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영이 우리가 걷기 전에 우리를 만졌다
상태바
하느님의 영이 우리가 걷기 전에 우리를 만졌다
  • 헨리 나웬
  • 승인 2020.08.11 02: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헨리 나웬의 "우리를 초대한 길들"-3

아담은 헨리 나웬이 하버드대학교를 떠나 아버지의 집으로 삼은 토론토 근처의 라르슈공동체에서 만난 가족 중에 가장 약한 사람이었다. 그는 25살 된 남자로, 혼자서 말하거나 옷을 입거나 벗거나, 혼자 걷거나 먹거나 할 수 없는 사람이다. 그는 울거나 웃지도 않았고 간혹 가다 눈맞춤만 할 뿐이다. 그의 등은 뒤틀렸고 팔과 다리 동작도 제멋대로 이다. 그는 매우 심각한 간질로 고통을 겪고 있으며 약을 엄청나게 많이 투약해도 “대발작” 없이 지나가는 날들이 별로 없다. 때때로 갑작스레 몸이 굳어지면 그는 울부짖는 신음소리를 내고, 몇 번 그의 뺨 위로 흘러내리는 큰 눈물을 본 적도 있다. 아담을 깨우고, 약을 먹이고, 옷을 벗겨 목욕탕으로 데려가서 씻기고 면도를 해주고 양치질을 하고 옷을 입혀서 식당으로 데려가 아침을 먹이고 휠체어에 앉혀서 하루종일 치료를 받고 연습하는 곳으로 데려가는 데에 한 시간 반이 걸린다.

아담의 평화는 존재하는 것에 뿌리를 둘 뿐 아니라 마음속에 뿌리를 두고 있는 평화이다. 마음에 속하는 참다운 평화라는 말은 너무나 철저한 선언으로서 아담처럼 장애가 있는 사람들만이 그 뜻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수 세기동안 우리들은 어쨌든 우리를 인간존재로 만드는 것은 이성이라고 믿어왔다. 라틴어를 전혀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인간존재의 정의를 이성적인 동물이라고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아담은 계속 끊임없이 우리에게 일러주고 있다.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우리의 정신, 이성이 아니라 마음이며, 생각하는 능력이 아니라 사랑하는 능력이라고.

누가 아담을 동물 같은 피조물이라고 말한다면 그는 아담이 온전히 사랑을 받고 줄 수 있는 존재라는 거룩한 신비를 놓치는 것이다. 그는 온전히 인간이며, 조금만 부분적으로 인간이 아니다. 또한 그는 반만 인간이 아니라, 거의 인간이 아니라, 충만하게 완전하게 인간인데, 그는 온전한 마음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은 하느님의 모상대로 하느님을 닮게 지어졌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아담과 내가 서로를 사랑한다고 어떻게 당신에게 말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내가 단순히 그와 함께 있음으로써 새로운 생명을 체험할 수 있겠는가? 수많은 남녀들을 가르치는 일을 그만두고 아담의 가르침을 받게 된 것이 참으로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어떻게 내가 믿을 수 있겠는가? 여기에서 나는 매우, 너무나 실제인 어떤 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마음이 으뜸이라는 진실이다.

내가 마음이라고 할 때에 그 의미는 인간의 생각이 있는 자리라는 이성에 비교하여 인간 감성의 자리라는 뜻이 아니다. 아니다, 내가 말하는 마음이란 하느님이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거룩한 선물을 숨겨놓은 우리 존재의 중심을 뜻한다. 이성은 이해하고, 문제를 포착하며, 실제의 다양한 측면들을 분별하고, 생명의 신비들을 조사한다. 마음은 우리로 하여금 관계들로 들어가도록 하고 하느님의 자녀들이 되고 서로에게 형제자매가 되도록 허용한다. 우리의 이성이 그 힘을 행사할 수 있기 훨씬 전에 우리의 마음은 이미 믿음에 근거한 인간관계들을 만들 수 있다. 나는 이 신뢰의 인간관계가 우리의 출생의 순간보다 앞선다고 확신한다.

 

사진출처=pixabay.com
사진출처=pixabay.com

이 시점에서 우리는 영적인 삶의 기원, 시작을 만나고 있다. 자주 사람들은 영적인 삶이란 제일 나중에 오며, 생물학적, 정서적 그리고 이성적 삶의 순서 다음에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담과 살면서 그와 함께 하는 나의 체험에 대해 성찰하며 나는 하느님의 사랑의 영이 우리가 걷고 느끼고 생각할 수 있게 되기 훨씬 전에 우리를 만졌다고 깨닫는다. 영적인 삶은 우리가 수태되는 순간부터 우리에게 주어진다. 그것은 거룩한 사랑의 선물로서 인간존재가 그자신보다 훨씬 더 위대한 현존을 드러낼 수 있게 해 준다.

내가 아담이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으며 우리 둘 사이에 참으로 상호적인 관계가 있다고 말할 때, 나는 그의 심각한 장애상태를 간과하면서 유약하게 심리학적인 설명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우리들 사이의 사랑이, 그 사랑이 하느님의 첫째 사랑, 즉 모든 인간의 사랑들을 앞서는 사랑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모든 생각들과 감정들을 초월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아담의 신비는 그가 그의 깊은 정신적 정서적 부서짐 속에서 모든 인간적 자만심을 다 비우고 하느님의 첫째 사랑을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중재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이런 사실은 왜 아담이 나에게 가난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전적으로 새롭게 이해하도록 해주었는지 당신이 알아듣도록 도와줄 것이다. 그는 가난한 이들에 대한 저 유명한 “우선적인 선택”에 관해 새로운 시각을 갖도록 나를 이끌어 주었다.

아담의 부서진 마음으로부터 흘러나오는 평화는 이 세상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정치적 분석, 원탁토론, 시대징표의 분별, 혹은 잘 짜여진 전략들의 결과물이 아니다. 이성의 이러한 작용들은 평화조성이라는 복잡한 과정 속에서 해야 할 역할이 있다. 그러나 그런 모든 것들은 영이 가난하라는 초대를 받은 이들의 마음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거룩한 평화의 섬김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쉽사리 전쟁을 일으키는 새로운 방식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출처] <우리를 초대한 길들- 헨리 나웬 신부의 글 모음>, 1995
[번역문 출처] <참사람되어> 2001년 6월호

헨리 나웬(Henri Jozef Machiel Nouwen, 1932-1996)은 네덜란드 출신의 로마 가톨릭사제이자 사목신학자이며 그리스도교 영성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토머스 머튼, 렘브란트, 빈센트 반 고흐, 장 바니에 등의 영향 아래 자신의 전공인 심리학을 바탕으로 활발한 강연 활동을 펼쳤으며 다양한 주제에 관한 저술을 남겼다.(출처:위키백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