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먼저 인사를 받으면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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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먼저 인사를 받으면 기분이 좋다
  • 서영남
  • 승인 2020.08.11 01: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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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남의 민들레국수집 일기]
사진=서영남
사진=서영남

손님들이 말합니다. 도시락 하나 있으니 그나마 살아갈 수 있다고 합니다. 도시락에 담긴 정성으로 코로나19로 힘들어도 살아낼 수 있다 합니다.

어느 수녀님께서 싱싱한 갈치 한 상자를 손질해서 가져오셨습니다. 곧바로 굽기만 하면 먹을 수 있습니다. 밀가루에 묻혀서 프라이팬에 노릇노릇 구웠습니다. 돼지 불고기는 간장에 재워서 볶았습니다. 김치도 볶았습니다. 도시락에 밥을 꼭꼭 눌러 담습니다. 빨리 밥을 식혀야 합니다. 그런 다음 준비된 반찬을 담습니다. 여름 날씨를 최대한 오래 견딜 수 있는 도시락입니다. 도시락은 꾸러미를 만듭니다. 손님들이 된장국이라도 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만 국 대신 생수 한 병으로 바꾸었습니다. 반찬이 혹시 모자랄 수 있기에 도시락 김 하나 넣습니다. 사발면, 빵, 사탕을 넣습니다. 그리고 일회용 마스크도 하나 담습니다. 매주 한 번은 용돈을 조금 나누기도 합니다.

도시락 꾸러미를 준비하는 동안 손님들은 민들레국수집 근처에서 기다립니다. 줄을 서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사회적 거리두기가 잘 지켜집니다. 마스크가 없는 손님에게는 마스크를 드립니다. 담배 또는 사탕을 나눕니다. 더운 날에는 얼음과자를 하나씩 나눠 먹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인적사항을 확인하고 체온을 재고, 손 소독제를 손에 바릅니다. 그리고 노숙생활하는데 불편한 것이 없는지 물어보기도 합니다.

도시락을 나누는 순서는 여성, 노인 순서입니다.

민들레국수집의 VIP 손님들은 ‘하느님의 대사들’입니다. 피터 모린이 거지들을 하느님의 대사들이라고 불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보잘것없는 모습으로 찾아오는 손님이 ‘하느님의 대사’인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우리 손님들은 정말 하느님의 대사들입니다. 욕심이 거의 없습니다. 작은 것도 나눌 줄 압니다. 자기도 배고파 죽을 지경인데 더 배고픈 사람 걱정을 합니다.

자폐 아들과 함께 노숙하는 모자가 있습니다. 어느 날 이 모자가 민들레국수집에 와서 식사를 하고 떠났습니다. 그때 마침 찾아온 후원 자매님이 그 모자를 쫓아가서 당신이 가지고 있는 돈을 전부 주고 떠났습니다. 한참 후에 그 어머니가 아들과 함께 돌아왔습니다. 자기는 아들과 함께 노숙하지만 밥도 이곳과 어느 절에서 먹을 수 있고 필요한 것도 항상 얻을 수 있는데 이렇게 많은 돈은 필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후원 자매님이 준 삼십만 원을 반찬 사는 데 보태라고 내어 놓습니다.

 

사진=서영남
사진=서영남

민들레국수집을 찾아오는 손님들은 터무니없이 게으르다는 소리를 듣고, 욕심이 많다는 소리도 듣습니다. 코로나19에는 바이러스 감염원으로 눈총을 받습니다. 사람대접을 받지 못합니다. 노숙을 합니다. 지하도에서 쫓겨나 어쩔 줄 모릅니다. 사람들은 노숙하는 사람을 만나면 당황해서 어쩔 줄 모릅니다. 앞에 있어도 못본 척 그냥 지나갑니다. 그런데 사실은 ‘하느님의 대사들’입니다.

길을 가다보면 우리 단골 손님을 만납니다. 그런데 우리 손님을 만날 때는 제가 먼저 인사를 해야만 반갑게 인사합니다. 제가 먼저 인사하지 않으면 우리 손님은 모르는 사람처럼 아무런 표정도 없이 그냥 지나가버립니다.

“호진 씨, 먼저 인사하면 안 되나요?”
“사람들이 우리를 사람으로 보지 않거든요.”

처음 노숙했을 때는 그래도 남이 보니까 옷차림도 신경을 쓰고 냄새나지 않게 씻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자기를 없는 것처럼 대한다는 것을 알았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세상에 없는 사람으로 살았는데 갑자기 아는 체 인사하는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그래도 먼저 인사를 받으면 기분이 좋다고 합니다. 자기 이름을 불러주면 옷매무새도 신경을 쓰게 된다고 합니다.

 

서영남 베드로
민들레국수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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