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복음의 플랫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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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복음의 플랫폼이다
  • 최태선
  • 승인 2020.08.06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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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선 칼럼
사진출처=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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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에서 한 노인의 하루 삶을 취재했습니다. 지하철 택배를 하는 분이었습니다. 지하철을 공짜로 탈 수 있는 노인들이 계속해서 지하철을 타면서 정해진 곳에 무거운 물건을 배달했습니다. 그렇게 하루 종일 돌아다니며 번 돈은 2~3만 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돈을 다 번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중 20%를 수수료로 내야했습니다. 그 노인은 플랫폼 노동자였습니다.

우리나라의 플랫폼노동자들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52만 명이라는 통계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평균 한 달 수입이 152만 원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루 열두 시간을 일하고도 최저시급에 못 미치는 수입입니다. 그것은 도시 최저 생계비에 못 미치는 금액입니다. 정말 뼈 빠지게 일을 하고도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값어치가 없는 싼 일을 하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그런 사람들을 기반으로 큰돈을 버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플랫폼 사업자들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사회는 산업화를 넘어 정보화를 넘어 지식화 된 사회입니다. AI(인공지능)를 기반으로 하는 이 사회는 인류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사회입니다. 자동화와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고 인간이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자동화와 로봇을 통해 창출되는 부는 전체 인류를 위해 공정하게 분배되어야 하는데 그것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그 결과 세계에서 가장 부자라는 타이틀은 플랫폼 사업자들이 줄줄이 차지하기 시작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 터전을 잃고 노숙자가 되는 일이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 되었습니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심각한 실패를 경험한 사람들이 아니라 정상적으로 살던 사람들이 플랫폼 사업으로 수입이 많아진 사람들 탓에 높아진 집세를 감당하지 못해 주거지를 잃는 일은 그냥 정상적인 사회의 흐름이 되었습니다.

아파트 한 채가 수십억을 넘게 된 것은 이러한 지식화 된 사회에서는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의 사고가 사회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회는 불안감이 커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자식들의 집까지 하나 더 장만해야 하고 자식들의 몰락을 방지하기 위해 더 좋은 대학을 보내기 위해 과외는 물론 유학까지 보내야 합니다. 주체가 되어야 할 인간이 주체가 되지 못하고 주변 인물이 되어 몰락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야흐로 노숙자의 삶이 대부분의 사람들의 코앞에 다가와 있는 것입니다. 구글과 페이스북과 같은 플랫폼 기업이 몰려 있는 미국의 실리콘벨리의 노숙자 증가속도는 무려 16%를 넘어섰습니다. 플랫폼 기업 종사자들의 높은 소득이 부동산 가격을 폭등시켰고 그동안 정상적인 삶을 살던 사람들의 수입으로는 방 한 칸도 얻을 수 없는 곳이 되었기 때문입니다.(고급 저택은 수백 억 원이 넘어가고 방 두 칸에 화장실이 하나인 칠십 년 대에 지어진 허름한 집의 가격이 이십 억 원을 넘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실직을 하거나 병이라도 걸리게 되면 온 가족이 길로 나앉게 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 된 것입니다. 대안으로 캠핑카를 사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주차비도 한 달에 백만 원이나 되고 그나마 빈자리가 없어 그 값은 또 다시 오르는 악순환이 그곳의 현실이 되었습니다.

정보화를 넘어 지식화 된 사회에서 플랫폼은 ‘보이지 않는 손’이 되었습니다. 바야흐로 플랫폼이 신이 된 세상이 된 것입니다. 이젠 누구라도 플랫폼에 주목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하다못해 대리운전을 하려고 해도 스마트폰을 잘 다루지 못하면 아예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지하철택배를 하는 노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보와 지식의 주체가 되어야 할 인간이 정보와 지식의 노예가 된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반세기도 더 전에 자끄 엘륄이 지적했던 기술이 주도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모습입니다.

최정상에 있는 사람들은 이런 사회의 현실을 그래도 조금은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워렌 버핏은 부자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물리라고 말하고 있고 빌 게이츠는 세금을 더 낼 테니 받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더 큰 집과 더 큰 자가용 비행기와 요트를 사기 위해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본으로 인한 인류공멸의 위기가 눈앞에 닥쳤습니다. 실리콘벨리의 운명은 강남의 운명이 될 것입니다. 아니 국토가 좁은 우리나라의 경우는 나라 전체가 실리콘벨리의 운명이 될 것입니다.

 

사진출처=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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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세상의 현실을 인식한다면 그리스도인들은 당연히 하느님 나라를 떠올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라는 사람들은 플랫폼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끝까지 살아남는 자가 되기 위해 맘몬의 첨병이 되었습니다. 부동산 투기든 주식투자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더 많은 돈을 축적하기 위해 혈안이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그런 자신들을 보호해주는 수호신이거나 위험을 대비한 보험이 되었습니다. 결국 대형교회가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그런 그리스도인들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대안사회입니다. 대조사회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 말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세상과 다른 사회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소수의 부자들과 노숙자를 코앞에 둔 대다수가 아니라 모두가 인간답게 사는 세상이 여기 이렇게 가능하다는 것을 하느님의 백성인 그리스도인들이 보여주어야 합니다. 아무리 돈을 벌어도 더 불안해지는 세상이 아니라 아무도 부자가 되려 하지 않는 대안사회를 그리스도인들이 보여주어야 합니다. 성공한 사람도 실패한 사람도 있지만 그 가운데 핍절한 사람(노숙자)이 하나도 없는 사회가 여기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생각해보면 플랫폼의 기원은 초기교회였습니다. 초기교회는 가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면 모든 재산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자발적인 포기가 아니라 정상적인 사회의 일원으로서의 모든 것을 포기해야 했고 실제로 모든 재산이 몰수되었습니다. 거기에 도망친 노예와 같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무일푼일 뿐 아니라 거액의 속전을 내야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전보다 더 열심히 일해야 했습니다. 그들이 더 열심히 일할 수 있기 위한 직업보도는 초기교회의 가장 중요한 사역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들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일할 수 있는 기술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전보다 더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단지 자기 자신만을 위해 일하지 않습니다. 더 열심히 일해 일하지 못하는 사람이나 속전과 같은 거액의 부채를 해결해야 했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누군가 실패한 사람들을 향해 그들의 게으름을 지적하며 성서의 말씀을 인용합니다. “일하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먹지도 말라” 그러나 바울이 한 이 말은 하느님 나라 공동체에 핍절한 사람이 없도록 하기 위한 열심을 촉구하는 말이었습니다. 초기교회 공동체에 자기 자신을 위해 돈을 버는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사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자기 욕망을 위해 사는 이도 없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공동체는 플랫폼이었습니다.

저는 지하철 택배를 하는 노인을 보며, 20%의 수수료를 떼는 것이 아니라 1%의 수수료를 떼고 그것만으로도 수익이 노인들의 수익보다 많아지면 노인들에게 되돌려주거나 일하지 못하는 노인들을 돌보는 플랫폼 사업자는 왜 없는가를 생각했습니다. 잠시 멈추어서 생각을 해보십시오. 만일 우리가 그렇게 살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행복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또 그런 삶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닙니까.

많은 분들이 코로나 이후의 교회에 대해 이런 저런 말들을 이야기합니다. 저도 그런 글을 몇 개 쓰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다시 코로나 이후의 교회는 플랫폼을 낳고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는 새로운 제안을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사회입니다. 생명으로 풍성해지는 사회입니다.

세상은 플랫폼이 되어 인간의 생명을 축소시키고 말살하려합니다. 실리콘벨리는 그것을 현실로 우리에게 확인시켜줍니다. 우리나라도 집값의 상승이 가히 미친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그것이 거품이 되어 터지기 전에 교회가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각성해야 합니다. 세상이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급진적인 혁명가들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이야기하겠습니다. 오래 전 강릉에 수해가 났습니다. 저희 교회는 몇몇 작은 교회들과 힘을 합쳐 강릉의 한 교회로 연보를 보내드렸습니다. 그 교회의 목사님은 그 돈으로 벽지를 사서 물에 찼던 집들의 도배를 해주셨습니다. 허물어진 길도 새로 닦았습니다. 우리가 보내드린 연보로는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결과가 되었습니다. 교회가 가진 힘을 보시라는 것입니다. 교회가 교회가 될 때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를 보시라는 것입니다.

교회가 플랫폼이 되고 플랫폼을 낳는 교회가 될 때 우리는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가 무엇인가를 알게 될 것이고, 아버지께서 그런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을 찾고 계셨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최태선
하느님 나라의 시선으로 살아가는 
55년생 개신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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