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이후의 교회, 이런 상상도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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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이후의 교회, 이런 상상도 해보자
  • 강신숙 수녀
  • 승인 2020.06.22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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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숙 수녀 칼럼

코로나19가 온 인류에게 “이래도 정신 안 차릴래?”하고 호되게 한 뺨 날렸다. 세계인들은 아직도 얼얼한 상태로 얼굴을 감싸 쥐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형국이다. 2020년 새해 벽두에 날아든 코로나 긴급 사태는 속수무책으로 반년의 스케줄을 통째로 날려 보내더니, 디지털한 세계에 더 디지털(?)한 변신으로 자신의 위용을 과시하고 있다.

그뿐이 아니다. 인류가 가장 신성시해온 예배의 공간마저 마구 헤집더니 결국 ‘위험지역’, ‘위험 행위’로 딱지를 붙였다. 이런 초유의 사태가 길어질수록 사람들이 바라는 염원도 고작 수개월 전에 누린 그 일상이 되었다.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맘껏 자연의 공기를 호흡하면서 햇볕을 쪼이며 거리를 걷는 것, 그러다가 이웃을 만나면 손도 잡아주고, 반가운 허그도 할 수 있는 그런 일상이 ‘희망 사항’이 된 것이다. 무심하게 넘겨졌던 일상이 보석 같은 존재가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났다.

 

사진출처=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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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진짜 위기는 ‘에클레시아’일까?

신천지발 감염자 수의 폭발적 증가는 모든 종교 집회를 국민 기피대상 1호로 등극시켰다. 한국천주교 역시 교회 설립 이후 처음으로 미사가 사라진 전대미문의 현상을 겪게 되었다. 3개월여간 지속된 격리기간은 교회 구성원 모두에게 낯설고도 긴 시간이었다. 반복적으로 돌던 ‘절대’ 루틴이 멈추어 서자 그 빈자리 여기저기서 파장이 일어났다. 미사가 신앙의 중심이었던 사제와 신자들은 아주 잠시나마 중심이 해체된 공백에서 저마다 다른 체험을 하게 된 것이다.

처음으로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무력감이 몰려왔다. 모일 수 없는 교회는 ‘교회’가 아니었다. ‘집회(신앙인들의 모임)’가 곧 교회 본연의 뜻임을 생각하다가 ‘교회 자체’로 물음이 옮겨졌다. 성당(건물)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신앙생활은 조만간 교회가 인지하든 못하든 균열을 겪을 것이다. 성당에만 고정되어 있던 공적 모임과 활동의 추가 건물에서 가정으로 혹은 다른 유동적 공간으로 상호 이동할 공산이 커졌기 때문이다. 그러면 사목 스타일도 교우들의 신앙 패턴에 따라 달라질 테고, 그에 맞춰 본당 시스템도 조정돼 나갈 것이다.

이런 변화는 충분히 예견할 수 있고, 또 예견되어야 한다. 그래야 교회 구성원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적기를 마련할 수 있다. 교회는 자신을 논의와 해석의 대상으로 내놓아야 한다. 오랜 시간 너무 당연시했던 교회의 공적 모임에 대해, 특히 초대교회가 왜 자신을 “에클레시아”로 규정했는지에 대해 새로이 통찰할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혁명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 어떤 강력한 힘, 물리적 환경이 개입하고 나서야 비로소 새로운 패러다임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위기에 직면할수록 문제를 푸는 가장 좋은 방법은 ‘처음’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처음 교회가 세워지고 들불처럼 타오르던 그 시기를 되짚다 보면 이천 년을 걸어온 우리의 자화상이 보일 수 있다. 어쩌면 거기서 팬데믹 이후의 교회를 상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사진출처=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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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클레시아가 교회에 답하다

교회를 지칭하는 에클레시아(ecclesia)는 그리스어 에클레시아(?κκλησ?α)에서 온 말로 ek(밖으로)와 caleo(부르다)의 합성어로 이루어졌다. 아테네 시민의 총회인 민회, ‘불리운 사람들의 모임’인 에클레시아는 국가적으로 중차대한 문제를 해결하거나 의견을 듣기 위해 소집된 시민들의 모임이었다. BC 5세기부터 민주주의의 초석을 이룬 에클레시아는 이후 로마를 거쳐 초대교회의 언어로 재탄생했다.

초대교회는 왜 유대가 사용하던 ‘시나고가’를 버리고 ‘에클레시아’를 선택했을까? 그것은 아마도 율법과 할례를 강조하던 유대인들의 사고와 거리를 둘 필요가 있었을 테고, 또 새롭게 형성되던 지역 중심의 공동체가 그때마다 필요에 따라 소집되어야 했기 때문에 ‘에클레시아’로 부르는 것이 더 적합했을지 모른다. 사도 바오로가 교회를 장소나 공간개념에서 분리시키려고 애썼다는 사실은 교회를 지칭하는 여러 표현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 하지 않고,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다는 말로 표현함으로써 자칫 교회가 신성시되는 것을 경계했다. 따라서 에클레시아는 지역 회중들(로마16,1;1코린11-14장) 혹은 회중들의 모임(갈라1,2.22;골로1,18.24)으로 불리게 되었으며, 이때 소그룹 공동체를 뜻하는 오이코스(oikos)도 함께 사용되었다. 그러니 에클레시아는 필요한 때 필요한 장소에 모이면 되었고, 체계적인 조직이 공고하게 세워질 필요가 없었다.

그렇다고 교회가 단순히 그리스의 에클레시아를 모방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리스의 에클레시아는 성인 남자시민에게만 자격을 부여했지만 교회의 ‘에클레시아’는 성역을 두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열려있었다. 남자나 여자, 유대인이나 이방인, 종이나 자유인, 부자나 가난한 자를 막론하고 모두를 동등하게 받아들였으며 인종, 언어, 민족을 구별하거나 차별하지 않았다.(갈라3,28) 그리스도교의 ‘에클레시아’가 보여준 포용성보다 더 급진적이고 혁명적인 집회는 다시없었다.

그러나 초기의 에클레시아는 중세와 근현대로 넘어오면서 본래의 모습을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다. 어쩌면 순교자들의 시기가 끝나고 종교의 자유가 허락되면서부터, 특히 로마 제국에 예속되면서 이미 예견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결국 ‘에클레시아’는 긴 세월 동안 이름으로만 존재하다가 오늘에 이르렀다. 물론 초기의 에클레시아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일은 주로 평신도 그룹에서 일어났는데 결말은 늘 비극으로 끝났다.

 

사진출처=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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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적 상상력으로 일으켜진 에클레시아

지금도 가끔씩 그런 상상을 해본다. 만일 에클레시아가 권력과 동일시된 화려한 성전을 중심으로 삼지 않았다면, 초대교회의 모습대로 변방에서 ‘제국과 도시의 사람들(소돔과 고모라)’을 지켜보고 경계하던 사람들로 남았더라면, 그리스도 예수의 가치를 중심에 두고 필요에 따라 소집되던 방식을 고수했더라면, 과연 지금쯤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아마도 황제와 교황 간의 권력다툼이 빚어낸 서구역사의 판도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고, 교회도 지금과는 판이하게 다른 교회가 되어있을 것이다.

그 ‘다름’이 어떤 형태인지는 상상하기 어렵다. 가톨릭의 위용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람들은 황제로부터 신성한 권력을 지켜낸 교황과 교회 세력을 변론하고 나설 것이다. 그러나 아니, 절대로 그럴 일은 없다. 예수가 건설한 나라는 그렇게 위용 있는 제국주의의 힘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가 주창한 하느님 나라의 건설은 세상이 욕망하는 그런 세계가 아닌 것이다.(요한17,14-15)

교회가 권력의 유혹에서 벗어났더라면 아마도 교회는 성경의 전통대로 ‘소수자’들의 교회로 남았을 것이다. 이 특별한 사람들의 힘이란 것은 고작(?) 세상에 대한 사랑과 연민이 전부였을 것이다. 이들은 불의한 현장, 파괴적 시스템, 황금만능으로 뒤덮인 세계의 쓰레기더미에서 뭇 생명을 구하는 일에서 눈을 떼는 법이 없을 것이다. 그들은 이런 일을 하기에 자유로워서, 복잡한 시스템의 하수일 필요가 없어서, 지금처럼 집회 금지가 무기력으로 이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에클레시아’는 그런 것이다.

시나이반도를 유랑하며 겪은 원초적 체험과 신의 계시를 지켜온 사람들, 그들이 이어온 정신을 계승해서 확장시킨 예수의 길을 걷는 이들, 이들이 ‘에클레시아’다. 예수가 꿈꾼 ‘새 하늘과 새 땅’은 그들로 인해 마르지 않는 영감과 비전으로 자리했을 것이다. 인간을 배제하고 물질화 시키는 우상으로부터 새로운 질서를 일으키는 일이야말로 이들이 지향하는 세계다.

지금도 이들 소수의 사람들이 있어 세상은 여전히 살만하다. 이들은 온갖 종교들로부터도 나오고, 종교가 아닌 곳에서도 태어난다. ‘에클레시아’가 반드시 특정 종교일 필요는 없다. 우선 이들이 하는 행위는 단순하고 명료하다. 우상의 실체를 폭로하는 것, 거짓신념과의 연결고리를 해체하는 것, 그래서 사람들이 그것을 분별하게 만드는 그런 일이다. 우리가 만일 에클레시아로 돌아가야 할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백성을 성장시키고, 백성이 주도적으로 움직이며, 백성이 메시아의 사명을 수행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런 일은 불가능한 꿈이 아니다. 최근에 제기된 ‘공동합의성’은 가장 에클레시아적인 상상력의 도구가 될 수 있다. 문제는 절대적으로 신성시된 교회조직이 이런 상상력을 얼마만큼 허용하느냐, 이다. 만일 교회 당국이 좀 더 유연한 태도를 취할 수 있다면 모습을 감췄던 도발적 인물들이 사방에서 나타날 것이다. 그들뿐만이 아니다. 그동안 교회 문턱을 넘을 수 없었던 사람들도 제 목소리를 내기 위해 몰려올 것이다. 그렇게 교회는 조금씩 만인이 몰려오는 길목이 되고 광장이 되어 조만간 창조적이고 즐거운 상상력으로 넘쳐날 것이다.

‘에클레시아’는 그런 것이다. 그러니 명령과 절차, 규칙과 관성으로 사람들을 막지 마라. 누구도 구시대적 사고에 가두려 하지 마라. 자신의 기준으로 죄인들을 솎아내려 하지 말고 모든 상상력을 허하라. 우리의 스승 예수는 본시 유대 지도자들에게 불온한 인물이었음을 상기하라. 유대인들은 그가 메시아인 것만으로도 참을 수 없어 했다. 자신들을 가리켜 위선자라고 날리는 자를, 자신들이 권력으로 사유한 법과 체제를 함부로 부수는 자를 그대로 두고 볼 수만은 없었던 것이다. 그들이 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 그들을 막는다면 돌들이 나서서 외칠 것이다. 그러니 교회의 물결이 흘러가도록 막힌 보를 트라. 

 

강신숙 수녀
성가소비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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