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신학이 발 붙일 데 없는 그리스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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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신학이 발 붙일 데 없는 그리스도교
  • 최태선
  • 승인 2020.08.11 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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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선 칼럼

 

홍인식 목사의 책 <해방신학 이야기>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아투에이는 에스파놀라 섬 타이노 부족의 추장이었다. 타이노 부족은 그 지역에서 용감하기로 명성이 높았다. 타이노 부족은 다른 부족과 달리 스페인 정복자들의 회유에 넘어가지 않고 그들과의 전쟁을 선택했다. 아투에이는 스페인 정복자들의 침략에 대응해 부족 사람들을 결집시켜 용맹스러운 투쟁을 벌였다.

그러나 높은 화력으로 무장한 스페인 군대를 막을 수는 없었다. 타이노 부족은 전멸했고 그는 몇 백 명의 살아남은 부족원들과 함께 쿠바로 피신했다. 그러나 거기에서도 스페인 정복자들에게 항전했고 결국 1512년 2월 2일 사로잡혀 그는 화형을 당하게 된다.

사형이 집행되기 바로 직전 스페인의 종군 신부는 그에게 세례를 받으라고 제안했다. 아투에이는 신부에게 영세를 받으면 무엇이 유익하냐고 물었다. 신부는 잠시 생각하더니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첫째, 가톨릭교회의 예식에 따라 예수를 영접하고 세례를 받으면 죽어서 천국으로 갈 것이며, 둘째, 그대는 영세를 받은 가톨릭 신자이므로 형벌을 감형 받을 수 있다. 산 채로 화형을 맏는 대신 먼저 사형을 집행하고 그 후에 화형이 집행될 것이다.”

아투에이는 신부의 답변을 듣고 잠시 생각한 후에 되물었다. “그렇다면 여기에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이 사람들, 아무 잘못한 것이 없는 나의 아내와 딸을 강간하고 죽이고, 가족을 겁탈하고, 그리고 나의 집을 불태우고, 나의 온 재산을 빼앗고, 가축들을 탈취해 간 이 군인들도 천국을 가는가?” 신부는 “당연히 이들은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았으니 천국에 간다.”라고 대답했다.

이에 아투에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렇다면 나는 그런 천국에는 가지 않겠다. 그것은 천국이 아니다. 이들이 없는 지옥이 바로 천국이다.” 아투에이는 산 채로 화형을 당했다. 그의 이 같은 반응과 태도에 종군신부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p. 32-33)

이 내용을 읽고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요? 여러분의 선택을 묻지 않겠습니다. 대신 다른 질문을 하겠습니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종군신부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요?

여러분의 생각을 듣고 싶지만 그럴 수 없으니 제 생각을 이야기하겠습니다. 만약 이 종군신부가 정말 진리를 따르고자 하는 사람이었다면 그는 자신의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종군신부라는 자신의 정체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최소한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돌아간 후에도 계속해서 자신의 믿음에 대해 성찰하고 자신이 그토록 확고하게 믿고 있던 교리가 허구임을 인정하고 자신도 아투에이 추장의 말대로 그런 천국에는 가지 않겠다고 선언해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 다시 아투에이의 연설을 살펴보겠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보고 있는 내 손의 금은보화, 이것이 스페인 사람들이 섬기고 있는 그들의 신입니다. 이것들을 위해 그들은 전쟁을 벌이고 우리를 죽입니다. 이것들 때문에 그들은 우리를 탄압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들을 물리치고 바다에 처넣어야 합니다. 멀리서 온 이 야만족들은 자신들이 평화와 평등의 신을 믿는다고 우리에게 말합니다. 그러면서 우리의 땅을 강제로 빼앗습니다. 우리를 그들의 노예로 삼습니다. 그들은 영원한 영혼의 존재에 대해 말하고 신의 상급과 징벌에 대해서도 말합니다. 그러면서 우리의 소유물을 강탈하고 훔쳐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아내와 딸을 강간하고 죽입니다. 우리는 그들보다 월등한 용기를 가지고 있지만 그들은 우리의 무기로써는 도저히 뚫을 수 없는 강철로 만든 갑옷으로 그들의 몸을 감싸고 있습니다.”

아투에이 추장의 지적은 추호도 틀림이 없습니다. 스페인 사람들이 섬기고 있는 신은 하느님이 아니라 “금은보화”였습니다. 하느님은 그들의 욕망을 충족시켜주고 그들의 천인공노할 죄악을 합리화시켜주는 부족신이었습니다.

다시 묻겠습니다. 그렇다면 종군신부는 어떻게 해야 했을까요.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당연히 그 신부는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스페인과 종교당국에 그 잘못을 지적하고 성서가 말하는 본연의 복음을 추구하는 길을 가야했을 것입니다. 물론 그런 사람들 가운데 바르톨로메 데 라스 카사스(Bartolomé de las Casas, 1484-1566)와 같이 실제로 그런 길을 간 신부도 있습니다.(제가 아는 한 이 한 사람뿐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종군신부들은 자신들의 믿음을 수정하지 않았습니다. 아투에이를 어리석고 고집 센 원주민으로 여기고 자신들의 영혼구원을 위한 열정에 더욱 박차를 가했습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대학살은 500만 유대인 학살입니다. 하지만 아메리카 대륙에서의 원주민 학살은 7,500만 명입니다. 그들은 지금도 힘이 없어 인류역사에 등장하고 있지 않습니다. 해방신학은 바로 이 같은 상황에서 나온 신학입니다. 해방신학은 약자들의 신학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방금 살펴본 바와 같이 오늘날 주류 그리스도교의 신학은 강자들의 신학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그리스도교는 성서에 면면히 흐르는 ‘약함의 신학’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약함의 신학’을 이해하지 못하면 하느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하느님 나라는 영원히 도래할 수 없습니다. 식민지 정복과 원주민 학살과 같은 차별과 폭력으로 이루어지는 그리스도교의 역사는 모양을 달리할 뿐 반복해서 일어날 것입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는 우리의 현실 속에서 바로 그러한 그리스도교를 확인하게 됩니다. 아투에이가 말한 대로 하느님이 아니라 “금은보화”를 섬기는 그리스도교입니다.

이 사실을 알면 그러한 믿음에서 돌아서야 합니다. 하지만 바르톨로메 데 라스 카사스와 같은 사람은 보기 어렵고 설사 그러한 사람이 나와서 아무리 잘못된 모습을 지적해도 주류 그리스도교는 변하지 않습니다. 바르톨로메 데 라스 카사스는 예언자와 같이 외로운 삶을 살다 죽을 것입니다.

얼마 전 홍인식 목사가 한국의 한 개신교회에 청빙을 받았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반신반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해방신학의 사고를 가진 목사가 과연 한국교회에서 뿌리를 내릴 수 있을까를 의심했습니다. 그런 홍목사가 청빙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기적이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홍목사가 그 교회를 몇 달 전에 이미 떠났고 완전히 사임하게 되었다는 기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사고로 해방신학식 사고를 따르는 기적은 일어날 수 없습니다. 아마도 예수님이 직접 오셨다면 아예 청빙조차도 받으실 길이 없는 것이 오늘날 교회입니다. 그만큼 오늘날 교회는 예수님과 그분이 말씀하신 하느님 나라의 복음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정도가 아니라 척을 지고 정 반대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사실 저도 아투에이 추장이 한 말을 오래 전부터 해왔습니다. 저는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가는 천국에는 갈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교는 상급과 차별로 천국을 오염시켰습니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는 차별이 없는 평등한 나라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성서가 말하는 진정한 평화인 샬롬입니다.

아무리 코로나가 교회와 믿음의 실체를 드러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런 충격도 받지 않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새삼스럽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가운데 가나안 땅에 들어간 사람은 모두가 광야에서 태어난 사람들이었습니다. 애굽에서 나온 사람들 가운데는 단 두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많은 가나안 성도들(교회에 안나가는 신자들)이 생겨도 여호수아와 갈렙 같은 성도를 볼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적어도 확실한 것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 하느님 나라의 예표라는 사실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바르톨로메 데 라스 카사스는 제가 오래 전에 자세히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그가 가는 길은 외로운 길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이 전하신 하느님 나라 복음을 안다면 그와 같은 길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언제든 죽을 각오를 하지 않으면 갈 수 없는 길입니다. 새삼 ‘한 알의 밀’이 생각나는 아침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길은 죽음(십자가)을 선택한 사람들이 가는 길입니다.

 

최태선
하느님 나라의 시선으로 살아가는 
55년생 개신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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