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도 주님의 것, 죽어도 주님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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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도 주님의 것, 죽어도 주님의 것
  • 로버트 엘스버그
  • 승인 2020.07.2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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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엘스버그의 [우리를 행복으로 이끄는 성인들] -죽는 것을 배우기(6)

영국의 가톨릭 작가인 도날드 니콜은 암으로 죽으며 생의 마지막 시기에 감동적인 일기를 썼다. 마지막 부분에서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살아있는 그 어느 누구도 죽음에 대하여 나에게 가르칠 수 없다. ­살아있는 사람은 아무도 그것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죽음에 대하여 가르칠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은 그들 자신이 죽었거나, 어떤 식으로든 그 경험을 목격한 사람들뿐이다. 순교자들(증거자들)은 적어도 우리에게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우리는 순교자들과 선조들에게 우리를 동반자로 받아달라고 청한다. 그들이 가르쳐주는 것은 무엇보다도 온 마음을 다해 죽음 속으로 들어가고, 온 마음을 다해, 그리고 즐거움 안에서 죽음에 대한 경험을 포옹하라는 것이다.”

처음의 순교자들은 참으로 그들의 죽음을 진심으로 포옹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처형대로 나아가면서 찬송가를 부르거나 공개적으로 기도했다고 초기순교사화는 전한다. 용기와 확신에 가득찬 그들의 모습에 처형자들조차 놀라움과 두려움에 떨었고,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신앙을 북돋아 주었다. 그래서 초기 그리스도교 신학자인 테툴리아누스는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던 것이다.

교회는 시작부터 이들 순교자들을 특별한 안내자로 삼았다. 그들의 죽음은 어떤 한 죽음이 아니라 폴리카르포 성인의 죽음처럼, “복음과 하나된” 죽음이었으며, 신비스러운 방식으로 그리스도의 수난을 재현한 죽음이었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면서 순교자들은 그리스도의 수난을 닮았을 뿐만 아니라, 부활에 대한 그들의 강력한 신앙을 선포하였다.

그러나 순교시대는 네로와 디오클레시안 시대로 막을 내리지 않았다. 현대세계의 곳곳에서 많은 남녀들이 그들의 신앙에 댓가를 치루었고 그들의 죽음은 그런 의미에서 “복음에 일치된” 삶이었다. 그리고 순교자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친다. 그들의 이야기는 죽음에서 끝났기 때문에 특출난 것이 아니다. 또한 그들이 우리에게 모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가르쳐 준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러나 최소한도 그들은 한가지 진실을 증언하고 있는데, 그것은 모든 사람과 모든 상황에 적용되는 진실이다. 즉 인간 삶의 가장 고귀한 목적은 할 수 있는한 우리의 신체적 실존을 연장시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마르틴 루터 킹 2세 목사는 1967년의 한 인터뷰에서 위의 진실을 표현하는 태도를 보인다.

"나는 매일 죽음의 위협과 함께 살고 있다. 그리고 나는 수년 전, 만일 죽음이 나를 정복하도록 내버려둔다면 전혀 내가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오래 사는가가 아니라 높고, 고귀하고, 선한 진실들을 전하는 나의 의무를 얼마나 잘 수행하는가 이다.”

실상 킹은 공적인 여정을 시작하던 초기에 이미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 1956년 1월 어느 늦은 밤 걸려온 전화를 받았을 때, 그는 사악한 죽음의 위협을 느꼈다. 그런 전화가 하루에도 수십 번 걸려왔고 그 때는 보통 일어나는 일이었다. 이미 그는 몽고메리 버스타기 거부운동 이후로 엄청난 폭력과 증오의 대상이 되어 왔다. 그 자신과 가족들은 더 이상 위협을 견딜 수 없는 지점에 도달했다. 그는 부엌으로 가서 커피 한잔을 앞에 놓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하느님께 향했다. 후에 그는 이렇게 회고했다.

“어디에선가 알 수 없는 곳에서 나는 소리를 들었다. ‘마르틴 루터! 의를 위하여 일어서거라. 정의를 위하여 일어서라. 진리를 위하여 일어서라. 그러면 보라,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다.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그 후에 그는 “모든 것을 대면할 준비가 되었다”고 말했다.

마르틴 루터 킹의 이어지는 길은 끊임없는 위험에 노출되는 길이었다. 그 소리를 들은 지 사흘 후, 그의 집은 폭발했다. 계속해서 감옥에 투옥되었다. 어떤 때는 거의 치명적으로 칼에 찔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결코 의심과 절망의 유혹을 받지 않았다. 죽을 때까지 그는 계속 사회 불의와 증오의 뿌리에 더 깊숙이 내려갔으며, 복음의 근본적인 도전 속으로 더 나아갔다. 그러면서 그는 마지막 약속을 향하여 서서히 다가갔다.

1968년 4월 그는 멤피스에서 청소원들의 파업에 지지를 보내고 있었다. 분위기는 긴장으로 고조되어 살벌했다. 폭력이 코앞에 있었다. 그의 유명한 “꿈”은 점점 더 악몽이 되어 가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월 3일 저녁, 그는 한 시위에서 연설을 했고 다음의 말들로 끝을 맺었다:

“자, 이제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앞날이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제 나에게는 별로 상관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산꼭대기에 가 본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걱정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오래 살고 싶습니다. 오래 사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걸 걱정하지 않습니다. 나는 다만 하느님의 뜻을 수행하고자 합니다. 그러면 그분께서 나를 산꼭대기에 올라가라고 하실 것입니다. 나는 꼭대기에서 둘러봅니다. 약속된 땅을 봅니다. 아마도 여러분들과 함께 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이 오늘밤 우리가 한 백성으로서, 약속의 땅에 이를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주기를 바랍니다. 나는 오늘밤 행복합니다. 나는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습니다. 나는 아무도 무섭지 않습니다. 나의 눈은 영광스럽게 오시는 하느님을 봅니다.”

그는 다음날 암살되었다.

순교자로서 죽는 것을 교회는 특별한 소명이라고 여겨왔으며, 소수의 사람들이 순교에 초대되므로 아무도 순교를 적극적으로 추구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마르틴 루터 킹이 암살전야에 암시했던 행복이 그의 죽음보다 우리와 더 깊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성인들의 행복에 관한 한, 그것은 주로 내적인 신뢰의 문제이며 아무리 위험한 상황이라고 해도 내적인 신뢰만 있다면, 그것은 행복으로 가는 올바른 길이며, 그의 영혼과 운명은 사랑스러운 하느님의 손안에 있다. 성인들에게 행복의 기반은 또 하루나, 또 하나의 절기를 보장받는 것이 아니라 내적인 신뢰와 확신이다.

바오로 사도가 말한 것처럼, “우리들 가운데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사는 사람도 없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 죽는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해서 살고, 죽더라도 주님을 위해서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아도 주님의 것이고, 죽어도 주님의 것입니다”(로마서 14,7-8).

 

로버트 엘스버그 /1955년 미국 잭슨빌에서 태어났다. 존재의 의미와 참된 삶에 이르는 길을 찾던 그는 하버드 대학교를 다니다 2학년을 마치고 1975년 도로시 데이와 함께 5년 동안 일했다. <가톨릭일꾼> 신문 편집장으로 활동하다 1980년 가톨릭으로 개종했으며, 모교로 돌아가 종교와 문학을 공부한 후 라틴 아메리카에서 변화된 가톨릭교회 모습을 체험했다. 도로시 데이의 작품집을 냈으며 하버드 신학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면서 1학년을 가르쳤다. 1987년 신학박사 과정을 마치고 메리놀 수도회 Orbis 출판사 편집장이 되었다. 지은 책으로 <모든 성인들>과 <모든 여인 가운데 복되도다> 등이 있다. 도로시 데이 시성식 추진위원회와 헨리 나웬 재단 위원이며, 현재 세 자녀와 함께 뉴욕 주 오시닝에 살고 있다.

이 글은 2003년, 미국 메리놀 출판사가 발간한 <The Saints' Guide to Happiness>(Robert Ellsberg)를 <참사람되어> 2005년 3월호에서 편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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