 말이 없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그분을 만나지 않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폭력을 정당화하는 그리스도교가 오래 전에 이미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제 더 이상 개혁이나 쇄신이라는 말을 사용하지도 않고 교회를 개혁하겠다는 이들과도 교제를 하지 않습니다.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을 개혁한들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광화문시위는 교회의 열매입니다. 그런 사납고 폭력적인 그리스도인들을 열매로 맺는 교회는 교회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교회에서 탈출(엑소두스)하라는 것입니다. 개혁이 아니라 탈출이 잘못된 교회를 보게 된 사람들이 선택해야 할 바른 길입니다.

탈출한 후에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개신교에 절망하지만 개신교에게 희망이 있는 이유입니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이 자유야말로 개신교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이며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성령이 활동하실 수 있는 토대입니다. 그래서 희망이 있는 곳도 개신교입니다. 제가 개신교 목사라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을 수 있는 곳이 개신교라는 의미입니다.

옳다고 주장하는 것으로는 바른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폭력적이 되어 사단의 회가 될 뿐입니다. 오직 성령의 흐름에 온 몸을 맞길 수 있는 용기 있는 그리스도인, 그런 그리스도인들이 모인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 교회가 이루는 평화가 인류와 모든 피조물들이 고대하는 희망입니다.

 

최태선
하느님 나라의 시선으로 살아가는 
55년생 개신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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