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모어 "오늘 죽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내일 죽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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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모어 "오늘 죽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내일 죽을 것입니다."
  • 로버트 엘스버그
  • 승인 2020.07.13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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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엘스버그의 [우리를 행복으로 이끄는 성인들] -죽는 것을 배우기(5)

시간은 다양한 얼굴들을 갖고 있다. 오랫동안 시간은 마치 고양이처럼 늘쩍지근하게 기지개를 켜며 별다른 변화 없이 한 가지에 이어 또 한가지 일이 일어나며 지나간다. 그러나 때때로 성서가 카이로스(kairos)라고 표현한 것처럼, 특별한 때가 생겨난다. 무엇인가 숨겨진 의미를 드러내기 위하여 무르익은 때, 어떤 결정적인 응답을 요구하는 위기의 때가 이른다.

죽음도 마찬가지로 다른 모습들을 입는다. 멀리 떨어진 나라의 지진피해자들, 혹은 신문에 난 유명인사의 부고기사로 만나는 죽음의 모습은 추상적이고 비인격적인 얼굴이다. 그 때 만나는 죽음은 우리자신의 죽음을 잠깐 상기시키며 스쳐 지나가는 모습이다. 한가지 일화 같은 모습에 불과하다.

그러나 죽음이 우리와 매우 중요하게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닥칠 때는 다른 느낌을 주기 마련이다. 그 때에 죽음은 일화에 그치지 않고, 우리가 보는 모든 것에 다른 빛을 던지는 치명적으로 중요한 사실이 된다. 이 대격변에 영향을 받지 않는 별들, 모든 무죄한 피조물들이 우리를 조롱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죽음의 사건이 이처럼 나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일어날 때, 모든 것이 달라진다. 가까이 와 있는 죽음을 숙고해도 그것이 가장 우월한 위치에 있다는 것 이외에 아무런 새 정보를 얻을 수 없다. 세계는 바로 그 지점으로부터 다르게 보인다. 두려움, 절망, 공포가 다가온다.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준비가 되지 않았는지, 다르게 처리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수많은 일들, 미완성과 미해결의 많은 일들에 직면하게 된다.

그러나 죽음이 가까이 오면, 이상하게도 해방의 느낌을 가질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죽음이 가까이 다가온다는 사실에 직면했을 때만큼 삶을 충만하게 느껴본 적이 없다고 증언한다. 많은 걱정들과 주의들이 별 상관이 없게 된다. 많은 것들이 그것들의 참다운 가치에 따라 분명해지고 확연하게 드러난다. 또한 더욱 심오해진다.

 

사진출처=pixabay.com
사진출처=pixabay.com

1945년 나치수용소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던 알프레드 데프(예수회) 신부는 감옥에서 이렇게 썼다.

“지난 마지막 주간 동안 삶은 갑자기 훨씬 더 온순해졌다. 너무나 단순하고 평범하게 보였던 수많은 것들이 새로운 차원을 띄게 되는 것 같다. 보이지 않던 온갖 측면들을 보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느님을 거의 만질 수 있게 된다. 항상 알고 믿었던 것들이 지금은 너무나 구체적인 모습을 보인다. 나는 그것들을 믿지만, 또한 그것들을 살고 있다.”

죽음은 가장 용감한 사람들에게도 공포와 두려움을 일으키게 할 수 있지만 더 긍정적인 영향도 가져다 줄 수 있다. 죽음은 우리로 하여금 강력하게 정신을 집중시켜서 영적인 통찰과 도덕적 분별력을 크게 해주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성인들은 “행복한 죽음”이란 적절한 예고와 준비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죽음이라고 한다.

초기교회시대의 영적인 대가들은 죽음에 대한 깨우침을 영적인 혜택이라며 감사했다. 예를 들면, <준주성범>의 저자인 토마스 아 켐피스는 이렇게 썼다.

“당신은 마치 오늘이 당신의 죽음의 날처럼 여기며 모든 행위와 생각을 정리해야 한다.”

결국 모든 날은 우리의 마지막 날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항상 준비하고 살아야 하며, 그래서 죽음이 준비 안된 당신을 발견하지 못하도록 해야한다.” 책의 또 다른 부분에서 아 켐피스는 이렇게 썼다. “만일 사람이 사는 동안 내내, 죽을 때에 발견하고자 하는 자기의 모습이 되려고 노력한다면, 그는 행복할 뿐만 아니라, 현명한 사람이다.”

<무지의 구름>(14세기 페스트가 창궐할 때 쓰여진 신비적 고전서)을 쓴 익명의 영국 저자는 기도할 때 어떻게 마음을 모을 수 있는지 다음의 충고를 하고 있다.

“기도를 시작할 때 ­그 기도가 길든 짧든 상관없이­ 가장 당신에게 도움이 되는 길은 기도가 끝났을 때에 당신이 죽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이다. 기도를 끝내기 전에 당신이 죽을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저자는 이어 덧붙이기를, “물론 확실하게 당신은 기도보다 더 오래 살 것이다. 그러나 그 사실에 의지하는 것은 잘못이고, 당신자신에게 그것을 약속하는 것은 실수이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가 인정을 하든, 안하든 우리 모두는 탄환이 들어있는 권총을 우리 머리에 대고 살고 있다. 오늘 권총이 발사되지 않으면, 아마도 내일 발사될 것이다. 내일이 아니라면, 언젠가는 발사될 것이다. 오늘이 바로 그 날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다르게 행동해야 하는가? 모든 말과 행위가 우리의 궁극적인 의도를 담는다면, 무엇이라고 말해야 하나?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떤 일이 가장 소중하고 가치 있는 일인가? 어떤 이가 매일의 삶 속에서 우리에게 총을 겨누고 있다면, 어떤 걱정들을 놓아야 할까?

우리는 전쟁, 테러리즘, 그리고 비이성적인 폭력 등으로부터 오는 죽음의 영상과 실제에 둘러싸여 있을 뿐 아니라, 핵 재앙, 환경파괴로 인한 영혼의 무기력에서도 죽음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우리문화 속에서 개인의 죽음은 대부분 병원이나 양로원에 숨겨져 있다. 그래서 죽음은 우리의 행동과 우선순위를 조정해야 하는 중대한 이유나 급박한 약속처럼 보이지 않고, 통계숫자로 우리의식 속에 남게 된다.

물론 삶에 대한 우리의 역량을 마비시킬 수 있는 죽음에 대한 병적인 집착현상도 있다. 그러나 그런 현상보다 더 일반적인 현상은 죽음을 피하려는 두려움에 찬 선입견, 전심을 다해 참여하기를 요청하는 삶에 무디어지게 만드는 선입견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쉽게 모험, 위험에 대한 두려움, 불편함에 대한 두려움, 우리로 하여금 행동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인식에 대한 두려움으로 바뀔 수 있다. 그리하여 죽음의 망령은 우리가 의식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모두를 갇힌 죄수로 만들 수 있다. 그러한 죽음에 대한 공포를 왕 앞에 자신의 양심을 내보이며 죽음을 불사했던 토마스 모어의 평온함, 자유와 비교해 보자. 왕에게 최고의 충성을 서약하라는 친구의 말에 토마스 모어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렇습니다. 나는 오늘 죽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내일 죽을 것입니다.”

성인들이 우리들 모두보다 매 순간이 그들의 마지막 순간이라고 인위적으로 기대하면서 살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나치지만, 죽음에 대한 정기적인 성찰을 통하여 삶의 의미와 종착점을 기억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매순간의 가치와 긴급성을 진심으로 깨어 기억하면서 그들은 자신들과 모든 중요한 것들에 대한 명확한 의식을 유지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더 이상 그들에게 족쇄를 채우지 못했다. 그들은 다른 편으로 건너갔다. 그들은 “죽음으로부터 생명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죽음이 그 권능을 잃었을 때, 모든 것이 ­행복마저도­ 가능하다.

로버트 엘스버그 /1955년 미국 잭슨빌에서 태어났다. 존재의 의미와 참된 삶에 이르는 길을 찾던 그는 하버드 대학교를 다니다 2학년을 마치고 1975년 도로시 데이와 함께 5년 동안 일했다. <가톨릭일꾼> 신문 편집장으로 활동하다 1980년 가톨릭으로 개종했으며, 모교로 돌아가 종교와 문학을 공부한 후 라틴 아메리카에서 변화된 가톨릭교회 모습을 체험했다. 도로시 데이의 작품집을 냈으며 하버드 신학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면서 1학년을 가르쳤다. 1987년 신학박사 과정을 마치고 메리놀 수도회 Orbis 출판사 편집장이 되었다. 지은 책으로 <모든 성인들>과 <모든 여인 가운데 복되도다> 등이 있다. 도로시 데이 시성식 추진위원회와 헨리 나웬 재단 위원이며, 현재 세 자녀와 함께 뉴욕 주 오시닝에 살고 있다.

이 글은 2003년, 미국 메리놀 출판사가 발간한 <The Saints' Guide to Happiness>(Robert Ellsberg)를 <참사람되어> 2005년 3월호에서 편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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