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라한 여물통에서 가녀린 숨을 몰아쉬고 있는 가난한 이들을 경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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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라한 여물통에서 가녀린 숨을 몰아쉬고 있는 가난한 이들을 경배하자
  • 서영남
  • 승인 2020.07.20 15: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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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남의 민들레국수집 일기]
사진=서영남
사진=서영남

지난 월요일에는 기습적으로 도시락 꾸러미와 용돈을 손님께 드렸습니다. 용돈을 드리는 날을 정해 놓으면 아주 곤란한 일이 벌어집니다. 도시락이 필요하지 않은 분들이 몰려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개인과 개인 사이의 인격적 교류와는 관계가 없는 일이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지난 2월말부터 민들레국수집에서는 손님들에게 도시락 꾸러미를 드리고 있습니다. 사태가 좀 잠잠해지면 다시 예전처럼 손님 대접을 하고 싶지만 좀처럼 예전처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용돈을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드립니다. 왜냐면 우리 손님들은 돈이 아예 없습니다. 천 원짜리 한 장도 없습니다. 오백 원, 백 원 동전 한 두 개 있으면 든든하답니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우리 손님들에게 용돈을 드립니다. 겨우 오천 원을 봉투에 담아서 도시락 꾸러미를 드릴 때 함께 드립니다. 

처음 민들레국수집을 시작했을 때는 손님이 돈을 빌려달라고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면 빌려줄 돈이라곤 없었기 때문입니다. 얼마를 빌리려고 하는지 물어보면 보통 천 원짜리 한 장입니다. 많으면 오천 원입니다. 그 정도면 빌려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언제 갚을지 약속을 해야 빌려드렸습니다. 그런데 천 원을 빌려간 손님이 식사하러 오질 않습니다. 천 원을 갚지 못하니까 미안해서 오질 못합니다. 그래서 다음부터는 갚지 못해도 밥은 먹으러 와야 한다는 약속을 하고서야 빌려드렸습니다.

피터 모린께서 한 것처럼 돈 통을 만들어서 삼천 원 미만으로 자유롭게 가져가고 돈이 생기면 갚도록 했습니다. 한 동안 잘 운영되었습니다만 어느 날 돈 통이 사라지면서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민들레희망센터를 열면서 책을 읽고 독후감을 간단하게 발표하면 삼천 원을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19로 민들레희망센터를 잠정적으로 열지 못하게 되어서 요즘은 용돈을 간혹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필요한 옷과 신발도 함께 나눠드립니다.  

어느 날 손님들에게 도시락을 드리다가 세 명의 손님을 초대했습니다. 오후 세 시에 오시면 짜장면이나 순댓국을 대접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몇 번을 순댓국 또는 짜장면을 대접했습니다. 순댓국 한 그릇에 삼천 원 할 때 먹어보곤 처음 먹어본다고 합니다. 짜장면을 몇 십 년 만에 먹어본다면서 참 좋아합니다. 

 

사진=서영남
사진=서영남

민들레국수집 봉사자들이 손님들을 식당에 모시고 가서 대접하는 것보다는 직접 요리해서 대접하는 것이 좋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계속 도시락만 준비하다보니까 감자탕 재료가 있는데도 쓸 수가 없다고도 합니다. 그래서 민들레국수집에 한 번에 앉을 수 있는 여덟 명을 초대했습니다. 감자탕을 대접하는 날에는 손님들에게 막걸리도 한 잔 대접했습니다.

두 번째는 돼지불고기와 잡채 그리고 상추쌈을 듬뿍 준비했습니다. 세 번째는 도가니탕을 준비했습니다. 손님들에게 제발 도가니를 듬뿍 넣어서 드시라고 해도 접시에 밥과 김치만 듬뿍 담습니다. 넉 달 만에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게 되니까 어색하다고 합니다. 얼마나 맛있게 먹는지 진수성찬이 부럽지 않다고 합니다. 

노숙 손님들을 초대하고 간단한 선물도 준비하고 식사 대접을 하고 막걸리도 한 잔 나눠 마시면서 하늘나라를 미리 맛봅니다. 

"그레고리우스는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이라는 연설에서 최후의 심판에 관한 깊은 성찰을 나누어 준다. 머잖아 이 고통의 바다건너 본향에 다다르게 될 때 우리가 갖춰 입어야 할 사랑의 예복은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살인이나 간음이나 도둑질을 저지르지 않는 일, 금은보화로 성전을 장식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한 가지가 있으니, 가난한 이들 안에 계시는 주님을 알아뵙고 섬기는 일이라고 한다. 주님께서는 수천 마리 양보다 우리의 자비와 연민을 더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부디 너무 늦지 않게 주님의 현존인 가난한 이들을 경배하라는 것이다. 어서 가 초라한 여물통에서 가녀린 숨을 몰아쉬고 있는 가난한 이들을 경배하자는 것이다"(교부들의 사회교리 113-114쪽). 

 

서영남 베드로
민들레국수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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