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챙겨들고 편의점에서 할머니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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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 챙겨들고 편의점에서 할머니를 기다린다
  • 심명희
  • 승인 2020.06.23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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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명희 칼럼
사진출처=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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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새벽, 편의점 옆 캄캄한 골목길에서 할머니가 종이박스를 접고 계신다. 기역자로 굽은 허리와 낡은 털모자가 눈에 익다. 오그라들대로 오그라든 자그마한 몸집으로 큰 박스를 포개고 묶고 휘청거리며 리어카에 싣는 폐지 할머니, 뵐 때마다 건강이 걱정된다. 편의점에서 빵과 두유를 사 드리는 걸로 인사를 대신한다. 코로나19 사태 중이라 한참 동안 할머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서 걱정했다. “할머니!” 하도 반가워서 덥석 안았다. 마침 가방 안에 들어있는 딸기 한 팩을 드렸다.

할머니는 우리 동네에 살았다. 세탁소 언니네와 함께 내가 자주 드나들던 동네 터줏대감이었다. 이십 년 전 내가 아파트로 이사 왔을 때 주변은 다세대 주택들과 오래된 단독주택이 빽빽이 들어선 산비탈 마을이었다. 집집마다 빈 터에 텃밭과 꽃밭을 가꾸는 정감 넘치는 풍경이 좋았다. 도심 한가운데에 꽃밭과 텃밭이 있는 동네가 남아 있다니 신기했다.

세탁소 옆에 붙은 작은 컨테이너 박스에서 혼자 사는 할머니도 텃밭에 꽃과 채소를 가꾸었다. 골목 담장 옆에 철따라 심은 봉숭아, 나팔꽃, 채송화, 수선화, 금잔화, 맨드라미, 해바라기... 할머니의 꽃밭은 화려하고 찬란해서 낡고 구질구질한 동네를 화장하듯 재탄생시켰다. 살뜰하게 가꾼 텃밭에서 나온 오이, 토마토, 고추, 상추, 깻잎, 배추, 무는 할머니와 경제공동체이자 가족처럼 지내는 세탁소 언니의 식탁에 올랐다. 내가 그랬듯이 세탁소를 이용하는 고객이었다면 한 번 쯤은 등 떠밀려서 이 가족의 밥상에 앉은 적이 있을 것이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내려다 보면 할머니의 동네는 흙 냄새 사람 냄새를 느끼게 하는 고향 마을 같았다. 꼬불꼬불하고 비좁은 미로 같은 골목길을 지나 지하철역까지 가야 했지만, 이 길을 걷는 것을 행운으로 여겼다. 불편하고 비효율적인 옛날 동네가 도심 한가운데 남아 있어서 가난한 젊은이들이 싼 월세를 찾아 이 동네 다세대 주택의 지하방과 옥탑방에 둥지를 틀고 있는 것도 뿌듯했다.

 

사진출처=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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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동네를 떠난 이유는 재개발 때문이었다. 골목 입구에 재개발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리고 주민들이 각자 떠나면서 세탁소 언니와 할머니도 갈 데를 찾아야 했다. 집집마다 하나 둘 대문에 붉은 페인트로 ‘철거’라는 사형선고가 내려지자, 할머니는 꽃도 심지 않았고 텃밭도 포기했다. 동네는 폐허로 변하고 무덤의 냄새가 났다. 할머니와 세탁소 언니는 공동묘지 같은 죽은 동네에서 맨 마지막까지 버텼다.

할머니와 한 가족이나 다름 없는 세탁소 언니도 오갈 데가 없었다. 고향에서 중학교를 중퇴하고 구로에서 공장에 다니던 그녀는 스물네 살에 결혼한 후 서울의 이곳저곳을 다니며 행상과 노점 끝에 이 동네에 정착했다. 서른 중반에 남편이 암으로 떠나고 세탁소 일로 삼남매를 키우며 운 좋게도 이 동네에서 이십 년을 버텼다. 세월 만큼이나 동네에 뿌리를 튼튼하게 내리는 동안 할머니를 만났고 두 사람은 엄마와 딸로 서로 기대어 살았다.

세탁소는 동네 주민들과 새로 이사 오는 이주민들에게는 민원고충 처리소요, 어르신들의 사랑방, 동네 복덕방이었다. 특히 지방출신의 대학생, 젊은 직장인, 외국인 유학생 등 자취생들이 많은 동네 특성상 든든한 맏언니처럼 씩씩하게 세탁 기술처럼 꼼꼼하고 시원시원하게 생활고민을 해결해 주었으니 ‘언니’의 존재감은 빛났다. 택배 물품을 퇴근할 때까지 보관해주고 여행이나 휴가를 떠나면서 맡긴 반려견을 돌보는 일까지 물건과 사람, 동물을 망라해서 그녀는 대체불가였다.

나도 이 동네로 이사 온 후 객지생활에서 오는 불편과 심신의 불안정을 이 허름하고 세탁물과 잡동사니 가득하고 무질서한 공간, 작고 소박한 안식처에서 할머니와 언니의 보호와 위로를 받고 살았으니 여기는 삶의 베이스 캠프였다. 그런데 세탁소를 폐업하니 맡긴 세탁물 찾아가시라는 안내문을 붙이고 나서 얼마 후, “지방으로 내려가요.” 내 얼굴을 외면하며 세탁소 언니는 휴대폰 번호를 적은 쪽지를 내밀었다. 아들은 군대로, 고등학생인 딸은 친척집으로 가고, 중학생 막내딸만 데리고 떠난다고 했다.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하며 살 것인지 물어보지도 못했다.

동네가 사라진 자리에 고층 아파트가 들어왔고 새로운 동네가 눈앞에 나타났다. 좁고 꼬불꼬불했던 골목길은 깔끔하게 아스팔트로 포장되어 시원하게 뻗은 대로로 변했다. 새로 지은 아파트 정문을 지날 때마다 한 걸음 한걸음 내딛는 땅 밑에서 신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흉허물 없이 터놓고 살았던 흙냄새 맡으며 살던 동네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뿌리가 뽑히는 아픔을 안고 떠났던 그들의 사연을 밟고 지나가는 듯 했다. 그렇게 헤어진 지 십년 만에 편의점 앞에서 폐지 줍는 어르신으로 할머니를 만났다. 그리고 멀리 떠난 줄로만 알았던 세탁소 언니가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것도 알았다.

 

사진출처=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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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구도 예측 못한 코로나19라는 대재앙이 왔다. 전 국민이 하루의 일과를 공적 마스크와 함께 시작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마스크 판매 앱을 켜고 약국을 헤맸다. 약국은 문을 열기도 전에 마스크를 구입하려는 사람들의 긴 줄에 긴장했고, 마스크 판매로 매일 홍역을 치렀다. 마스크 한 장에 생사여탈이 달려 있다는 믿음으로 누구나 할 것 없이 마스크를 수집하는 사냥꾼으로 변했다. 약사라는 직업상 이 전쟁의 한가운데에서 마스크를 파는 아수라장을 관리해야 하는 나도 한참 지나서야 문득 알아챘다. 이 긴 줄 어딘가에 할머니가 계실까?

무한경쟁, 각자도생의 대열에 들어오지 못했을 할머니를 찾기 시작했다. 포스트 코로나, 코로나 뉴노멀, 팬데믹, 언택트... 전대미문의 재난이 가져오고 있는 변곡점은 고통의 다른 표현이다. 특히 가진 것 없는 사람들에게는. 십 년 전 동네가 사라질 때 나는 무기력에 빠져서 이별의 아픔을 ‘회자정리’라며 스스로 위로했다. 살면서 스믈스믈 올라오는 그들을 향한 염려와 그리움을 억누르면서. 그러다 잊었다.

코로나19의 확진자와 사망자가 발표될 때마다 사람들은 각자 바이러스로부터 살아 남았다는 안도를 한다. 누구든지 예외가 없는 이 재난 앞에서 삶과 죽음 사이의 거리가 멀리 있지 않다는 위기, 지금까지 열심히 부지런히 쌓아온 정연한 질서가 허망하게 무너질 수 있다는 공포, 일상이 해체될 거라는 혼돈, 언제 끝날지 모르는 재앙의 긴 터널을 통과할 때 흔들어 깨우는 신호를 듣는다. 그 이전에도 이런 신호는 있었다. 모든 의미 있는 신호들이 그렇듯이 신호는 고통의 얼굴로 온다. 다만 그 신호를 잡음이라고밖에 해석 못하는 무지와 자기중심의 이기주의라는 장애물 때문에 듣지 못할 뿐이다.

“고통은 때때로 인간을 깊이 만들기도 하지만 때로는 인간을 메마르고 이기적이 되게 만들기도 한다. 사람들이 큰 염려 없는 안락한 삶을 사는 곳에서는 모두가 비슷하게 친절하고 선량해 보이지만 막상 위험과 고통이 닥쳐오면 참으로 선한 사람만이 인간의 긍지와 양심을 지킬 수 있다. 그런 까닭에 비범하고 위대한 선은 언제나 그만큼 큰 고통 속에서만 자기를 드러내는 것이다.”(김상봉, 호모에티쿠스)

그때 나는 세탁소 언니와 할머니의 고통에는 희망이 없다고 믿었다. 그래서 함께 하는 길을 일찌감치 포기했다. 그러나 할머니와 세탁소 언니가 지금까지 맺고 있는 서로를 붙잡아 주는 끈끈한 연대의 끈은 고통 속에서 그들을 버티게 하는 위대한 선이다. 추수에 대한 희망 없이도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삶은 멸망하지 않고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오직 약국에서만 구할 수 있고 돈을 아무리 많이 줘도 살 수 없는 유일한 배급제 KF94 공적 마스크를 챙겨들고 편의점에서 할머니를 기다렸다. 그때 그렇게 떠나 보낸 내 무심함, 까맣게 잊고 산 죄를 갚으려고 금 보다 귀한 마스크를 바치며 두 분과 함께 한다. 

 

심명희 마리아
약사, 선우경식기념자활터 봉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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