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희 시편
2020년 폭우
-장진희
하늘이 노했다
땅이 노했다
지구가 무섭다
바다도 강도 계곡도 산도 무섭다
하늘에서 천둥소리 요란하고
개울 속에서도 바윗돌 구르는 천둥소리 끊임없다
개울가 집
개울물 넘칠까 봐
개 목줄부터 풀어준다
옷가지 가방에 싸고 노트북 챙겨
좀 높은 곳에 세워둔 차에 실어놓는다
밤새 잠 못 자고 들락날락
개울물 수위를 지켜본다
싸다 싸
목숨 하나 살자고
하늘 땅 못 살게 군 댓가
집안을 살펴보니
밭에 내어 호박 참외 배추 꼬순 거름 되어야 할 똥오줌
수세식 변기로 흘려보내고
주방에는 비닐 봉다리 플라스틱 통들
한번 먹자고 생수 펫트병 하나
쓰레기통에는 벗겨낸 비닐 포장지
수명 다한 전구까지
이 뿐이랴
이 오만 물건 만드려고 공장 굴뚝은 쉬임없이 하늘을 괴롭히고
세탁기 냉장고 전등 컴퓨터
이 전기 만드느라 지구를 얼마나 위협하는가
눅눅하다 돌리는 보일러 기름
책꽂이의 책들
어느 것 하나 죄 아닌 게 없구나
그래도 살겠다고
기름 매연 자동차 타고 도망갈 궁리를 하고 있구나
고스란히 잠겨도 달게 받아야 할 목숨
장진희
돈 안 벌고 안 쓰고 안 움직이고
땅에서 줏어먹고 살고 싶은 사람.
세상에 떠밀려 길 위에 나섰다.
장터로 마을회관으로.
곡성 죽곡 보성강변 마을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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