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 부러진 갈대 같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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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 부러진 갈대 같은 사람들
  • 서영남
  • 승인 2020.07.06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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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남의 민들레국수집 일기]
사진=서영남
사진=서영남

"그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이사 42, 3)

성해도 보잘것없는 갈대가 부러졌습니다. 노숙하는 우리 손님들과 같은 처지입니다.

지금도 먹을 것이 없어서 민들레국수집에 쌀을 얻으러 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병근 씨는 병든 부인과 함께 삽니다. 나이는 예순 하나인데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가 없습니다. 선산이 형제들과 공동소유가 되어 있습니다. 건드릴 수 없는 재산인데 재산이 있다고 안 된답니다. 공공근로를 하면서 근근이 살아갑니다. 석 달 일하면 석 달 쉬어야 합니다. 허리가 많이 아픕니다. 그런데도 쌀을 가져갈 때는 허리 아픈 줄도 모른답니다. 반찬이 없어도 쌀이 좋으면 밥맛이 좋아서 괜찮다고 합니다.

민들레국수집이 있는 동인천역 근처에는 저렴하게 방을 얻을 수 있는 여인숙이 몇 군데 있습니다. 없는 사람에게는 여인숙이 제일 편하다고 합니다. 방값만 내면 전기료나 수도료 등 별도의 비용이 더 들지도 않습니다. 수건과 세면도구만 있으면 됩니다. 춘기 씨는 이런 여인숙 방 하나 얻어서 삽니다.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어서 노숙생활은 면했습니다. 나이는 예순여덟, 파란만장한 삶이었습니다. 이제 치아도 다 상했지만 치과 다닐 엄두가 나질 않습니다. 낮에는 화도진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배고프면 민들레국수집에 와서 밥 먹고, 공원에서 산책하고, 그렇게 유유자적하면서 산답니다. 

현식(가명)씨는 30대 초반에 치킨 집을 아는 사람과 동업하다가 일 년도 못하고 망했답니다. 신용불량자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노숙생활이 15년이나 흘러서 이제 사십 중반입니다. 노숙하면서 사는 것에 지쳤습니다.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지 물어봅니다만 40대 중반의 노숙자가 얻을 수 있는 일자리는 없습니다.

민들레희망센터에서 몸을 씻게 했습니다. 민들레가게에서 겉옷부터 속옷까지 전부 갈아입혔습니다. 양말과 새 운동화까지 챙겨주었습니다. 이발까지 했습니다. 그런 다음에 동인천역 근처에 있는 찜질방에서 잠을 잘 수 있게 했습니다. 한 달 동안 밥은 국수집에서 먹고, 민들레희망센터에서 지내면서 조금씩 친해졌습니다. 주민등록을 살리면 조건부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행정복지센터에 알아봤더니 가능할 것 같다고 합니다. 여인숙에 선불을 내고 방을 얻었습니다. 얼마 전부터 여인숙도 거주지로 인정받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현식 씨는 노숙생활에서 벗어났습니다.

 

사진=서영남
사진=서영남

약육강식의 정글같은 세상에서 아무 것도 없는 노숙하는 사람들이 살아가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오랜 노숙생활을 접고 민들레국수집에서 자원봉사자로 지냈던 대성 씨의 소원은 "우리 손님들도 호강 좀 하면 좋겠어요. 다른 곳에서는 밥과 국, 그리고 반찬 세 가지면 잘 나온다고 하거든요. 그런데 반찬은 두 번 집어 먹으면 없어요. 그래서 거의 맨밥을 먹거든요." 부러진 갈대처럼, 꺼져 가는 심지처럼, 차라리 세상에 없는 것이 낫다고 무시당하는 우리 손님들의 소원은 밥이라도 맘껏 먹어보는 것입니다. 아주 마음이 뿌듯한 일이 생겼습니다. 우리 손님들이 반찬투정을 합니다. 도시락을 열더니 "반찬이 먹을 게 없네."

대성 씨는 이제 완전히 술도 끊고, 자활센터에서 즐겁게 일하면서 저축도 하고 잘 지냅니다.  얼마 전에 길에서 만났을 때 저축도 삼천만 원이나 해 놓았다고 합니다. 인천 기상대 근처에 전세 집을 얻어서 잘 산다고 자랑을 합니다. 

창권(가명) 씨는 한겨울에도 비닐하우스에서 살았습니다. 쓰레기통에 버려진 휴대용 부탄가스를 주워서 라면을 끓여먹다가 화상을 입기도 했습니다. 억지로 황인의원에 함께 가서 응급치료를 했는데 요즘은 보통 이웃사람으로 노숙했던 흔적이 하나도 없이 평범한 이웃으로 살아갑니다. 

민들레국수집 초기 단골손님이었던 영환(가명) 씨는 얼마 전에야 겨우 노숙생활에서 벗어났습니다. 술을 마시지 않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얼마 전에 길에서 만났습니다. 어디 가는 길인지 물었더니 우체국에 저금하러 간다고 합니다.

부러진 갈대도 꺾지 않으시는 그분 덕분에 그 어려웠던 세월도 잘 견디고 살아나는 이들을 봅니다. 우리가 가진 것을 조금만 이웃과 나누면 놀라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피터 모린은 애덕 실천은 개인의 인격적 책임이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서영남 베드로
민들레국수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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