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으면서, 우리는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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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으면서, 우리는 산다
  • 로버트 엘스버그
  • 승인 2020.06.28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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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엘스버그의 [우리를 행복으로 이끄는 성인들] -죽는 것을 배우기(3)
사진출처=fatherdavidbirdosb.blogspot.com
사진출처=fatherdavidbirdosb.blogspot.com

 

고기잡이 그물을 호숫가에 버린 시몬과 안드레아 사도이든, “죽은 사람들의 장사는 죽은 이에게 맡겨라”는 소리를 들은 예비 제자이든, 용서받고, “더 이상 죄를 짓지 마라”는 말씀을 들은 간음한 여인이든, 예수를 따른 사람들 중에 무엇인가 뒤에 남기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이 점이 본회퍼 사상의 기반이기도 했다.

“십자가는 하느님을 두려워하며 행복한 삶을 끝맺는 비참한 종말이 아니며, 그리스도와 우리의 일치가 시작되는 점에서 우리를 맞이한다. 그리스도가 사람을 부를 때, 그분은 그에게 와서 죽으라고 명령한다. 그렇게 시작되는 것이다.”

제자들이 무엇인가 ­재난, 무기력, 죄악 등­ 뒤에 남기는 것은 무한히 더 가치있는 것을 위해서이다. “하늘나라는 밭에 묻혀있는 보물에 비길 수 있다. 그 보물을 찾아낸 사람은 그것을 다시 묻어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있는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마태오 13,44). 그리스도가 추종자들을 부를 적에 그분은 그들에게 와서 살라고 한다.

죽음과 삶의 주제가 상호 혼합 되어있는 모습은 바오로서간에 자주 나타난다. 이미 제자들은 이 지상의 삶에서 죽었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에 부활했다고 바오로 사도는 주장한다. “예전의 우리는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서 죽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니,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라고 믿습니다”(로마서 6,56).

또 다른 곳에서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여러분은 지상에 있는 것들에 마음을 두지 말고, 천상에 있는 것들에 마음을 두십시오. 여러분이 이 세상에서는 이미 죽었기 때문입니다... 따뜻한 동정심과 친절한 마음과 겸손과 온유와 인내로 마음을 새롭게 하여 서로 도와주고, 피차에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용서해 주십시오. 그 뿐만 아니라, 사랑을 실천하십시오”(골로사이 3,2. 12-13).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부활하는 것은 죽을 때만이 아니라, 오늘 이 순간이며, 그리스도교 입문예식의 중심인 세례성사의 의미이기도 하다. 세례성사는 정화예식이 아니라, 실상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상징적으로 재현하는 성사이다.

세례를 받으면서 초기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세상에” 죽고 어리석게 보이거나 미친 것같이 보이게 하는, 심지어 전복적으로 느껴지는 가치관을 받아들였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구세주와 동맹을 선포하였다. 그것은 구세주의 운명, 즉 체포와 고문과 수치스러운 죽음에 동참하는 선택을 의미했다. 그러나 그런 죽음은 자기 자신과 죄에 죽는 우선적이고 자발적인 과정의 정점일 뿐이었다. 바오로 사도의 말처럼, “우리는 매일 죽는 것 같으나, 이렇게 살아 있습니다!”(2고린토 6,9)

박해시기가 끝났지만, 사막의 교부들은 광야 속에 머물며 다른 영역에서 그들의 생명을 바치고자 했다. 그들의 욕망과 세상의 가치관에 죽으면서 그리스도교 시대에도 사람들이 악덕, 탐욕, 권력에 대한 갈증으로 물드는 것을 보았고, “새로운 생명 안에서” 거닐기 위하여 노력했다. 그러한 영감은 후기 수도회 전통 속에 이어졌고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모든 회심이 다 바깥세상과의 급격한 단절로 표현되지는 않는다. 가장 즉각적인 회심의 결과는 처음에 내면에서 일어난다. 그러나 죽는 것 자체는 여전히 실제적이다. 어거스틴 성인은 죄에 대해 죽는 것이 단순히 끝이 아니라, 시작임을 성찰한다: “나는 나에게 새로운 생명을 가져다 줄 죽음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성인들뿐만 아니라 우리들 모두에게도 삶과 죽음은 많은 차원에서 연결되어 있으며, 우리는 육체적 죽음의 문제와 그 너머에 있는 모든 문제들을 직면하기 훨씬 전에 그 사실을 깨닫는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죽어 가는 것이 아니라, 무기력함이다. 무기력으로 치닫는 삶의 방식들을 우리는 확실히 알고 있다. 또한 동시에 신비스럽게도 더 활기찬 삶으로 이끄는 죽음의 길도 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신앙생활에 각인되어 있는 어떤 표지를 드러내 준다. 그 표지를 읽을 수 있을 때, 우리는 더 이상 죽음을 단순히 적이나 끝으로 보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신앙의 눈으로 우리는 직면하는 모든 상황 속에서 새롭고 더 위대한 생명으로 이끄는 길을 볼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빛 속에서 우리는 육체적 죽음에 직면했을 때조차, 하느님이 그런 길을 마련하신다고 믿는 것이 더 이상 어떤 비약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로버트 엘스버그 /1955년 미국 잭슨빌에서 태어났다. 존재의 의미와 참된 삶에 이르는 길을 찾던 그는 하버드 대학교를 다니다 2학년을 마치고 1975년 도로시 데이와 함께 5년 동안 일했다. <가톨릭일꾼> 신문 편집장으로 활동하다 1980년 가톨릭으로 개종했으며, 모교로 돌아가 종교와 문학을 공부한 후 라틴 아메리카에서 변화된 가톨릭교회 모습을 체험했다. 도로시 데이의 작품집을 냈으며 하버드 신학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면서 1학년을 가르쳤다. 1987년 신학박사 과정을 마치고 메리놀 수도회 Orbis 출판사 편집장이 되었다. 지은 책으로 <모든 성인들>과 <모든 여인 가운데 복되도다> 등이 있다. 도로시 데이 시성식 추진위원회와 헨리 나웬 재단 위원이며, 현재 세 자녀와 함께 뉴욕 주 오시닝에 살고 있다.

이 글은 2003년, 미국 메리놀 출판사가 발간한 <The Saints' Guide to Happiness>(Robert Ellsberg)를 <참사람되어> 2005년 3월호에서 편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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