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나웬 "우린 처음부터 사랑받는 이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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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나웬 "우린 처음부터 사랑받는 이였어"
  • 로버트 엘스버그
  • 승인 2020.07.06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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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엘스버그의 [우리를 행복으로 이끄는 성인들] -죽는 것을 배우기(4)
헨리 나웬
헨리 나웬

헨리 나웬이 생의 마지막 수년 동안에 쓴 저서들을 보면, 그가 이 특별한 본향(죽음)에 대하여 얼마나 많이 관상하고 준비했는지 잘 알아볼 수 있다. 그는 이렇게 적고 있다.

“내가 얼마나 더 오래 살 것인가?... 한가지 사실은 분명한 것 같다. 매일 매일을 잘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얼마나 단순한 진리인가! 그런데도 나의 노력은 아직도 부족하다. 나는 오늘 평화를 주었는가? 어떤 사람의 얼굴에 웃음을 띄게 했는가? 치유의 말들을 했는가? 내가 지닌 분노와 회한을 놓았는가? 용서했는가? 사랑했는가? 이런 것들이 진실한 질문들이다! 내가 지금 심는 작은 사랑의 씨앗이 지금 이 세계에서, 또한 앞으로 다가올 삶에서 많은 열매들을 맺을 것이라고 믿어야 한다.”

이것은 그냥 우연히 지나치는 생각들이 아니라 자신의 죽음에 대한 관망에 특별히 주의를 기울였던 사람, 그리고 그런 관망에 따라 온 삶의 태도를 순응시켜 나갔던 사람의 깊은 성찰이다. 죽음에 대하여 던져야 할 중심적인 질문은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가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죽어 가는 모습이 우리가 사랑했던 사람들, 그리고 우리를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우리 자신과 하느님의 성령을 보내는 새로운 길이 되도록” 어떻게 죽음을 준비할 것인가, 이다.

이러한 나웬의 성찰에 특별한 촉매제가 되었던 것은 새벽공동체로 옮긴 후 겪었던 교통사고였다. 그는 이 사고로 거의 죽을 뻔했는데, 목숨이 위태로웠던 것 이외에 어떤 다른 체험을 하게 되었다.

나중에 그는 이 체험을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예수에 대하여 말하기가 조심스럽다. 내가 경험했던 그 거룩하고 충만한 현존을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내가 본 것은 따스한 빛도, 무지개도, 혹은 열린 문도 아니었다. 내가 느낀 것은 인간적이지만 거룩한 현존, 그 자체였다. 그 거룩한 존재는 나에게 가까이 오라고, 또한 모든 두려움을 놓으라고 초대하고 있었다.”

그는 매우 혹독한 고통을 겪었지만 한편으로 인생에서 가장 편안한 시간을 가졌던 것이다. 그는 이렇게 쓴다.

“죽음은 그 권세를 잃었다. 그리고 나를 너무나 친밀하게 둘러싸고 있던 생명과 사랑 속에 소멸하고 말았다. 마치도 바다를 걷고있는데 파도들이 멀리 사라져버리는 것 같았다. 나는 다른편 해안가로 안전하게 가고 있었다. 모든 질투, 회한, 그리고 분노가 부드럽게 사라져 갔고, 지금까지 내가 걱정했던 그 어떤 권세보다 사랑과 생명이 더 크게, 더 깊게, 더 강하게 나타났다.”

그 전에 나온 책을 읽은 독자라면 나웬의 타고난 걱정하는 성향을 알고 있을 테고, 그래서 위의 표현이 지닌 의미가 얼마나 큰 것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평화의 선물”을 받으면서 나웬은 다른 사람들과 새로운 깨달음을 나눠야 한다고 느꼈다. 영원과 만나는 체험을 한 후, 그는 그에게 덤처럼 주어진 시간을 “지상 그 건너편”에서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만일 신학이 “하느님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는 것”이라면, 그에게는 “좀 더 신학적으로 살고 다른 이들도 그렇게 살 수 있도록 돕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이전에 나온 책에서 나웬은 우리들의 생명이 우리에게뿐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도 속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제 그는 그런 인식을 죽음에까지 적용한다. 우리가 죄책감, 수치감, 분노, 회한을 갖고 죽는다면 이 모든 것들은 우리가 세상에 남기는 유산이 되어 우리가족과 친구들의 삶을 옭죄고 무겁게 만들 것이다. 또 다른 한편, 죽음을 우리가 하느님 안에서 느끼는 평화를 다른 이웃에게 전해주는 선물이요 기회로 여기고 떠날 수 있다.

나웬은 이 주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특히 일생 서커스에 매료되어 있던 그는 한 이미지를 서커스에서 뽑아낸다. 가까이 지냈던 서커스 일가의 한 공중곡예사가 “날으는 사람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를 붙잡는 사람이 모든 것을 한다”라고 말했을 때, 나웬은 깊은 감명을 받는다. 그 곡예사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내가 밑에서 붙잡는 사람에게 날아갈 때, 난 그저 내 팔과 손을 그를 향해 뻗칠 뿐이지요. 그러면 그는 나를 붙잡아서 밑의 착지대 안에 안전하게 내리도록 끌어당깁니다... 나는 사람은 날아야 하고, 붙잡는 사람은 붙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는 사람은 팔을 뻗으면서 붙잡는 사람이 그를 위해 밑에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이 서커스의 지혜에서 나웬은 위대한 힘과 위안의 메시지를 발견하였다. 우리는 흔히 우리가 얼마나 모든 것을 잘 통제하며 다스릴 수 있는가에 따라 우리의 정체성과 성공여부를 판가름한다. 그러나 마지막에 우리 삶의 최종 의미는 우리가 얼마나 믿고 놓으며 타 존재의 손에 우리자신을 맡길 수 있는가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그는 십자가 위의 예수님이 했던 말씀을 상기한다. “아버지! 당신의 손에 제 영을 맡깁니다.” 나웬은 “죽는 것은 붙잡는 이를 믿는 것”이라고 성찰했다.

나웬은 자신이 죽기 몇 달전, 아담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았다. 아담은 그가 새벽공동체에 온 첫 해에 돌보았던 심각한 장애를 지닌 청년이었다. 나웬은 그를 통하여 늦은 나이에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이”가 되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진정으로 깨달았다.

아담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일상적 일들(먹고 말하고 입는 것 등)을 혼자서 전혀 할 수 없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왜 그런 사람이 죽어야 하는가?”라는 질문보다, “왜 하느님이 그런 사람을 살게 했는가?”가 먼저 던져질 질문이었다. 그러나 나웬은 아담의 삶과 죽음에서 복음이야기의 인간적인 재현을 보았다.

“아담은 매우 단순하게, 조용히, 그러나 파문을 일으키며 그곳에 있었다. 그는 단지 그의 삶 자체로서 우리 하느님의 놀라운 신비를 선포하였다. ‘나는 소중하고 사랑 받는 존재, 온전하며 하느님으로부터 태어난 존재입니다.’ 아담은 침묵으로 이 신비를 증언하였다. 그 신비는 그가 말을 하거나 못하거나, 걷거나 못 걷거나, 자신을 표현하거나 못 표현하거나 상관없이 존재하는 신비였다. 그 신비는 다만 그가 존재한다는 사실 하나와 상관 있는 신비이다. 아담은 하느님의 사랑 받는 아이였고, 사랑 받는 아이로 존재한다. 그것은 예수님이 오셔서 선포했던 소식과 같은 소식이다... 삶은 선물이다. 우리 각자는 고유하며 이름으로 알려지고 우리를 만들어 내신 존재에 의해 사랑 받고 있다.”

예수님 역시 짧은 공생활 동안에 별로 성취한 바가 없었다. 그분도 세상의 눈으로 보기엔 “실패”하고 죽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과 아담은 모두 하느님의 사랑 받는 아들들이다 ­예수님은 본성으로, 아담은 ‘입양’으로­ 그리고 그들은 우리들 사이에서 아버지 하느님의 자녀로 살았다. 그것이 아버지 하느님께 봉헌해야 할 유일한 제물이었다. 자녀로서의 삶, 그것이 예수님과 아담에게 유일하게 맡겨진 사명이었다. 그것은 또한 당신과 나의 사명이기도 하다. 그 사명을 믿고, 그것으로부터 살아가는 것이 참다운 거룩함이다”라고 나웬은 쓴다.

나웬은 아담에 관한 책을 썼다. 그는 아담의 삶을 통하여 우리 각자의 삶이 예수의 삶 안에서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의 삶 역시, 예수의 삶 안에서 설명된다고 믿었다. 나웬은 아담의 죽음으로부터 팔을 뻗쳐 자신의 비상을 준비해야 한다는 초대를 느꼈던 것 같다. 중력으로부터, 육체와 정신의 온갖 뒤틀림으로부터 그를 기다리고 있는, 붙잡는 존재의 품안으로 스며들어가는 비상을. 나웬은 이렇게 썼다.

“마치 아담이 나에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헨리! 두려워하지 말아요. 나의 죽음으로 인해 당신이 죽음을 맞아들이는 것을 돕도록 해 주세요. 당신이 더 이상 자신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당신은 충만하게, 자유롭게, 그리고 가득찬 즐거움으로 살수 있어요.’”

그 소리는 전에도 들었던 소리였다. 사후에 발간된 책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지난 8년 동안 많은 친구들과 친척들이 떠나갔다. 나 자신의 죽음도 그렇게 멀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전보다 더 깊고, 더 강한 사랑의 소리를 안으로부터 듣는다. 나는 그 소리를 계속 믿고 싶다. 그리고 그 소리에 이끌려서 나의 짧은 삶의 경계를 넘어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 안에 모든 것이 되시는 곳으로 가고 싶다.”

 

로버트 엘스버그 /1955년 미국 잭슨빌에서 태어났다. 존재의 의미와 참된 삶에 이르는 길을 찾던 그는 하버드 대학교를 다니다 2학년을 마치고 1975년 도로시 데이와 함께 5년 동안 일했다. <가톨릭일꾼> 신문 편집장으로 활동하다 1980년 가톨릭으로 개종했으며, 모교로 돌아가 종교와 문학을 공부한 후 라틴 아메리카에서 변화된 가톨릭교회 모습을 체험했다. 도로시 데이의 작품집을 냈으며 하버드 신학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면서 1학년을 가르쳤다. 1987년 신학박사 과정을 마치고 메리놀 수도회 Orbis 출판사 편집장이 되었다. 지은 책으로 <모든 성인들>과 <모든 여인 가운데 복되도다> 등이 있다. 도로시 데이 시성식 추진위원회와 헨리 나웬 재단 위원이며, 현재 세 자녀와 함께 뉴욕 주 오시닝에 살고 있다.

이 글은 2003년, 미국 메리놀 출판사가 발간한 <The Saints' Guide to Happiness>(Robert Ellsberg)를 <참사람되어> 2005년 3월호에서 편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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