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농민주일을 앞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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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농민주일을 앞두고
  • 한상봉 편집장
  • 승인 2020.07.1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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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봉의 너에게 가고싶다: 지상에서 영원한 하늘을 갈망하는 길 찾기-8
사진출처=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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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고구마 밭을 일구었다. 모내기를 마치고 5월 중순 이후에 고구마를 심고 나면 대개 봄에 파종할 것은 다 마치는 셈이다. 고구마 두둑을 만들면서 밭에서 돌을 골라내는데, 한정 없이 돌멩이가 괭이 끝에 딸려 나왔다. 비가 내리고 나서 습기가 가시기 전에 모종을 심어야 하는데, 일은 더디고 마음만 바빴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을 한다. 그래도 돌보다 흙이 많군.

흙은 흙대로 두둑을 만들어 고구마를 심고, 돌은 돌대로 모아서 밭 가에 돌탑도 세우고 울타리 삼아 쌓아놓을 요량이다. 쓸모없는 것의 쓸모를 찾아가는 것이 농부의 마음이 아니던가. 살면서 만나는 이웃들이 다 좋을 수는 없다.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고, 마음에 쏙 드는 사람도 있고 괜스레 얄미운 사람도 있다. 매몰차게 상처를 입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얼굴만 쳐다봐도 기운이 나게 하는 사람도 있다.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하고 일갈하던 시인도 있었지만, 온전히 향기롭기만 한 흙가슴이 어디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작고 큰 돌이 뒤섞여 있는 게 땅인 게 사실이라면, 맘에 안 드는 구석이라도 끌어안고 살아가는 게 더 사람다운 살림살이란 생각이 든다. 실상 잔돌이 좀 섞여 있어야 흙도 그 틈새로 호흡을 할 수 있고, 작물도 더 잘 자란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어설프게 엉키고 마음 상하는 일들도 받아들이는 사람의 태도에 따라서 영적 성장을 위한 축복이 되고 걸림도 된다는 말이겠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마음밭을 가는 것과 어느 한끝에서 이어져 있음을 확인한다.

 

사진출처=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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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교회에서는 일 년에 한 차례 ‘농민주일’이란 걸 전례력에 두고 기념한다. 한창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계절에 농민주일을 보내는 까닭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휴가철이니 농촌에 가서 일손이라도 도우라는 뜻일까. 학생들이라면 몰라도 도시의 직장인이라면 남들 다 놀러 다니는 피서 철에 노동을 하라는 요구는 좀 지나친 느낌이 있다. 농촌에서도 이 맘 때는 그렇게 바쁘게 일해야 하는 때는 아니다. 논에 물꼬 보러 다니고 간간이 잡초를 뽑는 일 말고는 남들처럼 쉬기에 좋은 계절이다. 그렇다면 다들 봄부터 실컷 고생하였으니, 도시 사람들과 어울려 수박 깨 먹으며 신명나게 축제라도 벌이라는 배려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럴까. 내가 알기로는, 농민주일에 몇몇 성당에선 도농 직거래 장터가 열리고 꽹과리 치면서 축제를 열곤 한다. 영양가 높다는 집짐승도 잡아서 나눠 먹으며 한바탕 놀고 나면 어느 덧 한가족이 된 것 같은 느낌도 생기지 않겠는가. 일 년에 한번 은혜를 잊고 지냈던 사람들을 기억하자는 가상한 뜻이 담겨 있을 것이다. 군종주일엔 나라를 지켜 주시는 군인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성소주일엔 세상에 교회의 거룩한 자산을 나눠 주기 위해 준비하는 신학생들을 기억하고, 농민주일엔 먹을 것을 생산하는 농부들에게 정성을 보인다.

일주일에 한 차례 미사 참례를 하면서 일주일 동안 잊고 살았던 예수를 다시 기억해 내는 게 미사의 참뜻이 아니라면, 일 년에 한 차례 농민주일을 기념하면서 한 해 동안 잊고 살았던 농부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 역시 농민주일의 참뜻은 아닐 것이다. 물론 바쁜 세상에 아예 잊고 사는 것보다는 다행스런 일이지만, 조금만 돌아보면 감사할 것이 어디 한두 군데일까. 산천초목이며 구멍가게 문방구점 아저씨까지 생활상 없어서는 안 될 ‘이유 있는 존재’들이 얼마든지 있고, 도처에 우리를 하느님의 거룩함으로 초대하는 손짓이 있다. 돌아보면 지천에 성소(聖所)가 있고, 사방에서 온갖 목숨들이 성소(聖召)를 불러일으킨다.

몇 해 전부터 농민주일마다 화제에 올랐던 것은 망해가는 우리 농촌의 현실, 화학농법으로 오염된 먹을거리, 도농 직거래의 중요성 등이다.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에서도 거창하게는 생명윤리, 생태적 영성을 바탕으로 두면서 구체적으로는 유기농산물 생산과 도농 직거래의 활성화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이야기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을 때마다 항상 느끼는 것은 ‘사람’의 실종이다. 농사 그 자체나 농민 그대로를 헤아리는 마음을 읽어내기 힘들다.

예전에 노익상이란 사진작가가 강원도의 어느 오지를 취재하면서 쓴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그 작가는 손마디가 나뭇등걸처럼 얽은, 고생에 인이 박힌 것 같은 노인네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속으로 생각했단다. 농약 듬뿍듬뿍 쳐서라도 농사를 잘 지어서 제발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 그 말을 액면 그대로 옳다 그르다 따지기에 앞서, 그 노인을 바라보는 작가의 안쓰럽고 따뜻한 시선이 얼굴에 와 닿는 것 같았다.

농민주일의 제일 중요한 화두는 ‘농민’을 바라보는 시선을 되찾는 것이다. 농사짓는 백성의 마음에 얼마나 공감하는지 가늠할 줄 모르는 교회가 마치 이주 노동자를 대하듯이 ‘농민’을 취급하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결국 나름대로 깨끗한 청정 식자재를 손에 넣으면서 농부들의 생활을 보장해 주자는 논리는 3D 업종에서 부족한 인력을 이주 노동자로 충당하면서 그들의 처우 개선을 꾀하자는 논리와 다를 바 없으며, 표방하는 것과 달리 매우 세속적인 것이다. 만사를 이해관계 안에서 셈하는 자본주의의 사고방식이 교회 안에서도 알게 모르게 배어 있다. 그 이전에 더 원천에 해당하는 것들이 납득되고 성취될 때에 나머지는 저절로 따라오는 것이 아닐까.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교회 안에 참신한 성령의 바람을 불어넣어 주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리고 이 공의회를 주도했던 요한 23세 교황이 역대 교황 가운데 유일하게 농부 집안에서 나왔다는 기별도 들은 적이 있다. 베드로를 비롯한 몇몇 초기 교회 지도자를 뺀다면 역대 교황은 항상 귀족가문 출신이었다. 바티칸 궁전이 낯설지 않은, 그만큼 권위를 누릴 줄 알았던 교황 대신에 흙냄새를 맡을 줄 알았던 교황이 등장함으로써 어쩜 교회는 갈릴래아의 모래바람을 맞으며 설교하고, 산기슭에서 흙냄새를 맡으며 잠을 청해야 했던 예수의 마음으로 되돌아가도록 영감을 얻었는지도 모르겠다.

농촌은 단순히 식량 생산 기지가 아니다. 어둠을 죽이지 않고도 빛을 내는 별을 볼 기회가 없는 도시 사람들에게 ‘바다의 별’이라는 성모님의 이미지가 생생할 수 있을까. 제 손으로 고추 한 포기 키워 보지 못한 사람에게 ‘생명이신 하느님’을 설명할 방법이 있을까. 그들에게 ‘내 아버지는 농부이시다’라는 요한복음서의 진술은 얼마나 뜬금 없는 소리로 들릴까.

호미 잡은 아낙네의 건강한 영혼이 깃들지 않은 사람들에게 예수의 제자들은 하나같이 무식하고 거친 사람들로 비칠 것이다. 그래서 그나마 그들이 지식인이었던 바오로 사도만을 겨우 이해하고 나선다면 교회의 풍요로운 전승들은 얼마나 빛을 잃을 것인가. 이천년의 시간을 따질 것 없이 농민은 우리시대에도 여전히 잃어버린 아버지의 얼굴임을 기억해야 한다. 태양빛과 달빛과 별빛을 여과 없이 조율하던 하느님의 초상(肖像)임을 확인하고 기념하는 시간이 농민주일이 되면 어떨까, 하고 밭에서 손끝 여물게 돌을 고르는 마음으로 바라고 있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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