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선생님 선종 소식을 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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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 선생님 선종 소식을 접하며
  • 한상봉 편집장
  • 승인 2020.06.25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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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한상봉
사진=한상봉

그분은 말미에 자주 “부끄럽다” 하셨습니다. 그분이 사랑하고 존경했던 분들의 발끝을 따라 살고 싶지만, 결국 그러지 못했다는 지식인의 자책이었습니다. 이반 일리치와 리 호이나키를 스승으로 삼았던 선생님이십니다. 그분들이 몸으로 삶을 밀어붙이며 살았던 지식인이었기 때문에 공감과 반성이 늘 따라와 앉았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두 분 모두 가톨릭 사제였던 까닭에, 가톨릭영성에 공감하고 ‘겸손’과 ‘공경’을 귀하게 여기던 분이었습니다.

1999년 김종철 선생님을 처음 만난 곳은 경남 창녕이었습니다. 대구한살림을 일으키신 천규석 선생님의 공생농두레학교에서 선생님은 강의를 한 꼭지 맡아서 해주셨습니다. 저는 귀농을 준비하고 있었고, <녹색평론> 편집실이 아직 대구에 있을 때였는데, 이 농장 한 구석에 거처를 마련하시고, 톨스토이처럼 농사와 농민을 느끼고 싶으셨던 모양입니다. 그때부터 그분은 지식노동과 농업노동 사이에서 갈등하고 계셨습니다. 그분의 회한처럼, 끝내 농민이 될 수는 없었지만, 그분의 모든 말씀은 ‘부끄러움’ 안에서 진정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만남은 우연한 전갈을 통해 왔습니다. 아마 2009년경일 겁니다. 종로의 어느 선술집에서 구운 생선 한 마리 시켜놓고 술을 들며 두어 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나누었던 기억이 납니다. 서울 부암동으로 편집실을 옮겼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편집장 맡을 이가 없어서 고민이라 하더군요. 그 즈음이면 제가 경주에 집을 두고 저 혼자 서울에 올라와 ‘돈벌이’ 하고 있을 때입니다. 그날 저는 선생님의 부탁을 거절하며 다른 이를 추천했는데, 그이도 이야기가 안 되어서 결국 그때부터 지금까지 선생님은 혼자서 발행인과 편집인 역할을 감당해야 하셨습니다. 저는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편집장을 맡아서 일하기로 결정이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얼마후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창립식에 선생님을 강연자로 초대했습니다. 흔쾌히 허락해 주신 선생님께 지금도 감사를 드립니다. 가톨릭은 아니지만 가톨릭을 정말 좋아하는 선생님입니다. 특히 수녀님들이 초대하시면 언제든 달려가시던 선생님입니다. 세상 속에서 세상과 다르게 살기를 갈망하시던 선생님은 세상 속에서 세상과 다르게 살려고 애쓰는 모든 이를 연모하셨습니다. 예언자라기보다 ‘선지자’라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은 선생님은 당신 생각을 주저 없이 토해내시면서도 늘 당신 가슴을 치시는 분이었습니다.

2018년 노회찬 의원이 갑자기 이승을 떠나고 얼마 후에 가톨릭일꾼 세미나에 오셔서 대담을 나누어 주셨는데, 그때 그분이 말머리에 꺼내신 말은 ‘우정’이었습니다. 노회찬 의원은 “거짓말을 못해서 죽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이참에 정치적 동지도 참 중요하지만, 인간적 우정을 나눌 수 있는 벗도 중요하겠다 싶었다”고 고백했습니다. “돌이켜 나한테는 그런 벗이 있는가 생각하면 나도 별로 없어요. 알량한 자존심 때문이죠. 정말 시시콜콜한 내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친구가 있어야 해요. 그런 친구 하나 있다면, 아주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굉장히 행복한 사람입니다.”

더 많이 더 자주 선생님을 뵈어야 했는데... 결국 또 후회를 더하고 말았습니다. 동지든 친구든 상관없이 그분 가까이 머물지 못한 시간들이 아쉽습니다. 결국 내가 필요할 때만 찾아뵙고 말았습니다. “그냥 그저, 선생님 생각나서 연락 드렸습니다.” 전해야 했습니다. 좀 전에 창원 사는 김유철 선배가 연락을 해줘서 그분이 선종하셨단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멀리서 아는데, 가까이 있는 저희는 그분의 근황을 듣지 못했습니다. 제 얄팍한 마음씀이 부끄럽고, 선생님께 죄송한 마음입니다.

그 나라에서 장일순 선생님도 만나고, 이반 일리치도 만나시리라 믿습니다. 이승에서 못 다 이룬 인연이라도 저승에서 이어가시길 바랍니다. 예전에 부암동 어느 카페에서 <뜻밖의 소식> 인터뷰하실 때,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다들 선생님이 까다롭다고 하던데요?”
“내가? 나 그런 사람 아닌데.”
“그래서 다들 선생님을 어려워들 한다고 들었어요?”
“거 참, 나처럼 부실한 사람이 어디 있다고. ... 한 선생은 어때요?”
“......”

그날 선생님에 대한 나의 인상은 (이렇게 표현해도 좋을지 모르겠지만) 참 곱다, ‘귀엽다’ 그런 거였습니다. 먼발치에선 어렵고 깐깐해 보여도, 가까이 머물면 따뜻하고 순진한 반전이 있는 선생님입니다. 저승에 가시면 다들 미리 속을 알아서 반기실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래, 그동안, 애썼다’ 위로받으실 것입니다. 나중에라도 그 동무들 안에 저도 끼고 싶지만, 저 역시 부끄러움 투성이라, 그게 가능할지 어쩔지 모르겠습니다. 저 생긴 그대로 알아주고 받아주는 벗들이 그리운 오늘입니다.

 

김종철 선생님 부고

유족으로는 부인 김태언씨와 아들 형수씨·딸 정현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3호실
발인은 27일 오전 9시다. (02)2227-7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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